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29)-한운사(4)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29)-한운사(4)
내용 라디오와 TV에서 ‘한운사신드롬’
한국방송드라마의 초석이 되다

작가 한운사는 전후(戰後)파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주오(中央)대학을 다니다가 학병으로 전쟁에 끌려 나갔고,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다녔다. 학비를 벌기 위해 당시의 서울중앙방송국(KBS의 전신)에 방송 원고를 쓰겠다고 갔는데, 철학을 공부한 순수문학도로서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 불과 며칠 안 되어 그만두기로 했다. 근데 그때 그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방송사 고위간부 가운데 한 사람이 그를 붙들고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이 배우고 알고 있는 그 수준 높고 어렵고 고상한 철학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쉽게 풀어줄 수는 없겠는가? 그것도 진정한 철학도나 문학도라면 한번 해 볼만 한 일이 아니겠는가. 방송에서의 글은 사실상 글이 아니라 말이고, 그래서 하찮게 여길 정도로 아주 쉽게 전달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묘한 철학과 문학이 갖는 순수성을 전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설득에 넘어갔다. 이때부터 한운사는 방송에서의 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철학과 문학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이런 생각은 이후 나타나는 한운사의 모든 드라마에 크든 작든 스며들게 되었고, 그의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다.

어려운 철학과 문학적 순수성을 풀어
방송의 언어로 널리 그 향기를 전하리라

이후 육이오전쟁이 터져 그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거기서도 삶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훗날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아낌없이 주련다’의 배경)을 토대로 드라마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진다. 전쟁이 끝나고 수복해서는 잠시 학교선생 노릇도 하다가 언론계로 옮겨 일간신문 문화부장까지 지낸다.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뛰어들어 오로지 작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육이오 이후 가장 인기프로그램이었던 ‘인생역마차’나 ‘어찌 하리까’ 등의 청취자 사연을 극화한 프로그램에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실제 삶을 접하게 된다. 바야흐로 드라마의 시대가 열리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해탄은 알고 있다’를 시작으로 무수한 인간들의 삶을 드라마로 쓰게 되는 것이다. 엄격히 말해 한운사의 드라마 치고 실제 모델이 없는 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든, 자신의 삶에서 또는 남을 만나 삶의 경험을 취재하든, 그것을 토대로 작가적인 상상력을 보태든, 아니면 누군가의 삶을 지켜본 것이든, 아무 근거 없이 순전히 지어내는 이야기는 없었다. 이런 정신이 ‘남과 북’ ‘빨간마후라’와 같은 드라마를 탄생시켰고, ‘레만 호에 지다’ ‘서울이여 안녕’ ‘꿈나무’ 한국최초의 TV일일연속극 ‘눈이 내리는데’ 방송 후 최초로 책으로 출간되고 영화로 만들어진 드라마 ‘이 생명 다하도록’도 탄생시켰다. 유난히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많이 드라마 화 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여류문인으로 스님이 된 김일엽, 여류화가 나혜석, 정치인 이승만을 다룬 ‘잘 돼 갑니다’ 역시 정치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박 마리아’ 등등 실재했던 인간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들이 많았다.
1970년대는 분명 ‘한운사의 시대’
드라마로 영화로 소설로 종횡무진

드라마란 픽션 즉 허구(虛構)일 뿐 결코 황당무계한 거짓을 지어내는 엉터리 사기행각, 거짓말투성이가 아니라는 소신이었다. 자신이 아니면 남의 인생, 남의 경험 또는 남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작가정신에 투철했다. 다시 말해 인간본질에 천착했다. 1970년 드디어 한운사는 KBS-TV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일종의 대하드라마 성격의 일일연속극을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육이오를 거치면서, 한 집안이 헤쳐 나온 격랑의 세월을 드라마로 쓴 것이다. 그것은 곧 한국인의 근현대사이기도 하고, 대를 이어 살아온 삶의 역사이기도 한 그런 이야기였다. 생활도 있고, 정신도 있고, 이념의 소용돌이와 전쟁의 포화도 고스란히 담아 한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텔레비전방송에서 꿈도 꾸지 못했던 사회와 시대상을 실어 많은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른바 텔레비전대하드라마의 시초이자 TV드라마가 눈물이나 짜고 남녀 간의 사랑타령이나 나누는 멜로드라마만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부각시켰다. 마침 그 무렵에는 민방인 TBC-TV의 일일극 ‘아씨’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며 방송사상 처음으로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오르고 있던 시절이었다. 모든 시청률은 마치 ‘아씨’에 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아버지와 아들’ 또한 시청률이 결코 만만찮았다. 특히 ‘아씨’가 주로 부녀자 층을 시청자로 끌어들이는 반면 ‘아버지와 아들’은 이른바 식자층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에 속하는 드라마수용자들의 관심을 끌어 텔레비전드라마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꾸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 ‘아버지와 아들’ 이후에 많은 텔레비전드라마들이 시대를 관통하는 삶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계속 내놓게 되었고, 한동안 텔레비전드라마의 한 패턴으로 하나의 트렌드로 분명하게 자리 잡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일제와 해방과 육이오를 거치면서 살아온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이 역시 평소에 그가 천착한 시대와 사회성에 대한 관찰의 결실로,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삶을 역사의 흐름과 함께 또는 역사를 통해 보려는 작가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나간 세월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드라마는 항상 현실에도 눈을 돌리고 있었다. 가치관의 변화와 청소년들의 성장, 산업화로 인한 희망을 이야기 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특히 한운사의 1970년대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대 야망’ ‘또리 자서전’ ‘엽전’ 등의 신문연재 소설도 한동안 석권했다. 드라마로 시작되었지만 그야말로 ‘한운사의 시대’였다. ‘잘 살아 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의 가사도 사실은 한운사의 작품이었다. TV, 영화, 드라마, 소설 할 것 없이 분명 대중문화에 있어서 ‘한운사의 시대’가 있었다.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