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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히스토리(9)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히스토리(9)
내용 드라마 시청 연령제한 표시제
결과적으로 무엇을 남겼는가


한국TV드라마의 시청연령 제한표시제가 대략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공식화 된 것으로 본다면 2016년 현재 약 20여년이 지난 셈이다. 사실은 이 보다 앞서 1988년 제6공화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기저기서 군부정권의 색깔을 빼려는 민주화 요구가 분출했다. 이 때 방송 등 언론기관까지 노조활동이 본격화되면서 그 자유화의 일환으로 급기야 드라마의 소재와 내용과 표현에 까지 마치 억압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처럼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유화의 물결이 거셌다. 그러니까 표현의 자유를 들고 나오면서 드라마와 관련된 방송심의기준의 완화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TV드라마와는 전혀 별개의 시대적 흐름에 의해 그때까지의 TV드라마의 윤리기준은 무너지고 있었다. 불륜, 외도, 가정파괴, 혼전임신과 혼전동거, 포옹과 키스장면의 수시 노출과 일상화, 살인, 폭행과 폭력, 온갖 악행과 악인의 등장, 이혼과 부부싸움, 비행(非行)청소년과 공직자들의 일탈, 사기와 음모, 기업과 사회 각계각층의 갑질, 부정과 부패와 비리, 그 밖의 여러 행태의 가정과 세상의 어두운 뒷면들이 드라마의 내용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추구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즉 인생에 관해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충격적이고 자극적으로 보편적 윤리를 벗어나는 드라마가 소재나 표현의 자유라도 되는 것처럼 도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결국 방송계는 스스로 규제 장치를 마련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TV드라마의 시청연령제한 표시제로 나타났다.


연령제한 표시가 드라마를 더 저급하게
소재의 확장이나 표현의 자유 아니었다


그러니까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거지만 드라마 화면의 한쪽 귀퉁이 또는 시작하기 전에 ‘12세’ ‘15세’ ‘19세’ 등의 시청 가능한 연령표시를 하자는 것이었다. 원래 TV드라마는 영화나 연극, 소설과 같이 특정한 소수가 선택해서 볼 수 있는 폐쇄적인 매체가 아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공개된 상황에서 모두 함께 보도록 돼 있는 매체다. 이것을 우리는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드라마 이용자에 무슨 제한이 있을 수 없고 아무나 어디서나 혼자 또는 여럿이 함께도 보게 되는 것이 텔레비전드라마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영화나 연극, 소설 등과 달리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나 봐도 전혀 역기능(逆機能)이 없을 정도의 스스로의 통제 내지는 윤리기준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불특정 다수 상대의 TV드라마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그 불특정다수 속에는 별의별 계층이 다 들어 있다. 스스로 판단이 가능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연령층과 수준도 얼마든지 있다. 가족 3대가 함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드라마를 볼 수도 있고, 설사 누가 애들은 보면 안 된다고 해도 자기 방에서 몰래 보면 말릴 수도 없는 매체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가 보는 TV드라마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통제를 갖게 마련이다. 가령 무슨 연속극에서 오늘까지는 범인이 흉기로 누굴 찌르는 장면으로 끝났다고 할 때, 판단력이나 분별력에 문제가 있는 미숙한 연령이나 계층에서는 자칫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더욱이 왜 그 사람이 그랬는지가 나오는 그 다음 회(回)를 못 보는 사람의 경우 그 부정적 기능은 작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흔히 가족시간대라고 부르는 저녁시간에는 가정극 또는 가족 극이 편성되기 마련인데,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낯붉힐 정도의 보편적 윤리에 반하거나 어색한 장면이 나간다고 하면 더욱 문제는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 시청연령 등급제가 생겨난 이후 TV드라마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아름다운 가정, 품격 있는 언어나 표현, 정상적인 가족관계,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인 가정은 사라지고 마치 적이나 원수들이 만나 한 집안에 살면서 온갖 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갈등만 잔뜩 부풀려 놓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졌다. 이것은 가정이 아니고 가족이 아니다. 부부나 부모자식으로 구성된 가정의 덕목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모두 원수 끼리 만나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 가정의 일상사나 다반사가 되었다. 불륜과 외도는 아예 누구나 다 하는 것처럼 단골메뉴가 되었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뱃속에다 넣고 현재의 남편을 속이고 결혼을 한 여자, 술에 취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인사불성이 된 미혼의 여성, 혼전임신 또는 혼전동거로 인한 갈등은 흔해빠진 예사가 되었다. 가정을 영위해 나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신뢰와 진심은 어디에도 없고 그저 속고 속이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가족드라마를 끌고 나간다.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신데렐라의 허황된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와 술수, 심지어는 범법과 위법과 불법까지 서슴지 않는다.


TV드라마는 불특정 다수의 것
보편적 정상적 인간을 그려야


그들이 하는 행동, 그들이 쓰는 언어는 당연히 비속하고 저급하고 쌍스럽다. ‘트라우마’ ‘힐링’ ‘아우라’ ‘엣지’ 등등 걸핏하면 각종 다양한 외국어를 섞어 우리말을 더럽히고 있다. 드라마는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따라서 드라마 속 인물들의 언어는 파괴적이어서는 안 되며 각별히 일정한 품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욕설이 난무하며 아무 생각 없이 무슨 말이든 리얼하다고 생각되는 표현은 다 가져다 쓴다. “까라면 까야지”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쓴다. 어디 도박판에서 상대방의 돈질을 받겠다는 뜻으로 쓰는 말을 아무데서나 “콜” 한다. 영화나 연극, 소설에서는 온갖 욕도 다하고 잔인하게 폭력도 휘두르고 살인도 하는데 TV드라마는 왜 안 되느냐고 하면 안 된다. TV드라마는 소설이나 영화, 연극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특정 다수를 그것도 한꺼번에 상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것이 제약이나 통제로 느껴진다면 TV드라마를 하지 말고 다른 것을 해야 한다. 매체의 특성이 근본적으로 다른 데도 편리하게 등급제 또는 연령표시제를 해놓고는 마구 아무 것이나 하고 있다. 남편과 남편친구와 여자 셋이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식탁 아래서는 여자가 남편친구와 발로 꼼지락꼼지락 스킨십을 하질 않나, 소재의 자유랍시고 스무 살 연하의 젊은 소년을 버젓이 남편이 있는 유부녀가 유혹해 갈 데까지 가질 않나, 친구도 친 부모도 그 상대가 누구든 그야말로 패륜적 행동과 거짓과 음모와 사기로 막장의 상황을 끝까지 벌이지 않나....결과적으로 연령표시제는 소재의 확장이나 표현의 자유를 신장한 것이 아니라 TV드라마의 향기나 덕목을 깔아뭉개버리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잘못 된 형태의 드라마만을 양산해내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2016년 2월에 나온 조사결과로는 청소년의 47%가 연령표시제는 효과가 없다고 대답했고, 심지어 초, 중생 가운데 무려 38%는 ‘19세’ 연령표시, 즉 흔히 말하는 ‘19금’ 드라마를 보았다고 했다. 거기 화면 한 귀퉁이나 드라마 시작 전에 몇 세 이하는 시청이 곤란하니 학부모의 시청지도가 필요하다 운운 했다고 해서, 또는 좀 늦은 시간에 나가는 드라마라고 해서 그 연령 이하가 안 본다는 보장은 없다. TV드라마는 매체 자체가 그런 것이다. 영화처럼 표를 사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방송이란 그런 것이다. 사방에 개방돼 있고 공개돼 있는 매체다. 어찌 보면 TV드라마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기보다는 공감 또는 감동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고 많은 사람이 신분이나 교양 지식수준을 가리지 않고 향유하는 소통의 매체다. 그래서 가장 정상적이고 지극히 보편적인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매체 스스로의 통제 또는 특성이라고 부른다. TV드라마는 함부로 아무 거나 할 수 있거나, 아무 표현이나 제멋대로 내뱉을 수 있는 그런 성격의 매체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잘 쓰는 드라마작가’란 어떤 작가를 말함인가. 막장이나 저 품격이 아닌, 가장 정상적인 인간이 나오는 정상적인 드라마를 쓰는 사람을 말한다. 비겁한 책임회피식의 시청연령 제한표시 따위에 매달릴 일이 아니다. 인간과 인생에 대한 나름의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작가가 좋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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