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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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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해부, 김수현 가족 드라마의 힘
내용 전격 해부, 김수현 가족드라마의 힘

‘오래된 미래의 가족이야기’

무릇 작가는 태어나는 것인가, 길러지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누구도 명확하지 않고 확신이 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믿고 싶은 것은 있다. 적어도 최고 반열에 오른 작가는 모름지기 교육이나 노력에 의해 길러지기보다는 혹시 타고난 재능이 더 크지 않을까.
마치 천재음악가 모차르트가 그렇듯 나이도 관계없고 경륜하고도 별개의 것으로 느껴진다.그리고 그렇게 특별히 탁월하고 뛰어난 작가와 한 세월을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어쩌면 동시대인들의 큰 행복이고 행운일 수도 있다. 언제나 인간본질에 천착하는 그의 시선과 관점은 늘 신선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나 연극, 시나 소설 등과 같이 자신이 선택한 특정소수의 것이 아닌 이른바 ‘불특정 다수’의 것인 텔레비전드라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혼자서도 보고 여럿이 함께도 보고, 누워서도 보고 앉아서도 보고, 서울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에서도 보는 것. 정해진 장소로 가서 돈을 내고 보거나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보고 싶으면 보고 보기 싫으면 안 봐도 그만. 그런 TV드라마가 시청률 30%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을 넘었다는데 대충 1천5백만 명? 그렇다고 물론 전체인구의 약 3분의 1이 봤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깎아도 1천만 명 이상이 한꺼번에 본다면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 누가, 무슨 짓으로 한꺼번에 1천만 명 이상을 TV 앞에, 그것도 자발적으로 끌어 모을 수 있단 말인가. TV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한 결 같이 멍청하고 모자라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느 특정작가가 쓴 드라마를 40년이 넘게 평균 30% 이상이 봤다면? 때로는 시청률 60%-70%를 훌쩍 넘긴 때도 있었다. 아마도 이쯤 되면 조금 과장해서 전 국민이 다 봤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경이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의 신(神)’이니 ‘드라마의 성인(聖人)’이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때로는 ‘언어의 연금술사’ 때로는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기도 한다. TV드라마란 영화와 달리 영상문법 보다는 언어문학 쪽이기에 그런 수식이 붙어 다닌다. 문자 즉 글이 아닌 언어, 즉 말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란 무엇인가. 드라마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흔히 극적이라고 말하는 ‘드라마틱’이란 재미를 뜻한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드라마가 아니다. 거기다 사람의 이야기다. 어디까지나 사람 사는 이야기다, 인간과 인생의 이야기다. 작가는 오로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이어야 한다. 타고난 것이든 배우고 노력해서 된 것이든 전문이야기꾼의 기질은 필수다. 특히 TV드라마는 일상성이 강하다는 면에서 더욱 그렇다. 사실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상의 일들이 무슨 재미가 있겠으며 극적(劇的)이겠는가. 하지만 자칫 재미를 잃기 쉬운 바로 그 일상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엮어나가는 일이 텔레비전연속극의 덕목이자 매력이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 드라마작가의 최고봉 김수현에 대한 솔직한 평가이며 작가 김수현이 지닌 가치다.

‘김수현드라마’의 등장

1972년의 일이었다. 그해 8월 30일부터 이듬해인 1973년 12월 28일까지 무려 일 년 하고도 4개월 동안 MBC-TV는 김수현의 ‘새엄마’라는 일일연속극을 내보낸다. 사실상 신인작가의 드라마였다. MBC라디오연속극 극본공모에서 당선작가로 뽑아놓고도 한동안 찾지 않던 MBC가 전격적으로 그를 발탁한 것이다. 물론 바로 그 직전에 몇 편의 단막과 주간드라마 ‘무지개’를 썼었다. 그때는 또 어떤 일이 있었는가. 당시 민방 TBC-TV의 일일극 ‘아씨’가 유례없는 선풍을 이미 일으켜놓고 있던 때였다. 드라마 ‘아씨’가 나가는 시간에는 서울시내 거리가 텅텅 비었다고들 했다. 흑백텔레비전수상기가 있는 집으로 몰려가 아씨와 함께 울고 웃느라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되던 시절이었다. 방송사상 초유의 엄청난 텔레비전일일연속극의 폭풍이 휩쓴 뒤였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MBC로서는 일종의 모험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과감히 내세운 작가가 김수현이었다. 그때까지 영화시나리오는 써봤어도 TV드라마 경험이 일천한 그가 과연 어떤 드라마를 써낼까. ‘아씨’ 이후 KBS-TV의 인기연속극 ‘여로’ 등이 여전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무엇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인가. 말하자면 일제와 6.25 등을 거치면서 눈물과 고생으로 얼룩진 한국여인들의 일생이랄까. 잔혹사라고 할 수 있는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가 대세인 TV일일극 세상에서 무엇을 꺼내야 이길 수 있겠는가. 여기서 내놓은 것이 ‘새엄마’였다. 결코 만만찮은 시어머니와 전처소생의 다 큰 아들과 며느리까지 있는 대가족 집안에 재취로 들어온 여자는 어떻게 살아갈까?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를 아주 야무지게 엮어갔다. 남들은 다들 과거를 물고 늘어질 때 김수현은 현실의 가정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저 그렇게 오늘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관심을 돌린 것이다. ‘김수현 가족드라마’의 시작이자 대 성공이었다. 과거지향의 드라마들이 보여준 그 흔한 눈물도 감추고, 오로지 한 인격체로, 자신의 의지로 삶을 가꿔가는 여인상이 돋보였다. 이 여인은 울 일이 있으면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고 돌아앉아 묵묵히 마루를 닦는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시청자가 오히려 울어줬다. 당시 텔레비전연속극 시청률의 보증수표이며 주요화두였던 그 흔한 고부갈등 대신 김수현의 가족드라마는 긍정과 지혜가 넘치는 따뜻함으로 무장했었다. TV라는 매체는 그 시제가 과거의 반추보다는 현재가 더 맞는 특징을 가졌다. 그리고 TV드라마는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인간의 아름다움,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것이 TV드라마의 위력이기도 하다. 바로 그 점을 김수현의 가족드라마는 놓치지 않았다. 억지나 과장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런 정서의 흐름으로. 비로소 타당한 현실이야기가 TV연속극에 등장했다. 작가 김수현은 가족을 단순한 혈연관계가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단위로 본 것이다. 김수현 가족드라마에서의 가족의 개념과 외연은 자연히 넓혀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가족드라마에는 혈연관계가 아닌 객식구도 한두 명씩 엄연한 가족으로 등장한다. 그의 드라마 거의 대부분에서 꼭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다못해 가정부나 어디 오갈 데 없는 사람, 오다가다 살다가 만나 어느새 한 식구가 된 사람들까지. 그러니까 김수현드라마의 가족은 사실상의 인간관계로 얽힌 사람들의 집합체가 되는 셈이다. 가족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는 것이 김수현가족드라마의 특징이자 차별화이며 힘이다. 그러면서 꼭 반 발짝 미래지향적으로 앞서나갔다. 이것이 훗날 한국적 TV가족드라마라는 하나의 형태 또는 패턴으로 굳어진다. 그 후로 나온 가족드라마들은 그 형식상 대체로 김수현가족드라마의 아류(亞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내용이 아닌 형식 면에서의 김수현가족드라마 아류들이 횡행하더니 급기야는 엉뚱한 것들로 변질되어 개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반 발짝 앞서가기는커녕 고작 한다는 것이 출생의 비밀이니 신데렐라신드롬이니 하는 등등의 말도 안 되는 퇴영적 이야기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마치 가정파괴범들처럼 마구 칼을 휘두르는 드라마들이 늘어났다. 진정성도 없고 정상적이지도 않는 가족드라마들이 버젓이 양산되고 있어 짜증스럽고 조소를 금치 못할 지경이다. 그럴수록 원조(元祖)가족드라마라 할 수 있는 김수현의 가족드라마는 더욱 소중히 여겨지고 여전히 빛을 발할 뿐이다.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는 계속된다. ‘새엄마’ 이후 햇수로는 6년 가까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일극전성시대를 주름잡는다. 한없이 선량한 아버지와 착하고 생각이 건강한 자식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룬 ‘강남가족’. 똘똘한 시골처녀가 서울로 시집 와서 살아가는 ‘신부일기’. ‘수선화’ ‘안녕’ ‘여고동창생’ ‘당신’ ‘행복을 팝니다’.....한때 MBC가 이른바 ‘드라마왕국’이라고 불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김수현의 드라마들이 MBC에서 나갈 때였다. 일일연속극에 이어 1978년 이후 서서히 주말 등 주간연속극 시대로 넘어가는데, 그때도 여전히 MBC가 이른바 드라마왕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일련의 김수현드라마 덕분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 1981년의 ‘사랑합시다’, 1982년의 ‘어제 그리고 내일’, 1983년의 ‘다녀왔습니다’도 가족중심의 일일극들이었다. 그 후로는 가히 초인적인 작업인 일일연속극에서 손을 떼고 완전히 주간연속극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주로 주말에 많이 편성됐던 주간연속극들도 굳이 분류하자면 가족드라마에 속했다. 때로 크게 주목을 끈 완전한 멜로물이 적지도 않았지만 김수현의 경우 그 근간은 역시 가족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홈 멜로 물(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일극 못지않게 주간드라마에서도 가족이야기는 끈질기게 다뤄졌고, 여기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넘치는 김수현드라마의 내용은 이어졌다. 주말드라마 ‘후회합니다’를 시작으로 ‘안녕하세요’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배반의 장미’ ‘산다는 것은’ 그리고 ‘작별’과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 집 남자들’....한 결 같이 김수현의 드라마들은 그 기조가 가정이다. 그리고 드라마마다 그 방향이 단순화되어있고 명료하다. 가령 ‘사랑과 진실’은 신분 바꿔치기, ‘사랑과 야망’은 형제 이야기, ‘사랑이 뭐길래’는 진보와 보수 두 집안의 문화적 충돌, ‘은사시나무’는 이 세상에 외롭고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부모님 전 상서’는 조금 옛날로 돌아가자,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목 그대로 아무리 힘들고 때로 고달프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 이런 단순명료한 테마나 메시지를 실현하기 위해 김수현은 드라마마다 새롭고 다른 인물의 캐릭터를 만든다. 다양한 캐릭터의 창출이 곧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 다양한 캐릭터의 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날카로운 관찰력을 번득인다. 그 결과 모든 인물들이 다 그림으로 잡히게 한다. 그의 인물들은 모두가 살아있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항상 팔딱팔딱 살아있는 인물들이 나온다. 거기엔 ‘사람’이 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땅에 발을 딛고 선 우리 이웃의 인간들이 있다. 생각이나 수준이 모자라는 인간들이 득세하지 않는다. 얼빠진 재벌 2세나 출생의 비밀 따위에 매달려 춤을 추지 않는다. 예의와 문화와 정서와 질서가 인간의 삶의 가치로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김수현의 드라마에 홀리고 기꺼이 빠져든다. 인간관계의 설정에 거짓이 없다. 함량미달의 인간이나 인격 장애놀음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드라마란 99%의 허구라도 1%의 진실, 즉 그 1%의 진정성이 있을 때 비로소 설득력을 지닌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흔하고 평범하고 친숙한 인물들이 주축을 이루고 끊임없이 등장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이 나온다. 건강한 인간들을 사수하려는 작가의 정신이 들어있다. 이 모두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다. 비록 단역이라 할지라도 김수현의 드라마에선 개성과 인격이 존중받는 당당한 인간으로 나온다. 극소수의 계층, 예컨대 동성애자라도 김수현의 드라마에선 따뜻하게 감싸 안는 대상이 된다. 그것의 범위를 좁히면 가족이 되는 것이고, 외연을 확대하면 인간세상이 되는 구조다. 드라마란 그런 재미고 역시 그런 것이다. 이제 왜 김수현을 ‘드라마의 신(神)’이라고 부르는지, 전혀 그런 평가가 결코 아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집과 밥과 사랑과 ‘글’이 아닌 ‘말’

누군가가 그랬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집과 밥과 말과 사랑이 있다’고. 틀린 말이 아니다.
확실히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정말로 집이 나오고 밥이 있고 말과 사랑이 있으니까. 아주 흔해빠지고 하찮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원천적이고 더 없이 소중한 것들이다.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하고 말하지 않거나 사랑이란 것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 것인가. 다만 이것들은 그저 늘 주변에 있는 공기와 같아서 소중하다는 걸 잊고 살 뿐이다. 그러니까 드라마에 이것들이 자주 또는 빠짐없이 나온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수현드라마에는 자주 먹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냥 밥만 먹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드라마를 진행시키고 일을 꾸미고 정감을 나누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얘기지만 실제로 김수현은 누구든 만나면 밥부터 챙겨 먹이려 거의 혈안이 돼 있다. 지극히 원시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말’ 즉 언어다. 글이 아닌 말 쓰기다. 텔레비전드라마는 영상보다는 다분히 언어의 미학, 말의 문학 쪽에 가깝다. 따라서 글이 아니라 말을 쓰는 것이다. 그것도 일상적인 대화의 흐름을 유지해야 하는 생활언어라야 한다. 말이 곧 그 인물의 성격이고 인품이고 드라마의 내용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적인 무기다. TV드라마에서는 형형색색의 미사여구로 꾸민 말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인물의 말, 즉 대사 속에 이해와 연민, 애정이 있다. 입체적인 인물도 대사가 만들고, 인생의 양지와 음지도, 영광과 오욕도, 슬픔도 기쁨도, 좌절도 성공도, 시련도 배반도, 어리석음도 지혜로움도 대사가 나타낸다. 짧고 쉽고 싱싱하고 살아있어야 말맛이 난다. 김수현의 드라마가 사랑받는 요소 중에 말을, 대사를 다루는 솜씨를 빼 놀 수 없다. TV드라마는 영화처럼 액션이나 풍경이나 사건중심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TV드라마에서 걸핏하면 주먹을 날리거나 폭력을 휘둘러 해결하려는 걸 볼 때마다 이맛살을 찌푸린다. TV드라마는 액션이나 사건이 아닌 마음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 동선이 마음의 행로, 생각의 향방을 따라가는 특징을 지녔다. 시청자는 액션이나 사건이 아니라 마음의 흐름에 관심이 많고 드라마에서 그걸 보려는 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움직임을 그리거나 생각의 향방을 따라가는 데는 대사, 즉 말이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다분히 말을 통해서 드라마가 ‘거울과 창(窓)’의 역할을 하고 드라마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 꿈을 주기도 한다. 그 말에 있어서 김수현은 이미 천부적이란 소리를 들어왔다. 때로 비수같이 와서 꽂히는 대사도 있지만 정서를 듬뿍 머금은 대사로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이것이 김수현드라마에 있어서 집과 밥과 사랑과 더불어 말이 가진 비중이며 마력의 하나다. 김수현의 말, 즉 대사는 ‘그 자체가 자유이며 인생을 성찰하는 관점의 깊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더욱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잠시 일찍이 노인성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문제를 다룬 김수현의 드라마 ‘인생’에서 누나가 남동생한테 하는 대사의 일부를 보자. 그의 대사 속에 무엇이 나타나고 숨어있는가.

옥자: 당신이 자식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는지 제대루 알 능력만 있다면 아마 자살이라 도 하실 거야. 그럴 거야. 내가....내 맘이 그렇거든. 엄마...정신이 잠깐 들면...죽구 싶 다 그러는 거 너 모르지?(철수 보며)
철수: .....(보며 다소 충격적이다)
옥자: 엄마 우리 힘들게 하구 싶지 않을 거야. 그건...엄마 평생을 생각하면 알잖어...끝까 지...마지막까지 우리한테...어머니구 싶으실 거야 아마. 자식 힘들게 하는 거 털끝만 큼도 원치 않으실 거라구......

지금까지 우리는 본의든 아니든, 원했든 원치 않았든, 김수현드라마를 몇 십년동안 보아왔다. 아마도 그 사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드라마와 생각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드라마를 안 보고 산다는 사람도 40여년 세월을 낮게는 20% 안팎, 높게는 70% 이상의 시청률이 나오는 김수현가족드라마에 설마 한 번도 발을 담그지 않았겠는가. 이쯤 되면 실로 대단한 파워다. 하지만 믿어도 좋다. 김수현의 작가정신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가치관을 지녔으니까. 전문적인 이야기꾼으로서 충분한 재능과 치밀함을 가졌으니까. 누구보다 작가로서의 창고 가득히 많은 사연을 갖고 있고 인간을 관찰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 아니까. 항상 따뜻한 체온이 있고 향기가 나는 그런 드라마를 쓰니까. 이것이 또한 김수현드라마의 힘이고 차별성이다. 인생을 날로 먹는 황당무계한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순 거짓으로 이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바로 정면 돌파한다. 압축과 폭발력과 생동감이 넘친다. 시시하게 풍조나 시류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내보내려는 또 하나의 김수현 표 가족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도 우리로 하여금 설레게 한다. 거기에는 또 어떤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담길 것인가. 어떤 관점으로 인간의 본질에 접근할 것인가. 그가 지금까지 써 온 연속극 외에 가끔 특집극으로 내보낸 주옥같은 드라마들! 가령 ‘인생’ ‘어디로 가나’ ‘옛날 나 어릴 적에’ ‘홍소장의 가을’ 등등. 우리들의 가슴을 울린 또 다른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김수현의 새로운 가족드라마는 그때마다 늘 우리를 기대하게 만든다.


신 상 일 (申常一, 방송평론가.서울예술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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