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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평_유혹(SBS)
내용 정서를 유혹하지 못하는 멜로드라마
SBS-TV 월화미니시리즈 ‘유혹’

멜로드라마가 뭐 별 건가. 불륜 또는 삼각관계 등 약간의 퇴폐적이거나 부도덕한 요소를 적당히 섞은 애정물이면 멜로드라마라지. 사회 윤리적 통념을 살짝살짝 넘나들면서 마치 운명적인 것처럼 우연도 집어넣고, 일탈행위를 무슨 멋이나 낭만이라도 되는 것처럼 파격과 충동을 합리화시켜나가면 멜로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멜로드라마는 어렵다. 논리가 아닌 정서로 사람들의 정감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나름 수긍할 수 있는 명분도 있어야 하고, 전혀 해프닝이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치밀한 감정 선의 계산이 요구된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되거나 전제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멜로드라마를 저질로 여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진정성은커녕 어린애들 소꿉장난처럼 받아들여 외면하게 마련이다. 멜로드라마는 한낱 저속하고 위험스런 감정의 유희가 아니다. 인간의 밑바닥 깊숙이에 숨어있는 탐미주의, 즉 또 다른 아름다움의 추구인 것이다. 장소를 럭셔리한 곳으로 옮겨 시청자들의 눈을 호사시킨다고 해서 멜로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나 설정 자체를 특별하게 꾸며가는 아이디어 때문에 사람들이 때로 멜로에 열광하는 것도 아니다. 멜로는 멜로로서의 규범화 되지 않은 순수성과 납득할만한 타당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바꿔 말해서 멜로드라마의 인물들은 하등의 대가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내걸지 않고 아무런 조건 없이, 앞뒤 가리지 않고 오로지 애정에만 ‘올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평소 자기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욕구와 꿈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데 SBS의 월화드라마 ‘유혹’은 그렇지 못하다. 시작부터 ‘인생의 막다른 궁지에 몰린’ 자에게 10억이라는 돈을 몸값으로 내건다.

진정한 멜로는 순수성 추구가 핵심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빚 10억을 갚도록 해줄 테니 대신 3일 동안의 노예가 돼 달라는 것이었다. 남의 남편의 3일간이란 시간을 돈 10억으로 사겠다는 제안이다. 왜 그러는지,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이유도 없다. 처음부터 흑심을 가졌거나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꺼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할 해프닝을 벌인다. 세상에 아무리 돈 많은 여자나 자선사업가라 할지라도 어처구니없는 일. 멜로드라마의 모티브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부터 무리수를 둔다.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만 현실적인 절박함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우선 멜로물로는 동기가 불순하다. 멜로는 어떤 조건과 현실의 이성적인 판단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뭐라고 꼬집을 수 없는 각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파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다면 십억 조건을 거절하는 데서 동기를 찾아야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현실의 절박함을 핑계로 어정쩡하게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다지 단호한 캐릭터도 아니고 매력적이거나 아름답지도 못한 모습이다. 주요등장인물 남녀(권상우, 최지우) 모두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한편 극중에 또 다른 커플로 등장하게 되는 남녀(이정진, 박하선)의 경우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치고는 절실하지 못하고 쉽게 엮이는 쪽으로 슬그머니 기울고 있다. 바야흐로 3각이 아닌 4각관계로 발전될 낌새로 보인다. 삶의 희망을 잃고 더 이상 출구를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던 부부 가운데 남편은(권상우) 10억의 유혹에 넘어가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죽음 직전까지 갔던 아내(박하선)는 그 와중에도 남의 아이에 대한 동정심이 발동해 다른 남자와 엮이려 하고 있다. 멜로드라마라고 해서 뭐든지 우연히 만나고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물들의 의지와 감정이 반드시 작용해야 맞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생각과 의지가 지향하는 대로 불륜도 일탈도 끌어가는 데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그 점에 있어서 ‘유혹’은 멜로드라마로서 갖춰야 할 요건에 많이 미흡한 채로 시작했다. 연기나 연출도 마찬가지다. 냉정한 이성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감성의 폭발을 볼륨 있게 함축 또는 증폭시켜야 하는데 그 부분이 지극히 사무적이고 조건반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멜로드라마는 주어지는 여건과 논리나 이성으로 풀어갈 수 없는 철저한 감정의 영역이다. 그만큼 파격적인 마음의 변화, 마음의 행로를 따라간다. 노골적인 홍콩 시내의 간접광고로 시작했다고 해서, 홍콩의 이모저모를 알뜰하게도 보여주는 일종의 관광효과를 노렸다고 해서 멜로적인 부분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이국적인 장소 정도로 멜로가 생겨나지 않는다.

‘불순한 거래’는 탐미주의와 거리 멀어
멜로드라마야말로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보일만한 요소가 있어야 하고, 정서를 다루지만 이성보다 더 차디차고 감정논리의 설득이 우선되어야 저속함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제대로 된 멜로물은 애정행각의 접근방법부터 다르고 주고받는 대사도 감각이 다르다. 오죽하면 멜로드라마를 잘 쓰는 작가, 멜로드라마를 잘 연출하고 잘 연기하는 사람들을 두고 연애박사라 그러겠는가. 말(언어)의 매력과 향기가 다르다. 물론 두 주연배우(권상우, 최지우)의 혀가 약간 짧은 듯 한 데서 오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멜로적인 경험과 상상력의 부족함이 도처에서 눈에 띤다. 멜로드라마가 사회적인 통념이나 불륜 또는 패륜과 같은 악행을 수시로 넘나든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돈이나 현실이 아닌 사람이 갖고 있는 이른바 탐미주의로 유혹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성과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보다 감정적인 모순의 DNA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해가 없는 멜로드라마는 항상 억지로 일관하고 대부분의 이용자로부터 저급한 드라마로 외면받기 일쑤다. 멜로는 멜로로서 프로페셔널, 즉 전문성을 지녀야 한다. 아마추어 식의 멜로는 사회악이나 부추기는 한때의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멜로는 가볍게 왔다 갔다 하는 감정의 변화뿐만 아니라, 때로 순간순간 모든 것을 거는 순수성과 과감함과 무모함까지 보일 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멜로드라마는 그 내용과 메시지가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멜로드라마로서의 ‘유혹’이 겉돌고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도 오로지 이것만은 얻어야겠다는 절실함이 담기지 않은, 다시 말해 진심이 담기지 않은 불순한 ‘거래’나 동정이나 연민 따위를 마치 기발한 아이디어인양 앞세운 극적 동기(動機) 그 자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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