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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33)-김수현(2)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33)-김수현(2)
내용 일일극 ‘새엄마’...‘김수현드라마’의 등장
현실생활 바탕의 드라마시대 문 열다

1970년대 초의 국내 각 방송사 간 경쟁과 텔레비전드라마를 둘러싼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치열한 편이었다. 개국과 동시에 일일연속극을 먼저 시작해봤던 TBC(훗날 동양방송)는 한동안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텔레비전드라마를 일일연속극으로 해야겠는데 여러 가지 여건이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 KBS-TV가 먼저 ‘행복이라는 것은’(이성재 극본, 김연진 연출)으로 일일극의 성공 가능성을 알렸고, 곧 이어 1970년 2월에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육이오를 거치며 살아온 한 집안의 이야기에 시대상과 사회성을 반영한 일일연속극 ‘아버지와 아들’(한운사 극본, 김연진 연출)을 방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텔레비전일일연속극의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1970년 3월 2일에 시작한 TBC-TV의 일일극 ‘아씨’(임희재 극본, 고성원 연출)부터였다. 개국과 동시에 녹화기를 들여와 최초의 일일연속극을 시도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잠시 단막극 등에 몰두하면서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리던 TBC가 드디어 회심의 일일극 ‘아씨’를 내놓은 것이다. 일일극 ‘아씨’는 방송을 시작한지 불과 얼마 가지 않아서 일약 최초의 국민드라마로 등극한다. 서울과 부산 일대에서는 밤마다 ‘아씨’를 방송하는 시간이면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모두들 텔레비전 앞에 몰려들었다. 그때 TBC-TV의 네트워크는 서울과 부산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아씨’의 시청률은 마치 전국적인 것처럼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그때 주로 여성시청자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들의 어머니, 한국여성이 살아온 지나간 삶의 수난사를 열심히 지켜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뒤질세라 KBS-TV는 1972년 4월부터 그 해 12월 29일까지 또 하나의 국민드라마로 꼽히는 일일극 ‘여로’를 내놓는다. 이 역시 한국 여인 수난사로, 바보 남편을 극진히 보살피며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억척스런 지난날의 이야기였다. 이때는 ‘아씨’와 달리 명실공이 전국드라마였다. KBS-TV의 전국방송망 덕에 ‘여로’는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고, 특히 다방이나 식당 등 요식업이나 숙박업소 간판은 아예 ‘여로’로 바꿔 거는 경우가 수두룩할 정도였다. 이쯤 되자 문제가 되는 방송사는 MBC였다.

퇴영적 과거가 아닌 현실을 드라마로
대등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을 그리다

1국영 2민방의 3사 체제 속에서 결국 MBC만 일일극에 있어서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존재조차 거론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초조한 MBC는 나름대로 묘안 짜내기에 골몰했고,
경쟁상대의 일일극에 필적할 드라마를 쓸 작가를 찾는 등 온갖 궁리를 다하다가 급기야는 나름대로 모험을 걸기에 이른다. 다급한 나머지 그때 마침 MBC에서 처음으로 주간연속극을 쓰고 있던 신인 급 작가에게 관심을 갖는다. 이 작가는 같은 MBC라디오에서 실시한 연속극 공모에서 ‘저 눈밭에 사슴이’로 당선된 작가였는데, 막상 방송사가 뽑아놓고는 미처 쳐다보지도 않던 그런 작가였다. 그는 공백 기간에 영화시나리오도 쓰고 하다가 그 무렵에 처음으로 텔레비전 주간연속극을 맡아 곧 끝나가는 중이었다. 사실상의 신인작가에게 일일연속극을 맡겨봐? 김수현이었다. 그래서 모험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MBC로서는 밑져봐야 본전이 아니었다. 실패하면 수렁으로 빠져드는 막다른 골목이자 급박한 상황이었다. 다른 방송사는 다들 일일연속극을 성공시켜 이른바 국민드라마의 반열에까지 올려놓았는데, 만약에 여기서 실패하면 한동안은 드라마에 있어서 회복하기 힘든 그런 국면이었다. 김수현은 제안했다. 이미 두 방송사가 히트한 바 있는 지나간 삶, 지나간 시대, 옛날 여인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과거이야기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현재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쓰겠노라고. 언제까지 TV드라마가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나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것인가. 텔레비전드라마가 언제까지 여인들의 수난사와 숙명에 매달려 눈물만 짜내는데 그칠 것인가. 이제는 여성도 자신의 의지와 자존감으로 살아가고, 하나의 인격체로 반듯하게 존재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령 대가족 집안에 재취로 들어온 한 여인이 그 어려운 입장과 문화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립하며 살아갈 것인가. 남편(배우 최불암)과 늙은 할머니 급 시어머니(배우 정혜선)와 이미 결혼까지 한 자녀(배우 조경환, 엄유신) 등 다 자란 덩치 큰 자녀들이 우글우글 한 집에 산다. 당시만 해도 재혼에 대한 편견과 전처 자식들 간의 원시적인 갈등이 흔하던 때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 재처는 얼마나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의 의미는 또 무엇인가.

당시로선 가장 긴 일일연속극 기록
TV드라마의 진화와 업그레이드에 기여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의 삶을 다루는 것이 오히려 텔레비전드라마의 기능에 맞는 것은 아닌가. 주인공 여인(배우 전양자)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과거 ‘아씨’나 ‘여로’에서처럼 눈물을 보이거나 울지 않는다. 정 눈물을 보일 일이 있으면 돌아앉아 마루를 열심히 닦으며 뒷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러면 그때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오히려 대신 울어준다. 이것이 눈물만을 보여주던 드라마에서 보다 한 단계 절제되고 진화되는 과정이 아닐까. 한 마디로 리얼리티가 확 살아있는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무렵 히트한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낭만을 빼놓지 않았다면, 김수현의 일일극 ‘새엄마’는 그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 낭만에 더하여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나타내고 이어가는 정서를 정확하게 그려내 TV드라마의 특징을 살렸고, 특히 인물들의 캐릭터에 있어서 각기 개성과 현실성을 부여하는 등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뤄야 하는 TV드라마로서의 리얼리티를 잘 살려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언어사용의 적확(的確)성이 누구보다도 탁월했다. 결국 이 ‘새엄마’는 그 무렵 국민드라마로 관심을 끈 몇몇 연속극들과는 접근방식이나 기본바탕이 달랐다. 그 당시 흔해 빠진 과거 지나간 여인들의 일생을 다루지도 않으면서, 어디까지나 ‘땅에 발을 딛고 선’ 사람들의 살아가는 현실이야기를 다루어 불후의 인기드라마가 된 셈이다. 이 ‘새엄마’에는 싸구려 눈물을 짜내거나 황당무계하거나 말도 되지 않는 허황된 거짓이 없었다. 텔레비전드라마를 대하는 작가로서의 이 싱싱하고 새로운 인식과 시도가 드라마 ‘새엄마’를 공전의 히트드라마로 탄생시켰고, 당시로서는 가장 긴 인기일일연속극으로 남게 만들었다. 1972년 8월 30일에 첫 방송을 시작해 해를 넘겨 이듬해 연말까지 무려 411회로 막을 내렸다.
그때까지 그 어떤 드라마도 세우지 못한 롱런기록이었다. TV드라마에 있어서 실로 ‘김수현드라마’의 등장이며 ‘김수현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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