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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38)-신봉승(1)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38)-신봉승(1)
내용 ‘이씨(李氏)조선’이 아니라 ‘조선(朝鮮)왕조’다

TV드라마에 있어서 역사극의 시작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예컨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라디오방송이 주요매체이던 시절에도 사극은 방송드라마 가운데 꽤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그랬던 사극의 인기가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되살아난 것이다. 라디오에서나 TV에서나 똑같이 인기를 끌었던 ‘장희빈’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니까 TV사극은 라디오사극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만큼 방송사극의 뿌리가 깊다는 이야기다. TV의 등장과 더불어 하루아침에 불쑥 나온 것이 아니라 방송에서의 사극은 처음부터 주목받는 콘텐츠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대물, 즉 현실의 이야기 못지않게 역사 속에서 드라마를 끄집어내는 방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흥미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특히 텔레비전방송이 탄생하자마자 동시에 불붙기 시작한 역사극에 대한 관심은 대단한 것이어서 한때 사극작가 이서구 등의 전성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땐 말이 정사(正史)이지 거의 야사나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다루기가 일쑤였다. 당시는 체계적인 역사공부를 한 사극작가들이 드물기도 했지만, 역사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과 관점을 가질 수도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굳이 역사에 관한 새로운 소재를 발굴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역사를 정리하거나 정면으로 다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거나 드러난 이야기 가운데서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를 골라 사극을 해도 별 문제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자료나 기록에 의해 사극을 하려는 시도는 미처 하지 못했다.

실록대하역사드라마의 등장으로
사극, 야사(野史)에서 정사로 진화(進化)

그러니까 늘 사극으로 다루는 단골메뉴는 세종대왕이나 단종애사, 장희빈 또는 연산군 등 일반에게 잘 알려진 조선왕조 시절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때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를 한번 정리해보자는 야심을 갖고 과감하게 사극을 기획한 방송사가 나타났다. MBC-TV의 ‘조선왕조 오백년’과 작가 신봉승이 그들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이미 드라마로 방송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왕조 개국에서부터 차례로 역사를 정리하는 시도는 없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1983년 3월 31일, 제1화 ‘추동궁마마’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추동은 고려의 왕도 개성에 있는 동네이름이다. 이성계가 새 왕조를 세워 임금이 되기 전 살았던 집 잠저가 그쯤에 있었을 것이란 설정이었고, 여기서 ‘마마’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정실부인을 뜻한다. 집주인이 임금이 되면 그가 살던 집은 궁으로 격상되기 때문에 그렇게 붙인 것이다. 조선왕조 개국과 관련된 무렵부터 스스로 실록대하역사드라마로 규정한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은 시작되었다. 과연 사람들이 봐줄 것인가. 혹시 딱딱하고 지루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 염려와 고민은 있었지만 모험과 도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선 제1화가 방송되는 동안 사람들은 조선왕조 5백년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혀 있던 인물들, 그때까지의 사극에 잘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들, 예컨대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 이숙번 등의 새로운 캐릭터를 끄집어내준 데 대해 큰 관심과 흥미를 가져주었다.
장장 8년 가까이 끌고 간 조선왕조 이야기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이바지

한 왕조를 정리해나간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 속의 인물들과 이야기가 소개되는 재미로 사람들은 차츰 이 사극에 몰려들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성공이었다. 날이 가고 회가 거듭될수록 사극 하면 단연 ‘조선왕조 오백년’을 꼽을 만큼 당시 TV역사극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이 드라마가 말하는 역사가 가장 표준적인 정사라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드라마는 드라마이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공식적인 사료와 기록에 의해 드라마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역사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하고, 나름대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드라마를 써나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마치 드라마로 옮겨놓은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할까. 그 결과 얻어진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조선왕조에 대한 호칭이었다. 일제식민지사관에 의해 ‘이씨왕가’ 쯤으로 조선을 비하하는 표현인데도 잘 모르고 ‘이씨조선’이라고 하던 것을 ‘조선왕조’로 고쳐 부를 수 있게 한 일이다. 물론 그 후로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여전히 무심코 조선왕조를 이씨조선 또는 ‘이조시대’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 ‘조선왕조 오백년’이 나가고 난 뒤로 상당히 개선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실록대하역사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은 제2화 ‘뿌리 깊은 나무’ 제3화 ‘설중매’ 등으로 이어져 장장 8년 가까이 인기리에 방송되었다. 방송기간에서나 반응에 있어서 대표적인 역사드라마로 자리 잡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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