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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45)-태현실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45)-태현실
내용 불후의 인기드라마와 연기자이야기(5)



국민드라마 ‘여로’의 히로인 태현실(太賢實)
단 한편의 드라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다

1972년에 방송된 KBS-TV의 일일극 ‘여로’는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드라마였다. 비록 비공식 조사이긴 하지만 시청률이 80~90%에 이르렀다는 기록을 남겼다. ‘아씨’ 이후 채 일 년 남짓 만에 이른바 국민드라마가 또 하나 탄생한 셈이다. 1972년 4월 3일부터 그 해 12월 29일까지 이 드라마가 나가는 시간에는 다시 한 번 거리가 한산해졌을 정도였으니 1972년은 사실상 ‘여로’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무렵 특히 여성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사극으로 MBC-TV의 ‘장희빈’이 있었다. 그러나 ‘여로’의 인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여로’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을 문 닫게 하고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가는 곳마다 ‘여로’ 이야기고 거리의 간판마다 ‘여로’로 바꿔치기하느라 바빴다. 드라마 ‘여로’는 가난한 집안의 처녀가 양반집 도령과 혼인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신랑이란 위인이 지능도 모자라고 신체도 불편해 색시와는 처음부터 묘한 대조를 이루는 불균형 상태를 보인다. 거기다 극성맞고 구박이 심한 시어머니(탤런트 박주아)와 시누이(탤런트 권미혜)로 인해 시집살이는 날이 갈수록 고되고, 그 와중에서도 그녀를 짝사랑 하는 사나이(탤런트 김무영)가 툭하면 흉계를 꾸며 더 더욱 괴롭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이런 일에 굴하지 않는다. “아부지야 제기차기 하자”라고 할 정도의 지능밖에 없는 바보신랑 영구(탤런트 장욱제)를 오히려 감싸가면서 슬기롭고 인내심이 강한 한국여성의 전형적인 부덕(婦德)의 일면을 보여준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몰락해버린 집안의 시부모와 남편을 위해 이 여인은 부산 피난지에서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해 커다란 재산까지 모은다. 그것으로 자신보다는 주위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결국 육영사업에 전 재산을 희사하는 여성! 그야말로 각고의 세월을 이겨낸 현명한 여인의 승리라고나 할까. 순종과 희생과 강인한 토종한국여성의 이미지를 연기 하나로 절실하게 살려냈다.

희생과 인고와 순종과 시련을 극복하고
끝내 이겨내는 전형적 한국여성을 연기

바로 그 화제의 드라마 ‘여로’에서 여성주인공 역을 맡은 탤런트가 태현실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연기자로는 보기 드물게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이미 1963년에 ‘아름다운 수의(囚衣)’라는 영화로 데뷔한 배우였다. 그런데도 그때까지는 연기자로서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저 탤런트가 누구지?” 할 정도로 처음 드라마가 방송될 때만 해도 사실상의 무명이었다. 특이하게도 왼쪽 눈 옆으로 사마귀가 있어 그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큼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다. 그러던 그가 드라마 ‘여로’에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회가 거듭될수록 인기가 치솟고 연기에 물이 오르면서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나갔다. 사람들은 태현실이 온갖 시련과 구박을 받거나 흉계로 인해 궁지에 몰리면 다들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상대방 악역들에 마구 대놓고 비난을 다 퍼부었다. 그녀가 울면 따라 울고, 그녀가 이를 악물고 역경을 이겨내면 누구 할 것 없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결국 손님이 없어진 극장가에서는 ‘여로’의 태현실과 장욱제를 무대에 불러 그것으로 초만원 사례를 만들어 흥행에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극장 쇼에 불리어 다닌 것은 비단 이들 주인공뿐만 아니었다. 주인공에 이어 조연으로 빛을 낸 탤런트 박주아, 김무영 등의 악역들도 덩달아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극장흥행사들은 이들의 스케줄을 잡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극장무대에서 이들이 인사만 하고 사라져도 손님은 만원이었다. 모자라는 남편 역의 장욱제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여주인공 태현실이 처절한 삶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남편을 끔찍이 보살피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영화를 문 닫게 한 TV드라마의 주역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누비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 태현실이 보여주는 꿋꿋한 부녀(婦女) 상을 보고, 못난 남편을 두고 집 나간 어느 할머니 시청자 집 며느리가 돌아왔다고 방송국을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는 일화도 생겨났다. ‘여로’에서의 태현실의 연기는 시청자들을 울리는 연기, 억척스런 여인으로서의 연기,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는 연기로 대변되고 있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동정심과 폭발적인 인기를 동시에 얻었다. 그녀의 얼굴에 나타나는 여인상은 그 후 한동안 마치 한국여인의 전형적인 모델처럼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극장에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드라마 ‘여로’의 방송시간만 되면 일제히 TV앞으로 몰려가는 바람에 결국 극장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아예 텔레비전수상기를 극장에 들여놓기도 했다. 잠시 영화 상영을 중단하고 ‘여로’의 방송이 끝난 뒤에 다시 영화를 틀었다. 심지어 고급술집의 호스티스들까지 ‘여로’의 방송시간이면 손님들을 두고 슬슬 빠져나가 한 군데에 모여 드라마를 보는 통에 술집마다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로 그 인기의 한 복판에 배우 태현실이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여로’에서의 태현실의 연기는 사람들을 울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여성 스스로 의지와 인격을 가진 삶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오죽하면 태현실을 며느리나 누나 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을까. 태현실의 결혼스토리 또한 여느 연예인들에 비해 독특하다. 배우 태현실의 열렬한 팬이었던 청년(나중에 시동생이 됨)과 친해져 자연스럽게 그의 집에 왕래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권유로 그의 형인 훗날 남편과 사귀게 되어 결혼까지 이르렀다. 그 후로 극중에서의 그녀의 역할과 이미지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여성으로서의 그의 이미지가 그가 맡은 배역에서처럼 현숙하게 자리 잡았다는 말이 된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나서도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197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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