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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3)-조남사(3)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3)-조남사(3)
내용 불후의 인기드라마와 작가이야기
드라마 ‘청실홍실’의 작가 조남사(3)


“동방화학이라는 회사의 여비서 모집에 무려 70여명의 응모자가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서 뽑힌 사람이 한동숙과 신애자였다. 동숙은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전후파(戰後派) 여성이었고, 애자는 시험을 주관하는 나(羅) 기사(기술자)의 전 애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결혼했다가 전쟁미망인이 되어 있었다.
이 두 여인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나 기사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동숙은 발랄한 성격상 적극적으로 접근하는데 반해 애자는 자기가 예전에 그렇게 좋아했음에도 이루지 못하고 결혼을 해서 미망인이 된 것을 후회하며 자제했다.
그런데 나 기사는 애자 편에 더 가까웠다. 가정이 부유하고 발랄한 동숙보다 미망인이 된 가련한 애자가 더 맘에 있었다. 애정의 갈등과 대결이 여기저기서 아슬아슬하게 벌어질 수밖에. 그럴수록 청취자들은 더욱 귀를 기울이며 얘기의 진전을 지켜보게 되는 것.
두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 기사는 결국 미국으로 떠나면서 동숙이 아닌 애자와 장래를 굳게 맹세하게 된다. 반면 동숙은 아버지로부터 고아원을 물려받아 운영해온 윤철이라는 또 다른 인물과 결혼을 하게 된다.”

이것이 드라마 ‘청실홍실’의 줄거리다. 최초의 연속극, 최초의 인기드라마의 대강줄거리는 이런 것이었다. 전형적인 삼각관계 드라마의 패턴이 비로소 여기서 태어난 셈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신파이야기이고 흔해 빠진 멜로드라마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1956년 당시로서는 실로 신선하고 파격적인 스토리텔링이었다.
우선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쟁탈전을 벌인다는 것도 당시로서는 실로 혁명적인 발상이지만, 더욱이 거기다 기혼의 미망인과 젊은 미혼남성과의 결합이라니! 그때 이 땅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주인공 남성은 당시로선 드물게 비행기를 타고 미국이란 나라로 훌쩍 떠난다. 물론 거기서 살자는 약속을 남긴 채.
최초의 인기드라마 ‘청실홍실’은 당장 영화로 제작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고, 인기드라마는 그 후로 방송 즉시 영화로 팔리는 전례를 남기게도 되지만, 무엇보다도 한동안 국산영화에서 마지막 처리과정인 엔딩을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사라지는 것으로 유행시켰다.
지금처럼 공식적인 시청률조사가 없던 시절이라 얼마나 인기가 높았는지 유감스럽게도 그 과학적 근거자료는 없지만, 사람들은 매주 가슴을 졸이며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기다렸다는 기록은 당시의 신문기사 등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드라마의 전개과정은 달콤한 만남도 있고 아쉬운 헤어짐도 있어서 마치 장면 장면을 바로 현실에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청실홍실’의 인기는 시대가 만든 것

육이오동란이라는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쳤고, 이미 전쟁으로 인해 기존의 윤리로서는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 없지 않았다. 무엇으로 이 사람들에게 정서적 위로를 줄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이 헝클어진 애정모럴을 어떤 방향으로 정리해 나갈 것인가.
전쟁으로 인해 숱한 미망인들이 생겨났고, 그들 가운데는 너무나 상처가 깊어 어떻게 추스르고 어떻게 감당해야 할 바를 모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때였다.
여기서 조남사가 착안한 것이 ‘애정’이었다. 생활도 현실도 돌아보지 말고 오로지 애정에 한번 매달려보는 것이 하나의 정신적 돌파구가 아닐까. 삼각관계는 사실상 구약성서 창세기 때부터 있어온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가 아니겠는가. 애정문제에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정서적 해방구라고 굳게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남사의 생각은 적중했다.
멜로드라마였다. 이성보다는 정서에 호소하는 감성위주의 드라마를 내세운 것이다. 한국적 멜로드라마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우연과 해프닝이 적당히 섞이면서 생활보다는 애정에 무게를 두는 이른바 감성의 드라마! 조남사의 애정예찬 탐미주의는 큰 성공이었다.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드라마로 다루다니!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에 쏠리고 있었다. 애정만을 다루는 멜로드라마는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했고, 그것은 곧 전쟁으로 허전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전쟁 통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한 사람도 많았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 다시 사랑을 꽃피우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시도된 삼각관계의 애정 물은 실로 신선하기까지 했다. 작가 조남사는 그 후로 마치 멜로드라마작가인양 낙인이 찍히고 말았지만, 그는 조금도 후회 않고 줄기차게 그의 멜로드라마를 써 나갔고, 멜로에 관한 명실공이 대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세상이 메마르고 거칠수록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어지는데, 그 중에서 애정문제가 가장 으뜸이라 자신이 쓰는 드라마의 테마로 삼았다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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