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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7)-김기팔(2)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7)-김기팔(2)
내용 불후의 인기드라마와 작가이야기
인간 다큐드라마와 작가 김기팔(2)


“민나 도로보 데쓰”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말이다. “민나 도로보 데쓰!” 모두가 도둑놈들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모두 도둑놈들이야!” 또는 “야, 이 도둑놈들아!” 하지 않고 하필이면 왜 일본말로 “민나 도로보 데쓰”라고 했을까. 그때가 1980년대 초, 정확히 말해 1982년 MBC-TV에서 ‘거부실록(巨富實錄)’이라는 드라마시리즈를 작가 김기팔이 쓰고 있었다. 평양갑부 백선행(여자), 제주부자 김만덕(여자), 그리고 ‘공주갑부 김갑순’(남자) 편에서 문제의 이 일본말 대사가 방송을 타자 삽시간에 유행어가 되었고, 드라마의 인기 또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1980년대 초라는 당시의 혼란하고 혼탁한 세태를 비교적 적절하게 풍자한 표현이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때는 이른바 신군부라는 세력들이 정권을 사실상 찬탈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주인공인 공주갑부 김갑순은 일제 강점기를 거친 무식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저 험한 일제 강점기부터 오로지 돈을 모으는 것 밖에 모르는 그런 인물로, 그 인물의 입을 통해 세상에다 대고 “민나 도로보 데쓰” “모두 도둑놈들이다” 한 것이다. 그 시절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 특정인들을 향해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주인공 김갑순 역은 탤런트 박규채가 맡았다. 박규채야말로 그 전이나 그 뒤에나 그다지 주연을 맡을만한 배우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 ‘거부실록’의 ‘공주갑부 김갑순’ 편에서 당당하게 주연을 맡아 예의 그 유명한 유행어 “민나 도로보 데쓰”를 매 회마다 상표처럼 외친다. 김기팔의 드라마가 거의 다 그렇듯 일반적으로 주연급이라고 할 수 있는 배우를 주인공 역으로 쓰는 경우는 드물었고, 이 공주갑부 김갑순 역도 마찬가지였다. 무식하고 힘들게 돈을 모아 나중엔 좋은 곳에 크게 쓸 줄도 아는 거부들을 통해 인간을 그려가는 드라마들이었다. 특히 그 가운데 ‘공주갑부 김갑순’은 이미 유행어가 말해주듯이 특유의 시니컬한 통쾌함으로 인기를 모았다. 드디어 ‘김기팔드라마’의 진수를 보는 맛을 사람들은 느끼기 시작했다.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는 그의 필봉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정말 김기팔은 전혀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드라마의 대사 하나라도 걸리면 잘리는 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꿋꿋하게 쓰고 싶은 드라마를 맘대로 썼다. 덕분에 무려 여덟 차례나 김기팔의 드라마는 중간에 방송중단 되는 아픔을 겪었다. 때문에 혹자는 그의 드라마가 용두사미라는 악평까지 했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시작은 늘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거창하게 문을 여는데 얼마 안 가서 흐지부지 드라마가 사라진 경우가 잦아서다. 그러나 이 ‘거부실록’ 중에서도 ‘공주갑부 김갑순’만은 달랐다. 우선 정치적인 냄새가 겉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았고, 그저 돈만 긁어모으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였으며, 거기다 “민나 도로보 데쓰”란 일본말 유행어가 너무 급속히 퍼져나가서 미처 손 쓸 사이가 없었다. 한편 그는 이 드라마를 통해 세상에다 대고 “야, 이 도둑놈들아!” “모두 도둑놈들이야!” 하고 외칠 수가 있었다. 인간의 끝없는 사리사욕과 욕망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한 마디이기도 했지만, 거기에 빗대어 정치권력의 속성을 비웃는 작가의 철학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 김기팔은 작가의 철학과 의식과 정신에 누구보다도 충실한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셈이다. 작가가 글을, 드라마를 왜 쓰는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결정적 한 마디가 “민나 도로보 데쓰” 즉 “모두 도둑놈들이야!”였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당시는 물론 그 후에도 불후의 인기드라마로 남았다. 작가의 색깔이 성공한 드라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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