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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 인문학(44)-유지인, 장미희, 정윤희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44)-유지인, 장미희, 정윤희
내용 불후의 인기드라마와 연기자이야기(4)


탤런트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
제2의 트로이카 시대를 열다

‘제2의 트로이카 시대’라면 그전에 ‘제1의 트로이카 시대’가 있었다는 말이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 정도까지 주로 영화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세 사람의 여배우 남정임, 문 희, 윤정희의 시대를 일컬어 ‘제1의 트로이카 시대’라고 한다. 이들 세 사람의 여배우 가운데 문 희는 일찍 결혼해 은퇴하는 바람에 텔레비전드라마에서의 활약이 거의 없이 사실상 영화에만 출연했던 배우였다. 남정임과 윤정희는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TV드라마에서도 한때 활약했었다. 그러니까 이들 1세대 트로이카들은 주 활동무대가 영화였고 영화가 근거지였다는 점에서 제2의 트로이카들과는 다르다. 유지인과 장미희, 정윤희는 그 출발부터가 영화가 아닌 텔레비전으로 시작해서 거꾸로 영화계까지 섭렵한 세대들인 것이다. 제2의 트로이카 시대는 TV드라마와 더불어 막을 연 셈이다. 1970년대 말, 국내 텔레비전 방송은 KBS와 MBC, TBC의 3파전으로 바야흐로 TV3국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가운데 KBS는 국영에서 공영체제로 전환했고, 말로만 공영인 MBC는 누가 봐도 광고로 살아가는 민간상업방송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TBC는 달랐다. 껍데기부터 속까지 완전한 민간상업방송이었지만 결정적인 핸디캡은 지방방송망, 즉 전국네트워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과 경기 일원, 부산과 경남 정도가 확실한 가시(可視)청 권이었다. 더욱이 민간상업방송으로 방송을 하나의 사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네트가 아니라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럴 경우 민간상업방송으로서의 TBC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당연히 시청률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시청률 우위를 점하는 길만이 장사에서 이기는 길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는 판이었다. 결국 그 전략의 하나로 드라마를 내세웠고,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나름의 스타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인기배우 발굴과 확보에 남달리 열을 올렸다. 덕분에 다른 방송사가 연기자 부족으로 고민이 깊을 때도 TBC만은 느긋할 정도로 꽤 알려진 인기배우들을 전속으로 묶어두거나 뛰어난 신인들을 적극적으로 발굴 또는 확보했다. 그 결과 건져낸 보석이 훗날 ‘제2의 트로이카’로 불리게 되는 이 세 사람의 여배우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였다.

1970년대의 TV드라마 춘추전국시대에
TBC-TV가 발굴해 성장시킨 여배우들

처음 TBC는 이들 세 여배우를 전속으로 묶어 다른 방송사들이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명의 신인 가운데 가능성만 발견되면 하루아침에 스타를 만들 자세로 덤볐다. 이 모두가 시청률 경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가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도 TBC의 바로 이런 전략에서 그들이 행운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치열한 인기다툼을 벌인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선의의 라이벌 의식은 연기자가 자라는데 있어 때로는 더 없는 힘이 되는 법. 서로 지지 않으려고 오기까지 부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단계씩 뛰어오르고 있었다. 먼저 유지인의 본명은 이윤희,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소위 학사출신의 연기자였다. 1974년에 TBC-TV의 15기 탤런트가 되었으나 학업을 이유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1978년 ‘님’이란 일일연속극의 주연을 맡아 본격적인 연기자생활에 들어갔다. 하지만 최초의 주연이라 연기는 그다지 노련하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유지인은 분발했고 남모르는 혹독한 자기 수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편 방송에 복귀하기 전 출연한 적이 있는 영화 쪽에서 한꺼번에 무려 8편이나 겹치기로 출연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물론 TV드라마에서도 승승장구 명실공이 트로이카 시대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유지인보다 한 살 아래인 장미희는 1957년생이다. 유지인보다 한 기수 뒤인 TBC탤런트 16기생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장수만세’ 프로그램의 보조MC를 하는 등 실제 연기활동은 미미한 편이었는데, 영화 쪽에서 먼저 ‘춘향전’의 타이틀 롤을 맡는다. 그러다가 TV드라마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은 연속극이 아니라 일개 단막극인 ‘해녀 당실이’의 해녀 역이었다. 그 후 남지연 극본 전세권 연출의 주말연속극 ‘결혼행진곡’에서 일약 주인공 급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정작 장미희의 가치를 한껏 높이고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은 드라마가 아닌 영화 ‘겨울여자’에서였다. 당시 국산영화 사상 최고의 관객동원에 성공하면서 연기자로서의 장미희의 위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그리고는 곧장 TV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유지인과 함께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라이벌 관계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고, ‘어머니의 강’ ‘을화’ ‘달무리’ 등에서 갈수록 원숙한 연기를 펼친다.

정윤희는 결혼으로 완전 은퇴, 유지인과 장미희는 지금도 활동 왕성

이들 제2세대 트로이카 가운데 정윤희의 데뷔과정은 조금은 다채롭다고 할 수 있다. 1954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후 부산에서 여고를 나와 처음엔 CF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1975년 영화 ‘욕망’에 출연했다가 유난히 뛰어난 미모가 눈에 띄어 TBC-TV의 쇼프로그램인 ‘쇼쇼쇼’의 여자MC로 발탁되었다. 여기서 눈여겨 본 드라마 연출자들이 탐을 내어 본격적인 연기자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외동딸’ ‘사랑도 미움도’에서 주연을 맡았으나 신인 급 처지로 그다지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동녀미사’ ‘야! 곰례야’ 등에서 비로소 무르익은 연기자로 유지인, 장미희와 함께 강력히 부상(浮上), ‘제2의 트로이카’로 한 시대를 풍미한다. 그 당시 무슨 행사장에 이들 셋이 나타나면 모두의 시선이 쏠릴 정도로 눈부시고 젊었다. 그만큼 스타성이 있었다는 얘기다. 스타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들이 나타나면 군계일학처럼 눈에 확 들어오고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것이 한 시대를 주름잡은 트로이카의 특성이라면 특성이었다. 그리고 이들 ‘제2의 트로이카’는 영화에서 TV로 온 것이 아니라 TV드라마를 본거지로 해서 영화계를 주름잡았다는 점이 달랐다. TV드라마에 출연을 하는 한 편, 어떨 때는 한 해 동안 제작되는 영화의 주역을 이들 셋이 거의 독점할 정도로 인기다툼이 치열했다. 그러나 상복(賞福)은 달랐다.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 가운데 그 무렵 유일한 영화상이던 대종상 여우주연상은 이상하게도 장미희가 제일 늦게 받았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상복이 없었다. 드디어 장미희가 상을 받는 날, “아름다운 밤이에요”라는 유명한 수상소감을 남겼다. 유지인은 결혼해서 주부로 살다가 다시 TV로 돌아와 2015년 현재 여러 드라마에 출연 중이고, 정윤희는 결혼으로 은퇴한 이후 한 번도 연기 쪽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이들 셋 가운데 유일하게 결혼하지 않은 장미희는 역시 2015년 현재 한꺼번에 두 개의 TV드라마에 겹치기 출연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로도 완전히 자리를 잡아 자못 그 명성이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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