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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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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 인문학(8)-김기팔(3)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8)-김기팔(3)
내용 인기TV정치드라마 ‘제1공화국’은 어디서 왔나

불후의 인기드라마와 작가 이야기
인간다큐드라마와 작가 김기팔(3)



사실 ‘김기팔드라마’의 인기는 ‘거부실록’ 이전으로 돌아간다. MBC-TV에서 방송된 ‘거부실록’이 1982년에 나왔는데,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주목을 끈 김기팔의 드라마는 바로 한 해 전인 1981년에 MBC에서 방송한 ‘제1공화국’이다. ‘제1공화국’은 다큐멘터리드라마이고 정치드라마다. 그때까지만 해도 TV드라마는 사회성이나 시대와는 별개의 고작 허구의 사랑이야기나 홈드라마나 하는 것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작가 한운사가 그보다 앞서 TV에서 ‘박마리아’라는 정치이면사를 그리는 드라마를 쓰다가 중단한 적이 있었지만 그땐 비교적 픽션 쪽이 강했다. 그러나 김기팔의 정치드라마는 달랐다. 픽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팩트에 바탕을 둔 철저한 다큐드라마였다. 다만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작가의 시각과 의식을 불어넣는 드라마로 만들었다. 인간을 그리되 허구 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살았던 실존인물의 경우를 가능하면 정확하게 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김기팔의 다큐드라마였고, 이를 시작으로 시대성과 사회성이 함께 들어있는 드라마에 사실상 승부를 걸었다. 텔레비전으로 ‘제1공화국’이라는 드라마가 나가자 사람들은 우선 정치드라마라는 데에 흥미를 느꼈고, 그때까지 보도로만 알고 있던 역사적 사건들이 배우들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된다는 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이 곧 김기팔드라마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로 나타났다. 가령 ‘아씨’나 ‘여로’와 같은 국민적 눈물을 짜내며 시청률을 올린 한 많은 여인의 일생하고는 방향이 달랐다.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하는 드라마들

예컨대 해방 이후 자유당 시절까지 정국을 주도해 온 이승만, 김 구, 조병옥, 신익희, 조봉암, 여운형, 조만식, 이기붕, 심지어 미 군정청 관계자들까지 정계 거물들의 이미지를 배우의 분장으로 재현해냈다. 그리고 숨 막히게 돌아가는 권력세계의 쟁탈전과 이념의 갈등까지 작가의 눈으로 풀어냈다. 이승만의 떨리는 말투와 행동과 모습, 주요 인물들의 생각과 활동반경까지 실제인물을 보듯이 형상화 해내는데 성공했다. 정국의 소용돌이를 정확하게 짚어 나갔다. 소설이든 영화든 전에 없던 일이었다. 작가 김기팔은 흔해 빠진 드라마 속에서 지어내는 허구의 인물보다 워낙 실존인물에 관심도 많았지만, 텔레비전드라마가 시대성과 사회성을 빼놓고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가에 대해서 하등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 정파의 눈으로 보거나 편향된 시각으로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온 인간들을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김기팔의 작가의식은 어디서,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먼저 그가 쓴 라디오드라마와 세미다큐멘터리 등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963년 동아방송에서 나간 ‘이 사람을!’이란 프로그램에서 김기팔은 일일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역경을 드라마와 증언으로 엮었다. 그리고 1963년에 ‘사르빈강에 노을이 지다’를 쓰고, 1974년에는 ‘제이슨 리’를 쓰고, 1970년부터 1980년까지 10년 동안 줄곧 라디오의 정치다큐드라마 ‘정계야화’에 매달린다. 그때는 이미 라이벌 방송사인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광복 20년’이란 다큐멘터리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승만의 짝퉁 목소리를 진짜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을 때다.
라디오 다큐멘터리드라마 ‘정계야화(政界夜話)’로부터 시작되다

동양방송의 ‘광복 20년’은 가급적 있는 사실 그대로를 충실히 전하려는 편이었다. 그러나 동아방송에서 방송된 김기팔의 정치다큐멘터리 ‘정계야화’는 달랐다. 작가의 주관과 시선이 다소 입혀진 색깔 있는 정치다큐드라마로 차별화 했다. 이것이 김기팔 정치드라마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어디까지나 사실에 입각한 다큐멘터리를 유지하면서 작가의 판단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드라마의 역할에도 충실했던 것이다. 바로 그 정신을 TV드라마 ‘제1공화국’으로 가져왔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김기팔의 다큐드라마, 특히 정치드라마를 눈 여겨 볼 수밖에. 한 시대가 분노할 줄 아는 작가를 가졌다는 것은 축복에 속한다는 말도 있잖은가.
더욱이 1970년대 중반은 소위 유신정치가 극성을 떨던 때라, 그때 그 무렵 ‘정계야화’의 4.19 전야 부분에서 나간 내레이션은 사람들의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한번 쥐면 그토록 놓기 싫은 것인가. 그럼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내일 계속하겠다는 예고는 지켜지지 않았다. 여기서 다큐멘터리드라마 ‘정계야화’는 중단되고 작가의 ‘내일’도 풍비박산 사라져버렸다. 문제의 드라마는 살아났다가 사라지는 등 겨우 겨우 명맥을 이었다 말았다 부침을 거듭한다. 이 시기에 김기팔은 감연히 붓을 꺾고 1970년대가 다 가도록 동대문시장판에서 어머니가 하던 단추장사를 물려받아 한동안 지내보기도 한다. 그러나 당연히 돈은 벌지 못하고 술만 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는 1980년대 초에 들어서자 텔레비전에서 또 다시 정치드라마로 ‘제1공화국’을 내놓은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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