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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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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수현 이야기
내용 ‘김수현드라마’의 인간과 문화
-작가 김수현(金秀賢)이야기-

작가 김수현에게는 이미 이런저런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작가!
드라마의 신(神), 드라마의 성인(聖人).
거기다가 언어의 연금술사, 언어의 마술사....
모두가 작가 김수현을 두고 세상에서 더러 하는 소리다.
하지만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이라고 치부할 일도 아니다.
무릇 한 사람의 작가를 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작가 김수현에겐 왜 이런 수식어들이 붙어 다닐까?
40년이 넘도록 그의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보통 시청률 20에서 30%를 넘나드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거기다 최고시청률 70%에 육박한 경이적인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시청률 30%라면 대충 어떻게 되는 숫자일까?
물론 정확히 국민의 3분의 1에 가까운 30%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줄잡아 천만 명이 한꺼번에 봤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누가, 무슨 일로 국민 천만 명을 TV앞에 불러 모을 수 있을까?
강제도 아니고 순전히 자발적으로, 그것도 동시에 전국에서.
작가 김수현은 이런 일을 그동안 여러 수십 차례 해온 사람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무슨 재주, 무슨 마술을 부렸기에.
그렇다고 단순히 시청률만을 가지고 말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때로 저급한 드라마가 시청률이 치솟을 때도 흔히 있었으니까.
그리고 김수현의 드라마라고 해서 늘 시청률이 높지도 않았다.
모처럼 맘먹고 썼지만 반응이 영 시원찮은 드라마도 있었다.
무엇이 김수현을 당대 최고의 드라마작가로 평가받게 하는가?
어느 시대가 한 사람의 뛰어난 작가를 갖는다는 건 어떤 뜻일까?
우선 동시대를 사는 시청자로서는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와 함께 한 세월을 보낸다는 것.
두 말 할 것 없이 그 자체가 복권과 같은 행운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가 날로 돼먹지 않은 드라마를 보면서 살아야 한다면?
그야말로 지겨운 일이고 불쾌하고 모욕적인 나날일 것이다.
작가 김수현이 드라마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40년도 훨씬 넘었다.
당시 문화방송이 개국 7주년을 맞아 라디오드라마를 공모했다.
연속극 ‘저 눈밭에 사슴이’(원제: 그 겨울의 우화)로 당선됐다.
그때 원고를 대신 접수시킨 양인자씨의 회고가 흥미롭다.
드라마작가, 소설가, 가요작사가로 유명한 바로 그 양인자씨다.
마침 같은 잡지사에 근무하는 동료사이라 심부름을 한 것이다.
도대체 이 여자가 무슨 얘길 드라마랍시고 잔뜩 써댄 것일까?
가다가 문득 궁금해서 잠시 어디 앉아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자기도 글을 쓰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단다.
어쩜 이렇게 이야기를 정말, 정말 재미있게 쓸 수가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재미’만큼 드라마에 있어 중요한 것도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더러 ‘드라마 틱’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이때 이 ‘드라마 틱’ 즉 ‘극적(劇的)’이란 단어는 무슨 뜻인가.
한 마디로 ‘재미’다. 재미가 없으면 드라마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재미란 단순히 엎어지고 넘어지는 코미디가 아니다.
원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으니 그 솜씨, 입심을 알만하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발군의 실력을 내보인 것이다.
그러고는 한동안, 방송사의 누구도 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기껏 역량 있는 신인을 뽑아놓고는 잊어버리고 지내는 곳.
그때나 지금이나 방송사란 조직은 좀 그런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그 무렵 생활인으로서의 김수현은 몹시 절박했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미안해, 미안해’에서 밝혔을 정도로.
방송사에서 찾지 않는다고 그냥 앉아만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 주변의 권유로 멜로영화 시나리오를 몇 편 쓰게 된다.
“김수현씨가 TV드라마를 쓰면 진짜 잘 쓸 거야. 두고 봐.”
누군가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 애정 어린 얘기도 해주었다.
물론 그 후 그는 국내영화제에서 시나리오작가상까지 받는다.
영화와 TV드라마는 같은 영상으로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것.
두 매체의 특성과 차이에서 오는 매력을 강조한 말이리라.
1972년 5월 MBC-TV 주간드라마 ‘무지개’가 길을 튼다.
그러고는 곧바로 일일극 ‘새엄마’를 맡아 다음 해 말까지 쓴다.
당시로서는 가장 길게 방송한 성공적인 일일드라마였다.
비교적 신인작가에게 일일극을 맡긴다는 자체가 모험이었다.
하지만 MBC는 이 한편으로 모험을 건 보상을 톡톡히 받는다.
우선 폭발적인 인기로 일일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
그때까지의 텔레비전 일일극 흐름을 단숨에 바꿔놓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뛰어난 작가를 얻었다는 것이 큰 수확이었다.
이때부터 1978년 6월까지 MBC-TV 일일드라마를 도맡아 쓴다.
거의 쉬지 않고 이어지는 ‘김수현 드라마’ 매력의 연속이었다.
한때 MBC가 드라마왕국이었다고? 그때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이 시기 김수현의 드라마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사람 치고 한번쯤 그의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이 있었을까?
‘김수현 드라마’라면 시체도 벌떡 일어난다는 얘기가 이때 나왔다.
‘강남가족’ ‘수선화’ ‘안녕’ ‘신부일기’ ‘여고동창생’ ‘당신’ 등등.
김수현의 일일극은 색깔이 달랐고 그때로선 새로운 버전이었다.
1969년경부터 나오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TV일일극의 경우.
대부분이 눈물로 얼룩진 지나간 삶을 주로 반추하고 있을 때였다.
크게 히트한 텔레비전 일일극들이 대부분 지난 과거를 많이 다뤘다.
여인의 한(恨)과 눈물, 고부갈등, 일제나 육이오 전후의 이야기들....
근데 김수현의 드라마, 특히 일일극들은 얘기 방향부터가 달랐다.
철저히 현실을 바탕으로 지금 당장 살아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살아있는 현재와 땅에 발을 딛고선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무엇보다 그의 드라마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 있었다.
자학과 굴종에 가까웠던 퇴행적 신파(新派)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로 TV드라마도 실로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방송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현실’이라는 무대다.
언제까지 과거지향적인 드라마만을 계속해서 내보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대두될 무렵, 김수현의 일일극은 적시타를 날린 셈이다.
‘새엄마’는 대가족 가정에 재취로 들어온 여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렵고 미묘한 입장의 주인공은 철저하게 자신의 지혜로 살아간다.
더 이상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의 뜻과 눈치로 살아가지 않는다.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누구나 똑같은 대등한 인간, 인격으로 만든다.
특별한 재미가 있을 수 없는 일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그려낸다.
‘마음’을 그리는 것은 중요하다. TV드라마는 마음을 그리는 것이다.
현란한 액션이나 화면,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마음의 행로이다.
그래서 자연히 말, 즉 대사가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등장하게 된다.

“당신이라는 여자....눈썹 하나 까딱 않구,
거짓말에, 거짓말에 또 거짓말....거짓말 속에,
또 다른 거짓말이 있구, 그 속에 또 다른 게 있구....
맨 마지막 거짓말은 뭐지?” (사랑과 진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김수현의 대사는 ‘글’이 아니다.
쉽고, 짧고, 시각적이고 함축적이며 일정한 품격을 유지한다.
상징적인 뉘앙스와 함께 주제를 적확(的確)하게 전하는 말이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다.
다양한 인간들의 캐릭터를 여하히 리얼하게 살리느냐의 문제다.
성격이 곧 운명이며, 수없이 다른 인간들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
작가 김수현은 인간에 천착하고 인간을 관찰하는데 탁월했다.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확고했다.
작가적 의식이 뚜렷했고 바라보는 시각이 신선하고 정확했다.
그전에 이미 나왔던 일일극하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랐다.
특정소수라기보다 불특정다수에서 등장인물을 골라내고 있었다.
그들을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인물로 만드는데 천재적이었다.
사람, 현실, 생활, 그리고 시대와 사회의 흐름과 함께 가는 감각.
더 정직하게 말한다면 세상보다 조금씩 앞서가는 감각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작가적 재능을 가끔 천부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천부적’이란 ‘글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 한 분야의 일등짜리한테는 ‘천부적’이란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책을 읽으세요. 그것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곧 작가로서의 밑천이고 재산입니다. 특히 고전을.
모든 세계 문호들의 책을 섭렵하세요. 현대문학도 훑으세요.
그 다음에는 모든 분야의 책을 다 읽으세요. 책이라고 생긴 것은.
드라마작가의 작업에 필요한 책이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읽어 여러분의 창고숫자와 크기를 늘리세요.
이것이 곧 작가로서의 내공입니다. 어차피 드라마란 무엇입니까?
인간탐구와 인생성찰, 그리고 인간연구가 아닙니까....”

평소 남 앞에 잘 나타나지 않고 오로지 작품으로만 말하려는 작가.
그런 그가 딱 한번 작가지망생들에게 진정으로 한 말이다.
균형 잡힌 가치관, 건강한 작가정신, 전문적인 이야기꾼 되기....
그리고 ‘글’이 아닌 ‘말’로 쓰는 드라마를 알아야 한다는 것.
거기다 죽었다 깨어나도 지켜야 하는 다양한 캐릭터의 창출.
김수현의 드라마는 지나가는 단역이라도 캐릭터가 확 살아있다.
왜? 인간은 천차만별, 한 사람도 같지 않은 개성들을 가졌으니까.
또 한 가지, 비교적 단순하게 작품을 시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단순화 작업이란? 그것은 곧 명료해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진리일수록 단순명료하고 주제가 선명하며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작가자신이 직접 드라마별로 요약한 단순화를 한번 살펴보자.

‘새엄마’는 대가족 집안에 재취로 들어온 여자는 어떻게 살아갈까?
‘강남가족’은 한없이 선량한 아버지와 생각이 건강한 자식들 이야기.
‘신부일기’는 똘똘한 시골처녀가 서울로 시집오면 어떻게 될까?
‘사랑과 진실’은 신분 바꿔치기, ‘사랑과 야망’은 형제 이야기.
‘사랑이 뭐길래’는 진보와 보수, 두 집안의 충돌.
‘은사시나무’는 이 세상에 외롭고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부모님 전 상서’는 조금만, 조금만 옛날로 돌아가자....

이쯤 되면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 비결을 알만하지 않은가.
그는 그 많은 분량의 원고를 쓰면서 작품이 늦은 적이 없다.
단 한번 저작권문제로 혼자 스스로 집필을 거부한 적은 있어도.
작가대표로 자존심을 사수하는 옳은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남들은 원고가 써지지 않아 새카맣게 타들어간다고들 한다.
하지만 작가 김수현은 아주 쉽게, 쉽게 쓰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일주일치 원고를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밥 전에 끝낸다.
천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남들은 쓰면서 비로소 생각에 들어가지만 김수현은 어떨까?
평소 생각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고 막상 쓸 땐 빨리 쓴다.
생각도 그냥 생각이 아니라 깊은 몰입의 경지를 많이 갖겠지.
혹시 남들은 생각하기보다 ‘쓰는 데’ 시간을 더 뺏기지 않을까.
그리고 작가 김수현이 쓴 대본은 아무도 못 고친다.
이른바 ‘애드 립’도 용납하지 않는다. 남이 손 댈 수가 없다.
그의 드라마는 누가 토씨 하나 고쳐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김수현의 드라마는 일일극만 무려 6년을 방송한다.
그것도 쉬지 않고 6년 동안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를 쓴 것이다.
텔레비전일일드라마를 하나의 환경으로 만드는 역할을 해냈다.
한국에 있어 TV일일극은 어느새 생활환경의 하나가 되었다.
거기서 나오는 말, 행동, 가치관, 삶의 모습이 사회를 지배했다.
작가 김수현은 ‘한국을 바꾼 100인(人)’에 당당하게 들었다.
일일극에서 주말극으로 넘어간 1978년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후회 합니다’ ‘청춘의 덫’ ‘배반의 장미’ ‘산다는 것은’ ‘작별’....
‘목욕탕 집 남자들’ ‘내 남자의 여자’ ‘인생은 아름다워’까지.
컬러TV 이후의 드라마들....그의 활동은 더욱 폭발력을 가졌다.
‘말희’ ‘불행한 여자의 행복’ 등 명품단막극도 여러 편 나왔다.
‘인생’ ‘어디로 가나’ ‘옛날 나 어릴 적에’ ‘아버지’ ‘첫 손님’....
비교적 최근의 ‘홍소장의 가을’ 같은 특집극들도 호평을 받았다.
어느 작품이든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사람’과 ‘삶’이 있다.
어디 외계에서나 왔을 것 같은 황당무계한 가공인물들이 아니다.
기상천외의 유치하고 성숙하지 못한 인물은 상대하지 않는다.
100% 허구가 아니라 1%의 진실, 진정성이 항상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김수현드라마’라면 무조건 믿고 매료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TV드라마를 ‘거울과 창(窓)과 꿈’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리를 비쳐보는 거울이기도 하고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기도 하고.
거기다가 일상에 꿈을 불어넣는 기능을 한다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적(的) 시각은 늘 펄떡펄떡 살아서 움직인다.
드라마 속의 사람이, 이야기가 펄떡펄떡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사람은 ‘말의 자유와 성찰하는 시선의 깊이’로도 본다.
또 어떤 사람은 ‘집과 밥과 말과 사랑’으로 말하기도 한다.
정말 ‘집과 밥과 말과 사랑’은 김수현드라마의 필수품이다.
얼마나 대중적 삶의 욕구에 충실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하찮아 보이는 것들의 중요성을 늘 인간애와 함께 보여준다.
작가 김수현은 흔히 기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인물로 돼있다.
그래서 때로 오해도 더러 받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산다.
작가란 작품으로 말해야지 ‘립 서비스’로 말하는 존재가 아니다.
쓸 때는 오직 쓰는 데만 충실해야 하는데 꼭 그럴 때 만나잔다.
그나마 어렵게 만나서 얘기하면 대부분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
핵심은 빼고 엉뚱한 화제 거리로 오도하는 기사는 싫게 마련이다.
그만큼 그는 세상과 인생의 모든 정확함에 몰입하는 작가다.
엉터리로 지어내는 황당한 거짓은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드라마는 허구지만 사실이나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허구다.
드라마는 기교에 앞서 내용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고나 할까.
‘어떻게 쓰느냐’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앞서 생각한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검색’이 아니라 혼자 깊이 ‘사색(思索)’한다.
그리고 그 사색은 어디까지 가는가. 반드시 핵심을 향해 달린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누구나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뉴턴은 그 관찰결과로부터 만유인력을 발견했지 않은가.
아마도 거기까지 김수현의 생각, 사색은 이어지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는 그 많은 인간의 캐릭터들을 어떻게 만들어내겠는가.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꿰뚫어서.
무섭고도 매서운 ‘핵심’에 대한 관찰력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작가 김수현은 매섭고도 무서운 면이 있다.
작품에 관한 한 스태프들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몰입을 요구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자기작품에 출연 중인 젊은 배우 때문에.
중간에 타 방송 드라마의 주인공을 겹쳐서 하겠다고 나섰던 것.
한 배우가, 그것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두 채널에서 뛰겠다니!
‘몰입’의 여신 작가 김수현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개 씨, 몇 살이에요? 아직 젊은데 왜 그렇게 급해요?
무지개는 뛴다고 잡히는 게 아니에요. 순리대로 사세요.
제가 정리해드릴 테니까 저쪽 방송가서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는 외국지사로 발령 내는 것으로 멋있게 그 배우를 정리했다.
드라마를 함에 있어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말한 것이다.
또한 원칙을 강조했고 작가자신이 그런 정신으로 쓴다는 말이다.
독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또 다른 부분은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하다.
‘혼자서 조용히 많이 쓸쓸해하기도 하고 참 많이 베풀기도’ 한다.
이제 남은 부분을 그가 딱 한번 후배들에게 한 말들로 마무리.
이 역시 작가 김수현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기며.

드라마작가가 끝까지 붙들고 매달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들이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본질에 대한 가르침 때문이겠죠.
드라마도 결국은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이라고 하고 싶어요.
풍조(風潮)나 시류(時流)를 신경 쓰지 마세요. 좋은 대본이면 됩니다.
행여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것으로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버리세요. 결코 되지도 않고 되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작가는 자기 작품에 창피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능이 낮은 콩쥐팥쥐, 인생을 날로 먹자고 덤비는 신데렐라....
그런 걸 써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엉성하게 작업하지 마십시오. 드라마는 세공(細工)으로 여겨야 합니다. (끝)

신 상 일(申常一): 방송작가, 방송평론가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교육원장 역임,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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