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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김수현 드라마의 작품세계①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김수현 드라마의 작품세계①
내용 김수현드라마 작품세계

인간본질을 추구한 마법의 드라마
드라마의 신(神)인가, 언어의 연금술사인가

한 시대가 뛰어난 드라마작가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며 커다란 행운이다. 그의 드라마를 즐겨 보며 그가 쓰는 드라마와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의 텔레비전드라마 시청자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실로 짧지 않은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언제나 그들의 가슴에 와 닿는 드라마를 쓰는 작가는 그래서 더 소중한 존재다. 가령 여기에 무려 40여년이 넘도록 엄청난 인기를 끌어 모으며 사람들을 홀리는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있다면? 그의 드라마가 한꺼번에, 일시에 동원하는 시청자의 숫자가 적게는 1천 만 명이 넘었고, 많게는 2천 만 명도 훨씬 상회할 때가 더러 있었다. 일정 기간 누적된 드라마의 이용자가 아니라 TV앞에 앉아 단 한 번에 보게 되는 숫자가 그렇다. 누가 뭐래도 놀라운 영향력이고 독자적 문예사조로서의 언어문학 또는 영상문학이 함께 조화를 부린 신통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드라마작가 김수현에 붙어 다니는 찬사와 수식어 또한 여러 가지다. 시청률제조기, 최고의 인기드라마작가, 최초의 한류드라마작가, 심지어 드라마의 신(神), 드라마의 성인(聖人), 언어의 마술사, 언어의 연금술사, 드라마계의 대모(代母)까지. 물론 긴 세월 드라마를 써오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갖다 붙인 별명들이다. 한 마디로 금세기 최고의, 백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작가라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는 표현들이다. 요컨대 드라마에 관한 한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었다는 이야기다. 본인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작가 김수현은 어느새 세상으로부터 이런저런 현란한 수식어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나가는 텔레비전일일연속극만 자그마치 7년 동안 사실상 하루도 쉬지 않고 썼다. 그리고 그 후 매주 2회씩 나가는 TV주간연속극과 주옥같은 단막극 특집극까지 합쳐 장장 40년이 훨씬 넘게 쉬지 않고 드라마를 써 왔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까지 써낸 원고지 양으로 친다면 아마도 이 세상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가장 많은 분량일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실로 초인적인 작업을 해낸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드라마, 완전한 드라마는 없다. 그때그때 완벽해지려고 노력할 뿐이지 드라마에 있어서의 완제품이란 처음부터 환상이고 물거품이다. 무엇을 쓰느냐와 어떻게 쓸 것이냐의 조화, 즉 내용과 기술에 있어 완전하거나 완벽한 제품은 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노력과 재능을 쏟아 부어 얻어지는 완성도의 목표치다. 그렇다면 내용과 기교, 둘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김수현드라마는 당연히 내용을 택한 것이다. 그것도 내용의 진정성에 무게를 두었고, 김수현드라마는 기교나 기술과 같은 테크닉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내용은 생활이었다. 순전히 지어내고 만들어낸 거짓된 생활로 시청자를 인지미숙자로 만들거나 인간의 수준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얼마나 정직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본질을 드러내 보이느냐가 목표이자 방향이었다. 그래서 그 김수현의 드라마는 언제나 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어김없이 울렸고 추호의 의도된 바 없는 극히 자연스러운 나름의 감동을 안겨 주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수 십 년 동안 그의 드라마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김수현의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일, 즉 인생에 천착했으며 일관되게 인간의 삶을 탐험해왔다. 단 한 번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함부로 놓친 적이 없으며 인간본질의 추구와 함께 언제나 삶의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그려왔다. 그의 드라마는 대부분 가정과 가족을 기본단위로 하지만 드라마 속의 가족의 개념을 배타적인 혈연관계로만 한정짓지 않았다. 실제로 김수현드라마의 가족과 가정의 카테고리 속에는 혈연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한 식구로 사는 설정이 적지 않았다. 올 데 갈 데 없는 사람, 신체 또는 지적 장애인도 한 식구로 산다. 살기가 어렵고 형편이 딱한 처지의 그 누구도 있고, 심지어 고아나 가정부까지 객식구가 함께 살면서 그들이 더 큰소리치며 사는 구조도 때로 있었다. 굳이 특별한 인연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다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 가족 아닌 가족도, 당당한 가족의 일원으로 아무런 이상 없이 어울려 살 때가 많았다. 가족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거나, 인간에 대해 비교적 넉넉하고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거나, 가족이란 단순한 핏줄을 넘어서 인간관계로 규정짓는 일종의 인간가족으로 본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개인주의는 존중되지만 이기주의는 아닌 것이다. 그만큼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인생과 인간을 바라보는 나름의 철학과 가치와 시각이 갖춰졌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매번 김수현드라마에 열광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매 작품마다 반드시 주제가 있었으며 그 주제는 항상 쉽고 구체적이고 명료했다. 한 사람의 작가가 작품마다 갖는 메시지, 즉 주제의식은 각론에 있어서는 그가 쓰는 작품마다 달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본론 하나로만 줄곧 나가도 탓할 일이 아니다. 크게 보면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고 무방하며 자신이 얻은 인간본질에 대해 일관성이 있다. 그 결론을 얻은 사람, 그래야 비로소 작가다. 작품마다 이것저것 아무 거나 손바닥 뒤집듯이 주제를 끄집어내는 작가는 어쩌면 아직도 주제의식이 없는 작가인지도 알 수 없으며 사이비 가짜인지도 모른다. 마치 인생을 야구로 보는 사람한테 축구선수로 와서 해도 잘 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언제나 그가 생각하고 결론을 얻은 인간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다만 소재나 스토리텔링은 작품마다 항상 다양하고 신선하고 날카로웠다. 가령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일일극 ‘새엄마’는 대가족 집안에 재취로 들어온 여자는 어떻게 살아갈까, 일일극 ‘강남가족’은 한없이 선량한 아버지와 생각이 건강한 자식들 이야기, ‘신부일기’는 똘똘한 시골처녀가 서울로 시집오면 어떻게 될까, ‘사랑과 진실’은 신분 바꿔치기, ‘사랑과 야망’은 형제이야기, 특집극 ‘은사시나무’는 이 세상에 외롭고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주간연속극 ‘부모님전 상서’는 조금만, 조금만 옛날로 돌아가자....이렇게 늘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써냈다.

‘사랑이 뭐길래’와 작가 김수현

이른 아침, 서울의 어느 주택가 양옥집. 그 집의 가장(배우 김세윤)은 잠옷 차림으로 조심조심, 살그머니 침대에서 빠져나와 대문간에 가서 조간신문을 집어온다. 그리고는 주방에서 커피를 끓여놓고는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아내를 깨운다. 한편 또 다른 주택가 한옥 집에서는 역시 그 집의 가장(배우 이순재)이 마당에 서서 다짜고짜 안에다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 각 방마다 온 식구들이 화들짝 놀라 깬다. 그리고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군대조직의 졸병처럼 우왕좌왕 쩔쩔 맨다. 한 눈에 봐도 한쪽 집안은 비교적 세련되고 진취적인 문화인데 반해, 다른 한쪽 집안은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며 거의 독재에 가까운 가풍이다. 1990년 11월 23일부터 1992년 5월 31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저녁에 MBC-TV에서 방송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시작부분, 즉 도입부의 장면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집안의 소개가 처음부터 심상찮다. 이 상반된 문화의 두 집안의 자녀들이 서로 사귀귀도 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 또는 낯설어하며 앞으로 사돈도 되고, 사사건건 부딪쳐가며 가치관 내지는 문화적 충돌을 빚는다. 두 집안의 아내들은 알고 보면 여학교 때 동기동창 관계다. 당시의 현실과 생활문화에 관심을 갖게 하는 인간의 이야기들이 장장 일 년하고도 6개월이 넘도록 유쾌하게 펼쳐진다. 그때까지 김수현의 주말 또는 일일연속극에서 가끔 보여주었던 코믹터치가 이번에는 그 절정과 주류를 이루면서, 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주말 저녁 8시 시간대는 남의 집에 전화하는 것이 실례라고 할 정도로 온 국민이 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른바 ‘김수현신드롬’의 또 다른 종결 판 양상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방송사마다 발표하는 자체 시청률 조사결과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사랑이 뭐길래’의 시청률은 어디서든 대체로 70%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사실상 국민 모두가 안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수치의 시청률이었다. 수치상 어느 드라마가 역대 시청률 최고였느냐에 대해선 조금씩 다르게 기록된다 하더라도 무려 70%를 넉넉하게 웃도는 시청률은 금세기에 보기 드문 단연 최고의 인기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렇게 놀라운 시청률을 나타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곳에는 거짓과 억지로 지어내는 이야기로 일관하는 다른 드라마들과는 달리 지극히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괴물이 아닌 ‘사람들’이 있었다. 철저하게 현실에 바탕을 둔 사람 사는 이야기였고, 산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인생의 미학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특집극에서 처럼 특별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거나 울고 짜고 하는 최루탄식 드라마가 아니라, 밝고 긍정적인 눈으로 인생을 보는 일상의 드라마로 전국의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본연의 기능인 인간의 본질에 천착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친근감 있게 펼쳐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적어도 황당무계하거나 해괴망측한 판타지 따위의 가짜로 지어낸 이야기나 엉터리 거짓드라마는 없었다. 삶의 리얼리티가 있었다. 뭐 유별나게 떠들어대지도 않으면서 이 ‘사랑이 뭐길래’는 당시 TV드라마에 대한 흥미와 수준을 한 단계 높였고, 이른바 코믹 홈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개 시청률 60%를 넘는 드라마를 국민드라마, 최고의 인기드라마, 시청률의 정점을 찍은 드라마라고 말해왔는데, 이 ‘사랑이 뭐길래’는 그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명실공이 국민 누구나 다 보는 친근한 드라마로 당대 최다의 시청 층을 확보하는데 크게 손색이 없었다. 그때까지의 김수현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할머니와 손자손녀까지 3대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한국형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의 삽입곡 ‘타타타’라는 가요를 일시에 전국적으로 널리 유행시켰고,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이순재는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는데 사실상 간접지원을 받은 것이라고도 했다. 한편의 드라마가 얼마나 큰 문화적 파워를 가졌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텔레비전드라마가 한낱 대중적 오락물에 그치지 않고 실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본 중국의 국영TV에서 급기야 이 ‘사랑이 뭐길래’를 수입하기에 이른다. 최초로 해외에 팔린 한국드라마가 된 셈이다. 한류(韓流)의 시작이다. 십억이 넘는 중국 사람들이 이 한국적 정서를 담은 드라마에 열광한다. 중국의 가정과 가족문화와는 많이 다른, 그러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동양적 문화와 생활윤리를 그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합리적인 가족관계도 눈길을 끌었지만 아직도 남성위주의 카리스마 넘치는 가부장제도에서 적잖은 중국남성들이 호감을 나타냈다는 소식도 있었다. 가부장제 가정의 비민주성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인정하지만 동시에 가장의 독재에도 이유가 있음을 공정성의 논리로 펼친다. 결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바로 이런 공평함과 합리성 내지는 타당성에다 ‘사랑이 뭐길래’는 흐뭇함과 웃음까지 유발시킬 수 있는 유쾌한 극적인 장치도 갖추었던 셈이다. 그것이 곧 최초의 한류드라마로 중국시청자까지 홀린 비결이었다. 가령 독재와 권위의 상징인 가정과 민주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가정, 여기에 상반된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자란 양쪽 집안의 아들과 딸이 밀고 당기며 사귄다. 그리고 일종의 양념 격으로 기독교신자 시어머니와 불교신자 시이모가 등장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잣대의 공존이다. 서로 다른 신앙과 문화가 공존하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시청자를 긴장시키지만 작가는 결코 어느 한쪽의 편을 들거나 한쪽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곧 산다는 것의 묘미라는 논리다. 급기야 그 갈등과 긴장감이 절정에 다다르면 모두의 기대를 무너뜨려 끝내는 웃음으로 갈등과 긴장을 해소시킨다. 가벼운 터치였지만 그 속에 역시 인간본질을 담았고, 무릇 드라마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국내는 물론 중국인들한테까지 무척 신선하게 받아들여 진 것이다. 그렇게 김수현드라마는 생활이 바탕이다. 그 속에는 괴물이나 비정상적인 인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람’이 나온다. 사람이 살아있다. 오로지 삶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도 미움도 모든 것이 삶 속에 있고, 살아가면서, 살기 위해서 일을 저지르고 해결한다. 절대로 삶을 팽개치고 사랑이니 미움이니 하는 그 무엇에 ‘올인’하는,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엉터리 이야기는 없다. 산다는 것은 실제로 터무니없거나 엉터리가 아니고 엄혹한 것이며, TV드라마는 ‘산다는 것’ 외에 그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드라마의 허구란 없는 것,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것, 말도 안 되는 것을 잔 머리 굴려 허황된 순 엉터리 거짓말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있거나 있을 수 있는 것, 말이 되는(리얼리티가 있는)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과 창작력으로 꾸미는 것임을 확실하게 보여준, 드라마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범(典範)이 된 경우가 ‘사랑이 뭐길래’였던 셈이다. 다시 말해 드라마의 진정성을 바탕에 깔고 생활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을 맹렬히 들여다보며 거기서 인간의 본질을 찾아보려는 자세다. 어떤 것이 정답이고, 어느 것이 더 정확하고 정직한 것인가를 항상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생긴 내공이 김수현드라마의 밑천이자 비결이다. 어설픈 판타지는 내공이 부족한 사람이 펼치는 한낱 장난에 불과하듯이 절대로 엉터리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작가적 윤리이자 자존심이었다.

죽은 시체도 벌떡 일어난다는 ‘김수현드라마’
일일연속극 ‘새엄마’로 드라마의 판도 바꿔

1970년대 초의 국내 각 방송사 간 경쟁과 텔레비전드라마를 둘러싼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치열한 편이었다. 개국과 동시에 일일연속극을 먼저 시작해봤던 TBC(훗날 동양방송)는 한동안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텔레비전드라마를 일일연속극으로 해야겠는데 여러 가지 여건이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 KBS-TV가 먼저 ‘행복이라는 것은’(이성재 극본, 김연진 연출)으로 일일극의 성공 가능성을 알렸고, 곧 이어 1970년 2월에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육이오를 거치며 살아온 한 집안의 이야기에 시대상과 사회성을 반영한 일일연속극 ‘아버지와 아들’(한운사 극본, 김연진 연출)을 방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텔레비전일일연속극의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1970년 3월 2일에 시작한 TBC-TV의 일일극 ‘아씨’(임희재 극본, 고성원 연출)부터였다. 개국과 동시에 녹화기를 들여와 최초의 일일연속극을 시도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잠시 단막극 등에 몰두하면서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리던 TBC가 드디어 회심의 일일극 ‘아씨’를 내놓은 것이다. 일일극 ‘아씨’는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불과 얼마 가지 않아서 일약 최초의 국민드라마로 등극한다. 서울과 부산 일대에서는 밤마다 ‘아씨’를 방송하는 시간이면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모두들 텔레비전 앞에 몰려들었다. 그때 TBC-TV의 네트워크는 서울과 부산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아씨’의 시청률은 마치 전국적인 것처럼, 전국을 마비라도 시킨 양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그때 주로 여성시청자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들의 어머니, 한국여성이 살아온 지나간 삶의 수난사를 열심히 지켜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뒤질세라 KBS-TV는 1972년 4월부터 그 해 12월 29일까지 또 하나의 국민드라마로 꼽히는 일일극 ‘여로’를 내놓는다. 이 역시 한국 여인 수난사로, 해방과 육이오전쟁을 거치면서 바보 남편을 극진히 보살피며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억척스런 지난날의 이야기였다. 이때는 ‘아씨’와 달리 명실공이 전국드라마였다. KBS-TV의 전국방송망 덕에 ‘여로’는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고, 특히 다방이나 식당 등 요식업이나 숙박업소 간판은 아예 ‘여로’로 바꿔 거는 경우가 수두룩할 정도였다. 이쯤 되자 걱정이 태산 같이 쌓이며 문제가 되는 방송사는 MBC였다. 1국영(國營) 2민방의 3사 체제 속에서 결국 MBC만 일일극에 있어서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존재조차 거론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초조한 MBC는 나름대로 묘안 짜내기에 골몰했고, 경쟁상대의 일일극에 필적할 드라마를 쓸 작가를 찾는 등 온갖 궁리를 다하다가 급기야는 나름대로 모험을 걸기에 이른다. 다급한 나머지 그때 마침 MBC에서 처음으로 주간연속극을 쓰고 있던 신인 급 작가에게 관심을 갖는다. 이 작가는 같은 방송사 MBC의 라디오에서 실시한 연속극 공모에서 ‘저 눈밭에 사슴이’이라는 드라마로 당선된 작가였는데, 막상 방송사가 뽑아놓고는 미처 쳐다보지도 않던 그런 무심한 시대에 데뷔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공백 기간에 영화시나리오도 쓰고 하다가 그 무렵에 처음으로 MBC텔레비전 주간연속극 ‘무지개’라는 드라마를 맡아 곧 끝나가는 중이었다. 김수현이었다. 사실상의 신인작가에게 일일연속극을 맡겨봐? 그래서 모험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MBC로서는 밑져봐야 본전이 아니었다. 실패하면 수렁으로 빠져드는 막다른 골목이자 급박한 상황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사활을 걸어야 할 판이었다. 다른 방송사는 다들 일일연속극을 성공시켜 이른바 국민드라마의 반열에까지 올려놓았는데, 만약에 여기서 실패하면 한동안은 드라마에 있어서 회복하기 힘든 그런 국면이 벌어질 판이었다. 김수현은 제안했다. 이미 두 방송사가 히트한 바 있는 지나간 삶, 지나간 시대, 옛날 여인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과거이야기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현재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쓰겠노라고. 언제까지 TV드라마가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나 과거의 반추 또는 추억에만 머물러 있을 것인가. 텔레비전드라마가 언제까지 여인들의 수난사와 한(恨)과 숙명에 매달려 눈물만 짜내는데 그칠 것인가. 이제는 여성도 자신의 의지와 자존감으로 살아가고, 하나의 인격체로 반듯하게 존재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령 대가족 집안에 재취로 들어온 한 여인(배우 전양자)이 그 어려운 입장과 처지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립하며 살아갈 것인가. 남편(배우 최불암)과 늙은 할머니 급 시어머니(배우 정혜선)와 이미 결혼까지 한 자녀(배우 조경환, 엄유신) 등 다 자란 덩치 큰 자녀들이 우글우글 한 집에 산다. 당시만 해도 재혼에 대한 편견과 전처 자식들 간의 원초적인 갈등이 흔하던 때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 재처는 얼마나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의 의미는 또 무엇인가.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의 삶을 다루는 것이 오히려 텔레비전드라마의 기능에 맞는 것은 아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과거 ‘아씨’나 ‘여로’에서처럼 눈물을 보이거나 울지 않는다. 혹시 눈물을 보일 일이 있으면 말없이 돌아앉아 천천히 마루를 닦으며 뒷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러면 그때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오히려 대신 울어준다. 이것이 눈물만을 보여주던 드라마에서 보다 절제되고 한 단계 진화되는 과정이 아닐까. 한 마디로 리얼리티가 확 살아있는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무렵 히트한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낭만을 빼놓지 않았다면, 김수현의 일일극 ‘새엄마’는 그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 당시 드라마들의 낭만에다 일찍이 TV드라마 특유의 덕목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무기를 삼았다. 사건이나 액션, 화면이나 스케일로 드라마를 전하려 하지 않고 눈빛 하나 작은 손놀림이나 표정 하나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갖는 정서적인 면을 정확하게 그려갔다. 영상매체이지만 동시에 언어의 매체인 TV드라마의 특징을 놓치지 않고 확대 또는 확산시켰다. 특히 인물들의 캐릭터에 있어서 각기 개성과 인격적 타당성과 현실성을 부여하는 등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뤄야 하는 TV드라마로서의 리얼리티를 잘 살려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언어사용의 적확(的確)성이 그때까지의 그 어떤 드라마에서나 누구보다도 탁월했다. 김수현드라마가 쓰는 언어는 글이 아니라 말이었다. 현란한 수사(修辭)와 수식으로 나타나는 무대예술에서 쓰는 대사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듣기 쉽고 누구나 사용하는 살아있는 일상의 언어다. 함부로 떠들어대는 말의 성찬이 아니다. 인물의 캐릭터를 나타내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등장인물로 분장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전하는 의사소통의 도구로 존재한다.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 어물어물하다가 점만 잔뜩 찍고 마는 반벙어리대사가 아니라, 누구든 자유롭고 예의 바른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한다. 이것이 곧 인격의 회복이고 영상과 언어라는 양날의 칼을 쥔 드라마의 기능임을 알고 충분히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 ‘새엄마’는 그 무렵 국민드라마로 관심을 끈 몇몇 연속극들과는 접근방식이나 기본바탕이 달랐다. 그 당시 흔해 빠진 과거 지나간 여인들의 일생을 다루지도 않으면서, 어디까지나 ‘땅에 발을 딛고 선’ 사람들의 살아가는 현실이야기를 다루어 불후의 인기드라마가 된 셈이다. 이 ‘새엄마’에는 싸구려 눈물을 질질 짜내거나 황당무계하거나 말도 되지 않는 허황된 과장이나 거짓이 없었다. 텔레비전드라마를 대하는 작가로서의 이 싱싱하고 새로운 인식과 시도가 드라마 ‘새엄마’를 공전의 히트드라마로 탄생시켰고, 당시로서는 가장 길게 방송된 인기일일연속극으로 남게 만들었다. 1972년 8월 30일에 첫 방송을 시작해 해를 넘겨 이듬해 연말까지 무려 411회로 막을 내렸다. 실로 긴 기간이었다. 그때까지 그 어떤 드라마도 세우지 못한 롱런기록이었다. TV드라마에 있어서, 특히 일일연속극에 있어서 삶의 애환과 향기가 살아있는 산뜻한 ‘김수현표 드라마’의 등장이었다. 바야흐로 ‘김수현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기도 했으며, 주로 과거를 먹고 살던 퇴영적 과거중심의 드라마에서 비로소 현실감각이 팍팍 살아있는 일일연속극으로 넘어오는 하나의 분수령이기도 했다. 드디어 TV드라마 속의 인간상들이 스스로의 분별력과 개성과 색깔을 나타내고 있었다. 한낱 박제된 과거사에서 살아있는 현실의 이야기로 TV드라마의 풍토를 확 바꿔놓았다.

‘강남가족’ ‘수선화’ ‘신부일기’ ‘여고동창생’....
일일극 정착, 1970년대를 ‘김수현의 시대’로

1972년 8월 30일에 시작해 이듬해인 1973년 12월 28일까지, 장장 411회 걸쳐 방송된 MBC의 일일극 김수현의 ‘새엄마’는, 당시로서는 가장 긴 최장수를 기록한 드라마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텔레비전일일(日日)연속극시대의 중흥을 예고하는 예고편이기도 했다. 특히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재의 생활을 바탕으로 애틋하고 따뜻하고 지혜롭고 흐뭇한 가족애를 다루는 일일극의 정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김수현은 쉴 틈이 없었다. 곧바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면서 한국TV드라마 사상 금자탑을 이룬 김수현의 일일극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중요한 것은 이때부터 약 7년간 김수현은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텔레비전일일극을 줄기차게 쓰면서 매 드라마마다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는 사연들로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1974년 1월부터, 그러니까 ‘새엄마’가 끝나자마자 쉴 틈도 없이 불과 며칠 뒤부터 방송되기 시작한 ‘강남가족’은 역시 가장 정상적인 가정과 인물들을 그린 홈드라마로, 당시 김혜자, 최불암, 홍세미 등의 연기자들을 안방극장의 스타들로 배출시키면서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높은 시청률을 계속 유지해 나갔다. 이어서 나온 ‘수선화’는 당시 일일극 시청률 1위를 차지했고, 해당방송사인 MBC에는 이른바 ‘드라마왕국’이라는 별칭을 보너스로 안겨주었다. 바로 이맘때를 전후해서 김수현은 드디어 드라마의 귀재로 평가받기 시작한다. 과연 드라마에 관한 한 귀재라 할 만큼 그가 쓰는 일일극들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모두 최고 인기드라마의 반열에 올라 시청률제조기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TV드라마에 관한 한 일인자로 자리를 굳혀간다. 거기엔 이른바 ‘언어의 마술사’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릴 만큼 정확하고 현란한 대사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가 추구해야하는 인간본질에 대한 남다른 천착이 그에겐 있었고,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유난히 아름답고 따뜻하게 보려는 작가적 눈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드라마에는 누가 뭐래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리얼리티가 있었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펄떡펄떡 살아서 숨쉬는 ‘사람’이 나온다. 결코 미성숙하거나 어딘가 모자라거나 비정상적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한심한 가공의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사는 문제는 제쳐놓고 지극히 유아적이고 사소한 감정문제에나 줄곧 매달리는 얼빠진 허구의 가공인물들이 아니다. 마치 어디 외계에서나 온 듯한 황당무계한 인물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나오고,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는 데에 열심인 사람들이 나와서 움직이며 드라마의 주류를 이룬다. 도무지 현실성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야기, 그런 드라마가 아니다. 분명히 땅에 발을 딛고 살아 숨쉬는, 괴물이 아닌 사람들이 나와서 일상생활을 엮어 나간다. 이런 바탕 위에서 1975년 6월에 시작된 ‘신부일기’는 김자옥 등의 출연으로 여성의 의지와 지혜로움을 엮어 역시 공전의 히트, 1976년의 ‘여고동창생’ 또한 많은 시청자들을 브라운관에 붙들어놓았다. 여고시절 단짝이었던 다섯 명의 동창생들이 사회에 나와 살면서 부딪치는 사건들을 재미있게 다뤄 유난히 폭넓은 인기를 끌었다. 1977년의 ‘당신’은 새 며느리가 겪는 어려움을 통해 남편의 애정을 찾아가는 홈드라마로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누렸다. 그러는 사이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김수현드라마’에 알게 모르게 중독되었고, 특히 당시 텔레비전일일극 시장은 김수현으로 하여 호황을 누리며 드라마가 방송의 꽃으로, 튼튼하고 완전한 텔레비전프로그램 포맷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김수현이 대한민국을 바꾼 것이다. 텔레비전일일극은 점점 일종의 생활환경과 같은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갔고, 무려 7년 가까이 김수현이 일궈놓은 일일극 시장은 그 후로도 다른 작가들에 의해 계속된다. 하지만 김수현의 드라마는 그로부터 일일극에서 주간연속극으로 넘어가는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매일 나가는 일일극을 마감하고 곧장 이어지는 김수현의 주말연속극 등의 주간드라마 시절을 열어간다. 죽은 시체도 벌떡 일어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던 김수현의 드라마가 주간 극으로 왔다고 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절대적이었고 작품의 질이나 흥행에 있어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김수현의 드라마가 한동안 방송사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무려 7년이 넘는 일일극 시대와, 그 이후에도 1992년 5월 ‘사랑이 뭐길래’ 까지 한동안 이어지는 MBC의 주말연속극을 통해서. 그러니까 1972년부터 시작된 약 20년간의 MBC와의 인연은 작가 김수현이란 개인에 못지않게 MBC라는 방송사에 크나큰 공헌을 남긴 기간이었다. 1978년 드디어 김수현은 일일극 집필을 잠시 쉬고 MBC의 주말극 ‘후회합니다’를 내놓는다. 김혜자, 박근형, 김용림, 김윤경 등이 출연한 이 드라마는 며느리를 부정한 여인으로 오해하는 시어머니와, 질투심에 불타는 친구와, 따뜻한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인생고뇌의 길을 걷는 중년 여인의 이야기였다. 때문에 김수현드라마로는 처음으로 건전하지 못하다는 방송윤리상의 잡음이 뒤따르기도 했지만, 역시 그 인기만은 높아서 변함없이 안방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그러나 김수현드라마가 빠진 텔레비전일일극 판도에서 MBC는 갑자기 저조해졌고, 작가로선 너무나 지긋지긋한 일일극 집필에 잠깐 동안 다시 김수현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일일극 집필은 매일매일 피를 말리는 엄청난 부담스런 작업이다. 그 작업을 김수현은 하루도 쉬지 않고 거의 7년을 해 온 셈이다. 그래서 잠시 주말극으로 빠졌는데 다시 불리어 온 것이다. 1979년에 방송한 일일연속극 ‘행복을 팝니다’가 그래서 나온 작품이었다. 한 집안에 일곱 세대가 모여 살면서 그날그날 가족들이 벌이는 애환을 다룬 드라마로, 이 드라마로 김혜자, 김영옥, 정혜선 등의 연기자들이 국내 한 예술상에서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여전히 드라마마다 최고 인기를 누리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늘 그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의 이야기 거리를 새롭게 부각시켜 TV홈드라마의 영역을 확실하게 개척했다는 평을 들었다. 번뜩이는 재치와 간결하면서도 그때그때 정곡을 찌르는 살아있는 대사, 뜸들이지 않는 빠른 이야기의 전개, 상황의 감각적인 반전 등으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TV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김수현의 드라마가 방송되는 저녁시간이면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들이 없다느니, 주부들이 설거지를 미루고 TV앞에 앉기 때문에 전국의 수돗물 사용량이 급격히 줄어든다느니 하는 말이 여기저기 나돌 정도였다. 김수현의 일일극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의 시청자들은 행복했다. 과연 드라마의 성인(聖人), 드라마의 신(神)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의 김수현드라마의 일일극 시대를 보내고 나서 김수현의 주말 또는 주간 극 시대가 열리는 1980년대부터는 다시 그의 일일극과 같은 열렬한 지지를 받는 드라마를 다른 사람들이 쓰는 여타의 일일극에서는 사실상 만나보기 힘들어졌다. 가족드라마 또는 가정극이라 불리는 일종의 한국적 홈드라마 형식을 튼튼히 자리 잡게 해놓고 김수현은 주간드라마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래도 아쉬운 방송사는 1981년부터 1983년 사이에 3편의 일일극을 더 쓰게 한다. 일일극 ‘사랑합시다’와 ‘어제 그리고 내일’ ‘다녀왔습니다’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정말로 거기까지였다. 여기서부터 김수현은 다시는 일일극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주간드라마와 주말연속극만 쓰게 된다. 동시에 TV드라마의 중심축은 일일연속극에서 김수현이 다시 둥지를 틀기 시작한 주말이나 주간연속극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대단한 문화적 파워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야기의 패턴도 달라진다. 일일극에서 보여준 가정 중심의 어쩌면 아주 단순한 이야기에다, 애정 등의 정서를 섞은 멜로 적 성격을 보탠 이른바 ‘홈 멜로 물(物)’로의 변신을 꾀한다. 때는 바야흐로 컬러TV시대로 접어들었고, 사람들의 생활도 전보다 훨씬 윤택하고 넉넉해지는 1980년대로 진입한다. 당연히 김수현드라마의 내용도 그에 따라 진화한다. 구질구질함을 벗어던지고 점차 복잡해지는 세상과 거기에 대응하는 의식의 성숙함을 다루기 시작한다. 텔레비전드라마는 기술이나 기법 등의 ‘하드’의 승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용이고, 내용 중심의 소프트가 승부처임을 새삼 보여준다. TV드라마는 화면이나 액션 중심의 영화와 달리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그려가는 내용 중심의 매체라는 인식을 김수현드라마는 일관되게 일깨워주며 그 방향을 고수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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