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39)-신봉승(2)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39)-신봉승(2)
내용 실록대하역사드라마가 있기 전,
그는 한낱 이야기꾼에 지나지 않았다

신봉승은 이야기꾼이었다. 그것도 전문적인 이야기꾼이었다. 모든 드라마작가는 당연히 이야기꾼이다. 남이 속아 넘어가지도 않을 엉성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주 전문적인 이야기꾼이라야 한다. 여기서 ‘꾼’이란 프로페셔널 또는 전문적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신봉승은 시도 쓰고 영화시나리오도 쓰고 했지만 특히 방송드라마에 와서 이야기꾼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처음엔 “빙글빙글 도는 의자”로 시작되는 주제가의 ‘회전의자’와 같은 라디오드라마도 쓰고, 그러다가 당시 TBC-TV(동양방송)의 잘 나가던 드라마연출가 김재형PD의 권유로 사극에 발을 들여놓았다. 김재형은 그 무렵 한운사 극본 ‘서울이여 안녕’ 등 불과 몇 편을 빼고는 온통 사극연출로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 김재형이 처음 사극 한편을 제안했을 때 신봉승은 어불성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어떻게 역사드라마를 쓴단 말인가! 드라마라면 온통 지어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럴듯한 픽션을 적당히 포장해서 쓰면 된다고 믿고 있는 사람한테 엄연히 역사적 기록이나 사실(史實)에 입각한 사극을 쓰라니! 하지만 워낙 집요하고 간곡한 설득에 그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미 사극을 쓰고 있는 몇몇 작가들이 고령이라 그 뒤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 내놓은 15분짜리 일일연속극이 ‘사모곡’으로 연산군의 일대기였던 셈이다. 주연은 김세윤과 고은아가 맡았고 이미자가 부른 주제가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극이 되는 것도 아니었으며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신봉승은 고전문학에 해박한 지인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연려술기술을 읽어 보라마.” 이 한 마디가 전부였다.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연려술기술’ 국역본 14권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연산군고사말본’이란 대목을 찾아낸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속에 든 이야기는 당시의 역사소설 개척자인 월탄 박종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금삼의 피’ 그대로였다.

순전히 지어내는 창작사극보다
정사(正史)중심의 역사드라마로 가자!

첫 번째 사극을 그로서는 너무나 큰 중압감 속에 끝냈다. 하지만 그가 쓴 사극에 대한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었다. 두 번째 사극은 사실(史實)과 상관없는 이른바 창작사극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TV드라마 ‘연화’가 바로 그것이다. 시대도 인물도 스토리도 모두 그의 창작이었다. 이것을 기화로, 이 인기를 바탕삼아 ‘조선 여인 5백년’ 시리즈가 탄생한다. 드라마‘연화’의 주인공이 여자라는 데서 힌트를 얻어 아예 계속 여성시리즈 사극을 하기로 한 것이다. ‘윤지경’ ‘인목대비’ ‘별당아씨’ ’임금님의 첫사랑‘으로 이어졌다. 물론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이러는 과정에서 한편에서는 정사(正史)를 벗어난 야사(野史) 중심의 사극이 오히려 한국사 정신을 훼손한다는 질타가 이어지기도 했다. 역사드라마를 쓰는 작가로서는 뼈아픈 반성과 성찰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급기야 정사(正史)에 도전해서 새로운 역사드라마의 방향을 제시하리라는 야심찬 다짐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에 이른다. 역사의 곁가지 보다는 본줄기에 매달리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신봉승은 역사에 대한 학문적 탐구도 함께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국보 제151호인 ’조선왕조실록‘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역사드라마 작가가 비로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TBC를 떠나 MBC-TV의 사극연출가 표재순을 만나게 된다. 한 번 더 저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정사(正史)의 대중화라는 기치를 마음속에 세우고 이제는 기회가 닿는 대로 철저히 정사를 쓰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KBS에서 ’왕도‘라는 역사드라마를 쓰기로 한 것이다. 태종 이방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초기의 건국비화를 시작했다. 드라마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왕조의 역사 중에서 이만큼 박력 있고 볼륨 넘치는 시대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일연속극으로 출발한 드라마 ’왕도‘는 얼마 못 가서 주간드라마로 편성이 바뀌면서 한풀 꺾였다. 역성(易姓)혁명을 내세운 당시의 시대상황이 5.16군사쿠데타와 절묘하게 겹치는 데다, 특히 조선초기의 무자비한 골육상쟁이 유신을 앞세운 당시 군사정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KBS에서 역사드라마 ’왕도‘로 참담한 경험을 한 신봉승은 다시 MBC로 돌아간다. 거기서 대형특집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60분짜리 5부작 ‘이심의 비련기’를 방송한다.

역사야말로 진정한 드라마
‘조선왕조실록’의 늪에 빠지다

구한말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로 취임한 ‘알랭’이라는 사람은 미모의 한국여성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녀의 이름이 이심(梨心)이다. 기생이었던 탓에 조선의 음률에 능했고, 사군자(四君子) 정도의 기본적인 서화(書畵)도 가능해서 벽안의 서양인 알랭의 넋을 빼앗아 조선 여인 최초로 푸른 눈의 서양사내와 열애를 한 이야기다. 이 드라마를 위해서 신봉승은 구한말의 외교사를 상세하게 살필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첫 한일합작드라마로 꼽히는 ‘여인들의 타국’으로 새삼 일본과 얽힌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내친 김에 과거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陶工)의 4백년 한을 풀기 위해 그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인 심수관을 만나 MBC-TV 일일연속극 ‘타국’을 쓰게 된다. 그 다음이 ‘간양록’이다. ‘간양록(看羊錄)’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조선총독부가 불태우기로 지정한 강 항(姜 沆) 선생의 문집이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속에 살아남은 책이다. 강 항 선생은 당대의 선비이자 천재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 땅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간신히 살아서 귀국해서는 선조임금에게 보고서 형식으로 올린 글이 바로 ‘간양록’이었다. 이것을 드라마로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특히 당대의 국민가수 조용필이 부른 이 드라마의 주제가는 자칫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쉬운 소재를 대중화시키는데 기여하면서 일약 히트곡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정사(正史)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야사가 아닌 정사를 다루겠다는 신봉승의 역사드라마에 대한 의지는 그다지 쉽게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저 구한말이나 일본과 관련된 조선의 역사에서 이야기를 발굴하는 정도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왕조실록’의 탐독에 박차를 가했고, 그 사이 사극작가 신봉승은 나름의 사관(史觀)을 갖게 되었고, 역사에 관한 한 역사학자 못지않은 충실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마침내 때가 왔다. KBS-TV에서 대원군 이야기를 쓴 드라마 ‘풍운’이 끝나자마자 MBC-TV에서 조선왕조 5백년을 각 왕조의 순으로 몽땅 드라마로 만들자는 실로 엄청난 기획을 들고 나온 것이다. 실록대하역사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때가 1983년 3월 31일부터였다.(계속)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