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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 세계(3) - 문학의 오늘 2021년 가을 호 특집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 세계(3) - 문학의 오늘 2021년 가을 호 특집
내용 가족관계 해석과 가족의 개념부터 달랐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선 이미 명확한 해답이 드라마로 나와 있다.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초중반 사이에 김수현은 이른바 ‘가족드라마 4종 세트’라 불리는 일련의 괄목할만한 가족드라마들을 연이어 내놓는다. 먼저 1995년 11월에 방송을 시작해 모두 83회까지 주말연속극으로 시청률 고공행진을 한 ‘목욕탕 집 남자들’이 있다. 서울 쌍문동에서 대대로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는 한 건물에 대가족이 모여 살면서, 때로는 가족끼리 다투고 화해하고 일을 벌이기도 하고 마무리하기도 하면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중년 이후 주부의 자아 찾기와 반란이 가출휴가요구로 받아들여지는 ‘엄마가 뿔났다’와, 경기도 여주를 무대로 조금은 덜 각박했던 옛 시절로 돌아갔으면 한 ‘부모님전 상서’와, 가장 늦게 나온 ‘무자식 상팔자’가 이른바 김수현의 ‘가족드라마 4종 세트’다. 여기서 ‘목욕탕 집 남자들’ 대신에 제주도를 무대로 한 ‘인생은 아름다워’를 끼워 넣는 사람들도 있다. 한 결 같이 가정이 그냥 배타적인 사적 집단이 아니라 포용적 공간과 사회의 한 축소판으로 나타나며 가정이 중심이지만 대체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쏟아내 놓는다.
돌이켜보면 김수현의 가족드라마는 1970년대 흑백TV시절부터 대가족 중심이었다. 한 집안 안에서 우르르 모여 마루식탁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밥도 먹고 아옹다옹 살아가느라 바쁜 나날들의 이야기가 주류인 셈이었다. 그러다가 아파트에 핵가족에 분가형태로 주거방식이 바뀌고 가옥구조가 달라지면서 1970년대 이전 식의 대가족 중심은 상당한 변화를 맞이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끼리 뭉쳐 사는 대가족 개념의 김수현가족드라마의 구성자체가 완전히 해체되는 것은 아니었다. 종전에 한 집안에 몰려 살던 식에서 발전해 한 동네 또는 이웃에 각자 독립된 주택에서 살면서 그 유대관계는 대가족 그대로를 유지하는 식이었다. 이웃과 동네에 흩어져 살면서 마치 한 집안처럼 자주 왕래하고 관심 갖고, 일테면 공간적으로 변형된 형태를 취할 뿐 김수현 식 가족 간 거리와 가족애는 지속된다. 툭하면 달려오고 툭하면 불려오고, 우르르 몰려와 밥을 먹거나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간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에서의 먹는 것, 즉 ‘밥’은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밥이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대체로 신경도 쓰지 않지만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에서는 언제나 중요한 행사로 다뤄지고 있다. 인간이 산다는 것에 있어서 따지고 보면 먹는 것만큼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것도 없다. 하지만 다들 아주 평범한 이런 진리를 그저 모른 체 무심하게 지낼 뿐이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에서는 다르다. 결코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고 충분히 반영한 채로 드라마를 진행한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대로 기본적으로 그 중요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이것 역시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일례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지 무시하고 지나가는 리얼리티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때라도 밥 먹는 행사는 그저 아무 의미 없이 행하는 설정이 아니다. 반드시 극적 진행에 필수적인 단서를 제공하면서 다음으로 이어지기 위한 상황의 진전을 위해 밥을 먹는다. 으레 마루에 큰 탁자 하나 놓고 빙 둘러앉아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이나 주고받으면서 그냥 밥 먹는 장면을 남발하거나, 이 방 저 방 몰려다니면서 말장난이나 하는 예컨대 좌담회식 드라마는 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김수현가족드라마의 차이는 가족관계와 가족의 개념과 가족의 정의에 있어서도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김수현가족드라마에는 가족이 단순한 혈족이나 혼인관계, 혈연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때로 오갈 데 없는 객식구도 가족으로 받아들여 당당하게 가족의 일원으로 행세하며 살아가거나, 때로는 사회적 약자나 하다못해 가정부라도 한 가족으로 얽혀 살아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로는 몸이나 정신이 좀 불편하거나 지적인 능력이 좀 떨어지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도 가족으로 거둬들여 함께 산다. 재혼가정의 배다른 형제자매도 아무 탈 없이 어울려 살고, 심지어 형편이 딱해 잠시 머무는 사람도 있다. ‘사랑과 야망’에서는 오갈 데 없는 여인이 둘씩이나 진정한 가족대접을 받으며 어울려 산다. 한마디로 배타적 가족관계가 포용적 인간관계로 나타난다. 가족의 개념이 다르다. 가족이 곧 하나의 사회로 존재하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언제든지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동시대인간들의 공통의 문제로 다뤄지게 된다. 퇴직한 가장의 문제, 미혼모가 된 딸의 문제, 노인 가족 세대의 문제,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와의 갈등, 비혼(非婚)과 거듭되는 이혼과 가족 간의 연민이 뒤엉켜 돌아간다. 가족관계가 다르고 가족의 개념을 달리한다. 하나의 인간 공동체로서 가족의 관계와 개념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수현가족드라마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김수현드라마에는 인문학(人文學)이 있다

김수현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일일극, 주말연속극, 미니시리즈 등의 주간 극에서 고루 나왔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나 그 메시지의 감동적 측면에서는 주로 특집극 형태로 방송된 명품단막극들을 빼 놀 수 없다. 3부작 단막극을 하루 저녁에 몰아서 편성하는 예를 만든 ‘어디로 가나’를 비롯해 ‘은사시나무’와 ‘홍소장의 가을’과 ‘인생’과, ‘아들아 너는 아느냐’ ‘혼수’ ‘아버지가 미안하다’ 등이 있다. 이들 단막극들은 거의 대부분 보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저시게 만들었고, 다들 스스로를 돌아보느라 잠을 설치게도 만들었다.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의 순간에서 지난날 살아온 모두의 삶을 돌아보게 했고, 시청미화원으로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가 결국은 자녀들의 앞길에 장애요소가 되는 서글픈 세상이야기도 있었다. 명예퇴직으로 직장에서 밀려난 것도 모자라 가정에서까지 홀대받는 처지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며 가슴 먹먹하게 살아가는 현실이야기 등등. 특히 김수현의 단막극들은 우리가 왜 사는가를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드라마들이었다.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채롭고 다양한 모습들, 아프거나 기쁘거나 슬픈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본질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함축성 있게 그려진 김수현의 단막극들이었다. 이 세상에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든지, 옷도 나이를 먹는다든지 하는 요컨대 진리에 가까운 말들로 일깨워주면서 때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소박한 일생의 디테일을 통해 우매하기도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와 아름다움까지 한편의 단막극에 담아보려 했다. 사람의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인간은 무엇이며 인생은 또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라서 사람들은 그동안 김수현의 드라마를 늘 주의 깊게 보아왔다.
드라마는 꿈이요 거울이요 창(窓)이란 말에서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때로는 인간에 대한 날카로움으로, 때로는 리얼리티로, 인간본질과 산다는 것의 엄혹함을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살고 죽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보여주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철학이 있고 심리학이 있고 어문학이 있고 논리학이 있다. 그리고 사회학이 있고 인문학이 있다. 모두가 다 있다. 세상만사 천태만상, 각양각색의 인간드라마와 생활풍속과 실로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들에 천착해왔다. 지어내고 꾸며대는 허구의 거짓말이 아닌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진정성에로의 관심이 한편 한편의 드라마에 언제나 돋보였다.


신 상 일 (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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