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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49)-꽃피는 팔도강산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49)-꽃피는 팔도강산
내용 국책드라마로 인기 모은 ‘꽃피는 팔도강산’
최초로 전국을 누비며 야외촬영 최다기록

1974년 3월이었다. 당시 KBS의 방송국장이던 최창봉씨는 TV드라마 연출자 김수동을 방으로 불렀다. 여기서 방송국장이란 KBS가 국영방송이던 시절 사실상 방송을 총괄하던 자리다. 그리고 굳이 최창봉, 김수동이란 실명을 언급하는 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창봉은 KBS보다 먼저인 한국최초의 텔레비전방송 HLKZ 개국멤버이고 최초로 TV드라마를 연출하고 시작한 인물로, 훗날 KBS-TV의 개국은 물론 DBS 동아방송도 개국하는데 산파역할을 한 한국방송사에 있어 사실상 개국단골공신이었고, MBC사장까지 지낸 한국방송계의 보기 드문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형태로든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한국방송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출가 김수동은 일본에서 영화를 했고, KBS-TV에서는 수준 높은 단막극과 일일연속극도 많이 한 연출의 베테랑이다. “이번 새 드라마에는 특별히 각 지방의 발전상을 담아야겠는데 김수동씨 당신이 한번 맡아서 해줘야겠어.” 이것이 김수동씨를 방으로 부른 용건이었다. 자기는 TV연출 경험이 적어 전국 현지를 녹화하는 일일연속극은 자신이 없다고 했지만 최창봉국장의 생각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연기자는 TV탤런트는 물론 연극 영화를 가리지 말고 마음대로 캐스팅하라는 것이었다. 이 드라마야말로 KBS만이 할 수 있는 국가정책을 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의욕적으로 할 수가 있고, 그 파격적인 뒷받침 또한 정부차원에서 보장하는 경우였다. 그 동안의 전국 각지의 공장들과 발전상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담아서 내보내면 대 국민 홍보도 되고, 국민들 또한 피땀 흘려 일한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나온 드라마였다.

한국의 발전상을 TV드라마에 담아라
전국 각 지방을 현지 촬영한 드라마

이른바 국책드라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정책 홍보가 그렇듯이 너무나 빤하고 자칫 따분해질까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국가정책 이전에 드라마로서 과연 재미가 있겠느냐는 문제가 있었다. 작가는 윤혁민씨로 결정이 되었다. 윤혁민씨는 KBS에서 ‘꽃동네 새 동네’ 등의 주로 밝은 홈드라마를 많이 써온 작가로 KBS와 시청자들의 입맛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거기다 전국을 무대로 하는 야외녹화가 많다니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작업에 착수했다.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의 내용은 서울에서 한약방을 하는 배우 김희갑, 황정순 부부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자녀들(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달라진 생활상과 산업화 과정을 두루 둘러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찾아 나선 전국 각지의 실정에 맞게 출연자를 선정해야 했기 때문에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는 것도 특징이었다. 작품의 무대는 서울은 물론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충청도 등지로 계속 옮겨 다녔다. 이들 두 노부부는 스튜어디스인 막내딸(배우 한혜숙)과 영화배우 출신의 큰딸 최은희와 연극배우 출신인 사위 장민호 부부와 함께 서울에서 산다. 과학기술연구소에 근무하는 장민호는 박사학위를 가진 과학자이고 그들에게는 여대생 딸 김자옥이 있다. 둘째 사위 영화배우 박노식은 원래 유랑극단의 단장 노릇을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전라도 지방에서 비닐하우스를 하는데 그의 부인 도금봉은 이 노인들의 둘째 딸이다. 셋째 딸 김용림의 남편은 목장을 경영하는 영화배우 황 해, 강원도 속초에서 횟집을 하는 태현실은 넷째 딸로 육이오 때 다쳐 상이용사가 된 역전의 용사 박근형을 알뜰히도 보살피고 받들며 산다. 다섯 째 딸 부부는 윤소정과 문오장으로 포항제철 간부급 사원이고, 여섯 째 딸 전양자는 울산에 있는 정유공장에 다니는 남편 오지명과 한 커플이다. 그 무렵만 해도 사람들이 포항제철의 규모와 울산의 석유회사를 직접 본적도 없지만 그들의 역동성을 잘 모르를 때였다. 이때 태현실 박근형의 아들로 탤런트 백윤식이 출연했고, 사실은 재벌의 아들이지만 신분을 감추고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는 한혜숙의 애인으로는 탤런트 민지환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 연기자 자원을 총망라한 초호화 캐스팅이라 누구에게 카메라 초점을 맞춰야 할지 그야말로 녹화 때마다 즐거운 비명이고 즐거운 고민이었다.

연극과 영화를 총망라한 배우들의 집합
TV드라마의 본래적 역할과 기능을 보다

최초로 야외녹화가 많았던 드라마였기도 했지만 당시 해외촬영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떠난 것도 이 드라마가 처음이었다. 그렇듯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은 모든 기록을 깨고 있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연기자 이름 그대로 사용했고, 각 지방마다 자기네 지방에 사는 것으로 설정된 배우가 촬영차 내려오면 그 열렬한 환영이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사람들은 ‘꽃피는 팔도강산’을 보면서 그것이 국책드라마로 기획되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저 모두가 날마다 화제로 삼으며 한편의 드라마를 즐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쯤 되면 드라마는 성공적이다. 드라마 촬영지였던 속초의 작은 횟집은 하루아침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횟집이 되어 간판도 ‘팔도강산’으로 바꿔 달았다. 포항제철 견학과 정유공장 시찰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방에 앉아서 놀라운 산업화에 감동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굳건한 변화와 삶의 의지를 갖게 만들었다. 1974년 봄에 시작해서 다음 해 1975년 가을 방송이 끝날 때까지, 때로는 애환과 때로는 감동과 놀라움으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비롯한 온 나라가 바야흐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꽃피는 팔도강산’은 텔레비전드라마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루고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매체라는 점을 보다 확실하게 해주었다. 국가시책과 그 업적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리얼리티를 살려내고 있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은 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TV드라마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바깥세상을 내다보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말하자면 ‘거울과 창(窓)과 꿈’이라는 TV드라마 본래적 역할과 기능을 국책드라마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적절히 타당성 있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또 한편의 불후의 인기드라마가 탄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책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국책반영을 성공시킨 거의 유일한 드라마로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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