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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 세계(1) - 문학의 오늘 2021년 가을 호 특집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 세계(1) - 문학의 오늘 2021년 가을 호 특집
내용 “리얼리티와 인간본질의 추구”
김수현드라마 현상과 가치에 대하여



최근 ‘김수현드라마 전집’이 책으로 나왔다. 작가 김수현의 명품단막극과 연속극들 중에서 골라 모두 16권으로 묶은 것이다. 실로 방대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텔레비전드라마의 경우 그동안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단행본 성격으로 출판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한 작가의 드라마들을 모아 전집으로 낸 적은 없었다. 이 전집 자체가 우리 문학의 또 다른 지평을 여는 길잡이나 기록으로 남기를 희망하면서 드라마의 신(神), 언어의 연금술사, 시청률제조기,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작가, 그의 드라마라면 죽은 시체도 벌떡 일어난다는 김수현작가의 드라마 현상과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TV드라마는 독자적 문예사조(文藝思潮)다

시나 소설, 연극이나 영화처럼 드라마 또한 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들 장르와는 달리 TV드라마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대중적 매체를 위해 창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문예사조라고 하는 것이다. 예컨대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라고 할 만큼 영상이 중요시되지만 드라마는 오로지 작가가 쓴 극본대로 제작한다는 점에서 언어와 영상을 함께 동원하여 쓴 작가의 문학적 창작력이 우선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또 한편 시나 소설, 연극이나 영화가 자신이 선택한 작품을 특정장소에서, 특정소수를 대상으로 소비하는 문학의 영역이라면, 텔레비전드라마는 언제 어디서나, 아무나가 수용하는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소비대상의 문제는 소재나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 당연히 그 한계와 제약을 수반하기 마련이고, 드라마는 그 한계와 제약을 미덕으로 삼아 창작해야 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모든 문학이 다 그렇듯 드라마 역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 끊임없이 인간을 들여다보고 언제나 인간본질의 추구, 그들이 살아가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문학, 즉 드라마가 할 일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인간본질의 추구,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닌 황당무계한 판타지나 인간의 문제를 저버린 단순한 오락물은 모두가 방송용 드라마가 아닌 것이다. TV드라마들이 그 시제를 가급적 현재에 맞추고 있거나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다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수현드라마가 시청률 30%에서 70% 이상을 오가면서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국의 드라마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혹자는 간혹 시청률을 무시하거나 시비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작품에 대한 모독이고 콤플렉스로 인한 조롱이며 편견일 뿐이다. 시청률 등의 소비행태나 반응은 결코 한 장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을 써서 문학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구든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쓴 글에 감동하고 공감을 나누기를 바라는 속내가 있지 않은가. 드라마문학의 소비자라고 해서 저급하거나 바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시청률 30% 이상이면 우리의 경우 줄잡아 1천만 명 이상이 동시에 본다는 계산이다. 일정기간 누적된 숫자가 아니라 단한 번 동시에 보는 숫자이며 엄청난 폭발력이다. 좋든 싫든 김수현드라마는 지난 50여 년간 한국을 지배한 문화 권력이었다. 한국인 대부분이 굶주렸던 문학적 정서나 갈증을 바야흐로 등장한 김수현드라마에서 풀고 있었다 해도 크게 틀리는 말이 아니다. 이것이 모두 흑백TV시절 김수현드라마의 출현으로 이뤄진 시대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독자적 문예사조인 TV드라마가 불특정다수의 대중에게 서비스한 문화적 선물이기도 하다.

흑백TV시절에 이미 새로운 드라마의 역사를 쓰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1960년대 말 라디오드라마 공모당선작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 후1970년대 초 ‘무지개’라는 텔레비전주간 극을 쓰다가 당시 TV주력프로그램으로 떠오른 일일연속극 작가로 전격 발탁되면서 시작되었다. 정확히 1972년 8월 30일에 방송을 시작한 MBC-TV의 일일연속극 ‘새엄마’가 그것이다. 그때는 이미 TBC-TV의 ‘아씨’나 KBS-TV의 ‘아버지와 아들’ ‘여로’ 등이 이른바 전대미문의 국민드라마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시기였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MBC는 시급히 대안을 내놔야 했고, 그래서 과감하게 들고 나온 일종의 모험카드가 거의 드라마신인이다시피 했던 김수현이라는 작가였다.
밤마다 사람들이 온통 TV앞에 몰려들 정도로 인기였던 ‘아씨’나 ‘여로’와 같은 국민드라마들은 모두 하나같이 일제와 해방과 육이오를 거치면서 어렵게 살았던 지나간 시절의 여인수난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과거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매일 밤 이들 연속극들을 보면서 눈물깨나 흘렸기에 최루탄드라마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속에서 김수현의 드라마 ‘새엄마’가 나온 것이다. 한 대가족 집안에 재취로 들어온 여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무렵만 해도 재혼녀에 대한 편견과 이질감이 남아있던 때였고, 전처소생의 자식들과 새엄마와의 관계가 심히 불편한 경우가 많던 시절이었다. 위로는 만만찮은 시어머니가 있었고, 이미 장성해 결혼까지 하고도 한 집에 사는 전처소생의 자식들까지 있었다. 앞으로 이 여인이 이 집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관심거리였다. 그런데 이 여인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지혜롭게 처신하며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의지로 아름답고 편안한 가정을 꾸려 나간다. 불행한 여자의 행복이랄까. 예측을 완전 뒤집는 전개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과거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가 결코 아닌 현실과 일상을 부각시킨 일일극, 가족을 기본단위로 하면서 절대로 울지 않는 여인의 이야기, 그저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일상의 생활을 마치 일기처럼 엮어가며 인간본질을 들여다보려는 이야기...그것은 분명 그때까지 있었던 여타 드라마와의 차별이고 새로운 시도였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에 나오는 가족은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위계질서 속에 각자 자유와 개성을 존중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구성원이 갈등보다는 상호이해와 진심 어린 배려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삶의 방식과 인식의 전환을 가족과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합리적으로 그려가려는 새로운 관점이 등장한 것이다. TV매체의 기능과 부합되는 새로운 생활드라마, 새로운 가족드라마가 탄생한 셈이다.
그리하여 이 ‘새엄마’는 일약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었고, 이듬해인 1973년 연말까지 무려 411회나 방송된다. 당시로서는 가장 긴 최장수 연속극이었다. TV드라마의 한 전형(典型)을 완성시키는 새 역사를 써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현실과, 사람 살아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김수현드라마의 리얼리티에 홀렸고, 줄기차게 인간의 본질을 추구해보려는 김수현드라마의 끈질긴 시도에 모두가 빠져들었다. 주고받는 대사 또한 그때까지의 드라마들과 사뭇 다르게 현실감각이 살아있고 실감나고 싱싱한 생활언어들이었다. 비로소 사람들의 말문을 트이게 하는 역할까지 해냈다. 펄떡이는 생선처럼 살아 움직이는 생활언어로, 인간의 자존감과 의지와 아름다움을 실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통해 내보이는 데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상생활드라마로서의 가족단위 ‘김수현표’ 일일연속극은 그 후 무려 7년 가까이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진다. 드라마를 쓴 극본의 원고분량이나 작업에 매달린 시간으로 보면 가히 초인적인 일이었다. 그때부터 텔레비전드라마가 굳이 퇴영적 과거사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가능하게 되었다. TV드라마의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확실하게 뿌리내렸다.


신 상 일 (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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