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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히스토리(13) - 드라마작가의 낭만시대(2)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히스토리(13) - 드라마작가의 낭만시대(2)
내용 “악필과 늑장원고도 낭만이던 시대”


요즘 같으면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작가가 원고를 늦게 써서 펑크를 낼 뻔 했다거나, 한쪽에선 촬영을 하고 있는데 겨우겨우 한 장씩 넘기는 이른바 쪽 대본 같은 것 말이다. 지금은 원고사고가 어쩌다 한번씩, 그야말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고가 늦거나 몇 장씩 넘기는 쪽 대본이 있을 수도 없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면 가차 없이 축출되고 결코 용납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텔레비전드라마 초창기인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작가의 원고가 늦는 것은 아주 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제때 극본이 나온다는 것이 어딘가 이상할 정도로 드라마의 원고는 아예 늦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특히 한운사(韓雲史), 조남사(趙南史) 등 ‘사(史)’자 돌림의 대가들이 원고 늦는 대표들이라, 어쩌다 누가 원고를 늦게 쓰는 날이면 “지가 무슨 한운사라고” “지가 무슨 조남사라고” 하면서 비웃기까지 했다. 악담을 하거나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놀리는 정도에 그쳤다. 그만큼 작가의 원고가 늦는 것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었다. 오죽하면 늦겠는가, 명작을 써내기 위해 온갖 진통을 겪느라 늦으시겠지 하고 오히려 안타깝게 생각하고 기다려주었다. 지금처럼 한꺼번에 많은 드라마들이 제작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스런 시기였지만, 이들 원고가 늦는 작가 중에 하이라이트는 역시 작가 한운사였다. 그는 연출이나 조연출을 맡은 사람이 옆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데도 “이봐, 바둑 한판 둘까?” 하고 느긋하게 늑장을 부리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그 감시자들이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연기 같이 사라지는 것도 선수였다. 한국최초의 텔레비전일일연속극으로 꼽히는 ‘눈이 내리는데’를 쓸 때도 그는 예외가 아니었다.


원고가 늦다고 구박하지 않아
근데 늦은 원고가 더 좋은 드라마로


쓰라는 원고는 안 쓰고 하도 잘 없어지니까 담당 PD가 호텔방에 작가를 가두고는 밖에서 잠그고 열쇠를 가지고 가버렸는데도 감쪽같이 방을 빠져 나가는데 성공했다는 전설처럼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는 걸핏하면 원고가 늦어 스튜디오에선 모든 스텝들과 연기자들이 촬영을 하다 말고 밤을 꼬박 새며 기다리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다지 불평을 하지 않았다. 작가선생님께서 오죽했으면...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기가 막히는 일은 그렇게 겨우 한 장씩 원고가 넘어 오면 찍고 또 찍고 한 드라마가 다들 긴장한 탓인지 시청자들이 훨씬 재미있어 하더라는 아이러니다. 하기야 원고도 늦고 반응도 시원찮으면 누가 그 작가하고 다시 일하겠다고 하겠는가. 그 늑장원고의 결과 쓰는 드라마마다 히트를 치고 다들 좋아하는데 어쩌겠는가. 멋과 낭만이 드라마 속에 뚝뚝 흘러내리는데 그까짓 원고 늦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아득한 낭만의 시대 이야기다. 요즘 같으면 다시는 그 작가와 일하지 않을 것이며 마치 공공의 적인 양 기피인물이 되었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적(敵)은 악필(惡筆)과 난필(亂筆)이었다. 요즘과 달라서 모조리 드라마를 손으로, 육필로 쓰던 때의 이야기다. 자기가 써놓고도 무슨 글자인지 모를 정도로 악필과 난필에 치를 떨던 시대가 있었다. 대표적인 악필의 대명사로 세 명의 작가가 있었다. K모씨는 글자가 꼭 무슨 상형문자 같았고, S모씨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나 라면처럼 오그라드는 글씨를 써서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고, 또 J모 작가는 그냥 제멋대로 불규칙하게 휘갈겨 쓰는 바람에 역시 누구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O씨는 작대기만 잔뜩 세워놓는 모양이어서 얼핏 보아서는 외국어 같기도 하고 삐죽삐죽한 것이 영락없는 난수표였다. 근데 용하게도 이들의 글씨를 알아보는 사람이 각 방송사마다 딱 한 사람씩 있었다. 대본을 프린트하기 위해 대본 만드는 부서에서 타자를 치는 여직원들이었다. 유일하게 이들이 글씨를 알아보고 귀신같이 대본 집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도 누구 한 사람 짜증을 내거나 곤란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작가의 낭만과 멋으로 받아주었다. 내용만 잘 쓰면 그만이지 그까짓 글씨야 아무려면 어떠냐는 식이었다. 그렇게 작가들은 존중받았다. 한번은 사극 ‘집념’(훗날 ‘허준’ 시리즈의 원작)의 작가 이은성씨가 새벽에 고속버스 터미널에 나타났다. 한손에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마치 도망을 치듯 두리번거리며 버스를 타려는데, 역시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망자요?” 자세히 보니 역시 사극을 쓰는 임모 작가였다. 그도 역시 원고 독촉을 못 견디고 몰래 어디 지방에라도 내려가 숨어서 원고를 쓰기 위해 새벽 미명을 기하여 도망을 가는 중이었다. 이 새벽의 도망자들 역시 원고가 늘 늦는 편이었다.


아무도 못 알아보는 악필과 난필도
드라마만 잘 쓰면 모두가 웃어넘겨


이은성씨는 완벽주의자라 드라마 한편을 쓰려면 두세 배도 넘는 파지(破紙)를 내는 사람이었다. 단 한 글자도 고쳐 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원고가 늦고 구겨버리는 파지가 엄청날 수밖에. 이들 두 사람은 원고를 제때 못 써서 낑낑거릴 때는 언제나 지방 어디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잠적하는 스타일들이었다. 세칭 ‘잠수 타는’ 것이다. 아예 숨어서 뒤늦게라도 원고를 써서 나타나는 작가들이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그들을 탓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좋은 작품을 써서 나타나기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한번은 위의 원고 지각대장 한운사씨가 TBC에서 무슨 특집드라마를 쓸 때였다. 하도 원고가 늦어서 이러다간 제작도 못하겠다 싶어 PD가 방송사 도서실 한 귀퉁이에 모셔다 놓고 그 자리에서 쓰도록 특별 배려를 했다. 근데 그때가 이른 봄이라 난방도 안 하고 조금 춥게 느껴졌다. 작가 한운사씨는 구내전화를 들었다. 그리고는 사장을 불러 통화했다. “나 한운사요. 여기 도서실인데 좀 춥군 그래.” 이러고 끊자마자 곧바로 건물 전체에 즉각 난방이 들어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만큼 작가라면 대접을 받고 누릴 건 다 누리고, 어딜 가나 존중 받으면서 일하던 낭만의 시대가 있었다. 한운사가 누구인가. 원고 늦기로 말하면 이가 갈릴 정도로 모든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작가였지만, 그 시절에는 작가의 말이라면 웬만한 무리를 해서라도 할 수 있는 한 편의를 다 봐주던 그런 시대였었다. 작가 한 마디면 씨알이 팍팍 먹히던 그런 시절의 작가들 또한 어쩌다 한 편을 써도 대접을 받을만한 작품들을 써내는 편이었다. 존중받을만한 작품들을 쓰고 거기에 걸맞은 대우에 결코 인색하지 않았던 그런 드라마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그때는 드라마가 기계적이고 공학적인 논리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 시대의 정서를 담으려는 몸부림이 어느 드라마에나 있었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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