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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11)-김기팔(6)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11)-김기팔(6)
내용 악필(惡筆)의 대명사, 악필의 천왕(天王)
혼을 담아 쓰던 육필원고시대를 살다 가다

1987년 8월 10일자 중앙일보의 ‘파한잡기’라는 칼럼에 작가 김기팔은 이런 글을 남겼다.
“방송가에서는 물론이고 일부 신문지상에서도 ‘주연급 배우’라는 말을 흔히 쓴다.
A, B, C, D라는 자연인인 배우가 있을 때, A는 주연급 배우고 여타는 조연급 배우라는 식이다. 배우에도 계급이 있다는 뜻인지....물론 드라마의 배역에는 주역도 있고 조역도 있고 엑스트라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배역상의 구분인데 인간(배우)에게 계급이 있는 듯한 용어를 쓰다니....그 발상이 한심하고 위험하다. 그래 주연급 배우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내가 묻기를 “그러면 그대들은 주연급 면허증을 가졌느냐, 있으면 좀 보자”라고 따진 적이 있다.
배우라면 누구도 주연을 맡을 수 있고, 조연도 맡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은 평등하고 균등한 기회를 가질 권리가 있는데 굳이 ‘주연급 배우’라는 규정을 두는 것은 30년 가까운 우리네 특수한 정치문화의 영향인지....물론 배우들 각자에게 인기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양키즘적인 ‘스타’는 있을 수 있어도 계급적인 구분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작은 배역이나마 열심히 해내는 배우들을 격려한다는 배려는 전혀 안 하고, 강자(强者) 위주의 정책이 어찌 방송계에만 쓰여지랴만....인간은 평등하다는 의식 하나 제대로 못 갖춘 한국에서, 아니 방송계에서 나는 오늘도 작가랍시고 글을 써먹고 산다.”

주연과 조연은 있어도 ‘주연급 배우’나 ‘조연급 배우’는 따로 없다

드라마에 관한 김기팔의 시각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다. 그래서 그런지 김기팔의 드라마에서는 이른바 조연급 배우들이 주인공역을 맡아 일약 스타로 떠오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억새풀’의 허윤정, ‘야망의 25시’와 ‘거부실록-공주 갑부 김갑순’의 박규채, 사실상 마지막 TV드라마가 된 ‘땅’의 탤런트 오지명 등이 그들이다. 한 결 같이 별 주목받지 못하는 배우들을 데려다 그의 드라마에 출연시켰다. 그러면서 설사 완결하지 못하고 중간에 중단되는 드라마라 할지라도 불후의 인기드라마로 남겼다. 작가란 무엇인가? 드라마작가란 무엇인가? 오로지 인간의 본질, 인간의 본성과 삶, 인생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파고드는데 한 치의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김기팔은 몸으로, 가슴으로, 작품으로 말했다. 그의 40대 초반인 1980년 말에 18년이란 세월을 마치 전속작가처럼 몸담아 온 당시의 DBS 동아방송이 강제언론통폐합으로 KBS로 넘어가 사라지고 난 뒤, 그는 동아방송을 생각할 때마다 아련한 첫사랑의 연인을 떠올리듯 가슴이 한없이 두근거린다고 했었다. 그가 회고하는 동아방송은 상업방송이면서도 다른 민방과는 달리 ‘상업성=시청률(청취율)=저속함’의 등식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절 작가 김기팔은 방송작가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고,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정계야화’만 해도 방송사 측에서 청취율을 고려해 재미있게 써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작가 역시 저속한 이야기로 청취자와 야합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른바 멜로드라마는 쓰지 않았다. 사랑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면서 주로 남자들의 세계, 남자이야기만 썼다. 여성취향으로 변해가는 텔레비전드라마에서 남성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몇 안 되는 드라마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얼마나 행복한 시절이었을까.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날이 갈수록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고통이었으리라. 한 5년 동안 절필을 하고 밤새 술만 퍼마셨다. 그렇잖아도 평소 어눌한 터에 성격 급한 사람들이 주로 그러듯 취기가 오르면 침을 튀기면서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마치 한 마리의 짐승처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했고 때로 괴팍해 보이기도 하는 행동으로 씩씩거리며 종적을 감추기도 했었다.

그리운 악필(惡筆), 남자이야기와 남성드라마의 시절이여!

그런 김기팔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악필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정작 원고를 쓴 자신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글씨가 엉망이었다. 1990년대 초까지 방송계에는 육필로 원고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옆으로 원고를 쓰기 보다는 아래로 내려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적잖은 방송작가들이 아예 원고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전용원고지를 쓰기도 했다. 그러니까 1990년대 말까지는 육필(肉筆)로 쓰는 원고가 더러 방송가에 남아있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작가들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거나 타이프나 워드프로세서로 원고를 쓰는 경우가 일반화 되지 않았다. 모두 자기 손으로 원고지에다 써내려갔다. 사실상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육필원고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 육필로 원고를 써온 사람들은 원고지에 손으로 쓰지 않고 자판을 두들겨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쩐지 혼이 없는 글을 쓰는 것 같다고도 했었다. 그만큼 육필원고의 의미를 각별히 생각하던 그 시절에 정말 김기팔의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난필이었다. 이집트나 인도의 글자처럼 생겼다고나 할까, 아니면 일종의 상형문자 같다고나 할까. 아무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지독한 악필도 단 한사람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원고를 받아 프린트로 넘기기 위해 타이핑을 하는 각 방송사의 여성타이피스트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악필, 어떤 난필도 오자나 탈자 하나 없이 귀신같이 알아보고 쏜살같이 쳐서 넘겼다. 그런 김기팔의 글씨와 드라마를,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누구보다 그리워 한 사람들이 바로 그 타이피스트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김기팔의 드라마에는 항상 약간의 중독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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