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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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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 히스토리(4)
내용 시추에이션드라마 지고 연속극은 강세
1995년 또 하나의 열풍 ‘모래시계’


1986년 11월 9일부터 무려 8년 동안이나 끌어온 MBC-TV의 일요아침 시추에이션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이 1994년 11월 13일에 막을 내렸다. 다세대 서민가족들의 일상생활과 희로애락을 담아왔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연속극이 아닌 정해진 무대에 매번 이야기만 바뀌는 시추에이션드라마로서의 특징을 살려오던 포맷이 사실상 자취를 감추는 추세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끌었던 직장을 무대로 한 KBS의 ‘TV손자병법’과 SBS의 시추에이션드라마 ‘목소리를 낮춰요’ 등이 사라진 뒤라서 이 ‘한 지붕 세 가족’의 폐지는 곧 시추에이션드라마의 퇴조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특히 MBC의 또 다른 시추에이션드라마 ‘전원일기’가 농촌과 농민들을 그린 편이었다면 ‘한 지붕 세 가족’은 이른바 도시서민을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는데, 점점 강하게 밀려드는 연속극 추세에 그만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로써 한국TV드라마에 있어서 단막과 연속성의 장점을 합친 시추에이션드라마는 확 줄어들고 그 후로도 활발한 부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1990년대 중반의 한국TV드라마는 다시 한 번 연속극 전성시대로 가는 흐름이었다. 그리고 드라마 내용으로 봐서는 김운경 극본의 MBC드라마 ‘서울의 달’과 같은 이른바 서민 형 드라마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세는 김수현 극본의 SBS드라마 ‘작별’과 같은 도시중산층 이야기로 서서히 옮겨가는 중이었다. 이것은 국민소득 증가로 인한 동시대의 생활수준 향상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무릇 TV드라마의 리얼리티란 그 시대 생활상과 의식의 그레이드를 가장 잘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생활의 주 무대와 살아가는 상황이 그만큼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는 곧 텔레비전드라마의 숙명이기도 한 현실성을 뜻하는 것으로, 모름지기 TV드라마란 세상의 흐름을 예리하게 포착할 필요가 있다는 매체의 본질과 특성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일면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TV드라마 가운데 현대물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시기에는 서민이나 달동네 이야기에서 중산층의 생활로 텔레비전드라마의 화두가 서서히 옮겨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시추에이션드라마 형식은 사라지고
연속극 강세 속에 ‘모래시계’ 등장


바야흐로 이런 추세 속에 드디어 1995년 연초에 금세기 TV드라마 계를 또 한 번 강타하는 한편의 드라마가 등장한다. 송지나 극본 김종학 연출의 ‘모래시계’가 그것이다. 그동안 ‘아씨’나 ‘여로’처럼 어쩌다 한 번씩 전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이른바 국민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SBS가 개국 4년째에 방송한 이 24부작 드라마 ‘모래시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사(示唆)하는 바가 달랐던 드라마 가운데 하나다. 우선 1980년대 초를 전후한 현대사의 격랑 속에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뇌를 앞세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시대성과 사회성, 정치적 상황과 연계해 평범하고 흔한 멜로드라마나 홈드라마에서 과감히 벗어난 듯 했고, 그때까지의 드라마들과는 확연히 다른 제작풍토에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2년이 넘는 제작기간에, 당시로서는 놀랄만한 편당 1억5천만 원(물론 그 후로 제작비는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크게 늘어나지만)이라는 엄청난 제작비 투입, 주 4회 연속집중편성도 주효했고, 제작기간 동안의 지속적인 홍보와 방송사의 전략적인 투자와 지원은 새로운 드라마제작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 제작을 시작한 날로부터 방송이 끝나기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특정드라마 관련 기사가 어느 신문이든 실린 것은 아마도 이 ‘모래시계’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당시 모든 신문들은 돌아가면서 아직 나오지도 않은 ‘모래시계’ 관련 화제나 기사를 돌아가면서 다뤄줬다. 그때 신문들이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그 후 TV드라마도 드라마 자체 품질 외에 적극적인 홍보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발전해 2000년대 접어들어서는 으레 ‘제작발표회’란 형식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그만큼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드라마의 작품성 외적인 전략도 극성스러워졌다. 그 결과 드라마 ‘모래시계’는 곧 ‘귀가시계’로 불릴 정도로 모든 계층을 TV앞에 불러 모으는데 성공했다. 이 ‘모래시계’가 방송되는 기간에는 모두가 일찍 귀가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1970년대 초중반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 모아 TV드라마를 일약 대중적 아이콘으로 만든 몇몇 드라마들 못지않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종전의 인기드라마들이 주로 일일연속극이었다면 ‘모래시계’는 일종의 미니시리즈 형태로 사람들을 TV앞에 끌어 모았다. TV드라마를 두고 수려한 영상미학이니 완성도니 하는 말도 이때 나왔다. 드라마 소재의 확충과 새로운 시각의 확장, 세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등 모든 면에서 여태까지의 틀을 부수는 역할도 해냈다. 이제는 드라마도 작품의 내용 위주로, 내용에만 의존하지 않고 보다 폭 넓은 영상미학과 상업성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모래시계’ 폭풍, 드라마시장 왜곡에도 일조


이 ‘모래시계’로 인하여 스타작가와 스타감독(연출)이 탄생했다. 사람들은 이들이 만드는 드라마라면 무조건 성공적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이들의 조합, 즉 콤비네이션은 지속적인 성공을 이뤄내지 못했다. 감성이나 정서보다는 지나친 드라마공학에 의존하거나 드라마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용에 상관없이 그들이 만드는 물량투입 위주와 이벤트화 내지는 화제주의적인 제작수법이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허점이 여기저기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인간과 삶에 대한 작가의식이나 정신 또는 철학이 아니라 그저 감각적으로 이야기 구성만을 해가는 기능공 수준임을 알아버렸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이미 스타가 돼버린 탓에 자신들이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분석하지 못했다. 그 결과 ‘모래시계’ 이후 이들이 만든 드라마들은 늘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고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시작했지만 성과를 내는 데는 매번 실패했고 헛된 명성에 매달리기를 거듭한다. 이 ‘모래시계’로 인해 태어난 스타감독은 드디어 독자적인 드라마제작사를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고, 많은 투자를 받아 제작을 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다 2013년 7월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모래시계가 아니라 모래성이었던 셈이다. 극본 작업에 작가의 독자적인 창작이라기보다는 연출자의 의도가 상당히 반영되거나 공동 집필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등의 여러 가지 기능적인 변화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말하자면 TV드라마의 근간이 되는 극본에 그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협업체제로 기능성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비록 일부의 경우였지만 작가는 더 이상 내용을 책임지는 저작자가 아니어도 좋다는 풍토를 조성한 것이 일차적 화근이었다. 극본에서부터 독창성보다는 오로지 기능과 능률 위주로, 극본의 작품성을 사지 않고 작업에 필요한 재료 정도로 인식하는 데서 작가에 대한 개념을 달리한 것이다. 드라마는 결국 내용의 진정성이지 판타지 등의 무슨 장르의 개발이나 테크닉 만능주의 또는 상업적 물량투입으로 결코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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