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30)-한운사(5)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30)-한운사(5)
내용 사회와 시대와 인간에 대한 관심
드라마의 품격 높인 휴먼 로맨티스트

작가 한운사가 방송에서 드라마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을 때, 인쇄매체(주로 소설이나 칼럼)에서도 그를 찾기에 바빴다. 드라마나 신문의 연재소설을 책으로 엮어내기도 하고, 그의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시원하며 멋이 있는 문체나 문장들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한국방송에 있어서 TV드라마의 초석을 다지는 것은 물론이고, 텔레비전드라마의 품격을 높이는 데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몇몇 후배들은 한운사의 드라마를 따라 일종의 계파를 형성할 만큼 한국적 텔레비전드라마의 전범(典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원고 늦기로도 유명했다. 그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한 장 씩 넘어오는 그의 원고를 기다리며 전 스태프들이 밤을 새기도 했다. 연출자가 작가를 호텔방에 집어넣고 문을 잠그고 갔는데도 거기를 탈출해 행방불명된 경우도 있었다. MBC-TV에서 ‘아빠의 얼굴’이란 드라마를 쓸 때는 국제펜클럽 일로 외국에 나가 원고를 미처 보내지 않는 바람에 방송최초로 펑크가 났고, 그 초유의 사태로 전국이 한때 시끄러웠다. 방송사 PD가 피켓을 들고 공항입국장에 나가 원고를 갖고 오는 인편을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한동안 인쇄매체의 원고청탁과 영화시나리오까지 감당해낼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그런데도 방송사는 왜 원고가 늦는 그에게 자꾸만 드라마를 쓰게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속을 썩이고 늦게 나와서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그의 원고지만, 사람들은 그가 쓰는 드라마를 좋아했고 역시 잘 쓰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원고 늦기로 악명 높았던 작가
왜 그의 드라마는 계속 되었는가

불편과 긴장과 방송펑크의 위험을 감수하고도 그 시절에는 한운사의 드라마, 한운사의 원고를 원했다. 쓰는 드라마마다 사회와 시대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넘쳐흘렀고, 작가 특유의 인간상과 멋과 낭만을 동시에 내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드라마에 있어서 1970년대는 한운사의 시대였다. 소재나 내용, 드라마의 형식에 있어서 그의 실험과 시도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드디어 1977년 그의 마지막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TV미니시리즈가 탄생한다. KBS-TV가 방송한 ‘나루터 삼대(三代)’가 그것이다. ‘씨’ ‘피’ ‘땀’의 3부작으로 이뤄진 이 최초의 미니시리즈드라마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자칫 주제의식이 희미해질 수 있는 길이가 긴 연속극의 단점과, 한번으로 끝나는 1회성 단막극이 지닌 아쉬움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형식으로 미니시리즈가 등장했고, 그 텔레비전드라마의 미니시리즈 제1탄을 ‘나루터 삼대’로 쓴 것이다. 작품의 완성도도 높이고 흥행과 품질도 생각한 형식이었다. ‘씨’ ‘피’ ‘땀’으로 이어지는 3부작 미니시리즈의 내용은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현대사를 다룬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미니시리즈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20회 이상으로 나가는 사실상의 연속극으로 변질하고 말지만, 처음 시작은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 그만큼 ‘나루터 삼대’는 불후의 미니시리즈 작품으로 남아있다. 작품의 질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 또 하나의 명품으로 기록되었다.
미니시리즈 ‘나루터 삼대’
또 하나의 최초를 기록하다

극적인 운반과정은 물론이고 그 내용에 있어서 그 어떤 영상물이나 문학작품 못지않은, TV드라마 창작사상 새로운 하나의 획을 긋는 이정표가 되었다. 어찌 보면 한운사는 가장 작가적인 삶을 작가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았고,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비교적 많이 누리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만년에 그가 쓴 자서전 ‘구름의 역사’ 출판기념회에는 방송관련자들은 물론 배우, 각계각층 인사들, 특히 역대 국무총리 가운데 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그는 늙어 예전처럼 드라마를 직접 쓸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드라마작가로서의 한운사를 잊지 않고 찾아준 것이다.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은 왕년에 그가 쓴 드라마와 영화 가운데 ‘현해탄은 알고 있다’를 비롯해 ‘남과 북’ ‘빨간마후라’ ‘아버지와 아들’ ‘고향’ ‘서울이여 안녕’ ‘꿈나무’ ‘레만 호에 지다’ ‘족보’ ‘고독한 길’ ‘아낌없이 주련다’ ‘눈이 내리는데’ ‘아로운’ 등을 다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의 시원시원한 시평과 칼럼, 신문과 잡지에 연재된 소설들을 잊지 않았다. 그때그때 그 시대의 화두와 핵심을 짚어내는 그의 작가적 안목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지닌 휴머니즘과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로서,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그의 드라마와 작가정신에 한 때나마 매료되어 푹 빠졌거나 홀렸던 사람들이었다.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