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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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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 인문학(50)-박마리아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50)-박마리아
내용 가장 짧게 끝난 일일연속극 ‘박마리아’
드라마 외압에도 배우 ‘윤여정’은 살아

한국TV드라마 50년사에 본의 아니게 말썽을 일으켰거나 시끄러웠던 드라마는 몇 편이나 있을까. 드라마 내부의 사정 때문에, 방송사의 사정으로 인해, 아니면 이른바 외부의 압력에 의해 문제가 되고 말썽이 되어 끝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도중에 하차한 드라마들이다. 특히 외압으로 인해 최단명으로 막을 내린 그 첫 번째 드라마는 누가 뭐래도 MBC-TV의 일일연속극 ‘박마리아’가 꼽힌다. 1970년 10월 26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화제작 ‘박마리아’는 처음부터 격심한 외부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당초 한운사 극본의 이 드라마는 자유당 정권 때 2인자였던 부통령 출마자 이기붕의 부인으로 잘 알려진 박마리아의 일대기를 그리려던 작품이었다. 권력의 화신으로 전국적인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결과적으로 4.19혁명을 일어나게 해서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리고, 쫓기던 그녀의 일가족은 당시 대통령집무실인 경무대(훗날 청와대) 지하로 피신한다. 하지만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진 그들 일가는 큰 아들이 쏜 총탄에 의해 집단자살이라는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1970년이면 그 사건이 있은 지 이미 10년이나 흘렀지 않은가. 이제는 그 이야기를 드라마로 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작가는 야심차게 극본을 쓰기 시작했고, 드라마는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잘 방송되는 듯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드라마가 방송되자마자 시작부터 박마리아와 이기붕 일가는 물론 자유당 잔존세력들의 항의가 연일 빗발쳤다. 그러다가 드디어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본격적인 압력이 가해진다. 외압을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담당 연출자들이 3명이나 바뀌는 곡절을 겪는다. 처음에는 표재순이 연출했고, 그 다음이 이기하, 마지막 연출자는 유길촌이었다.

정치적 여성의 일생을 그리려한 드라마
외부의 압력으로 최단명 28회로 끝나

불과 28회로 막을 내리기까지 무려 3명의 연출자가 바뀐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외압도 문제였지만 내부의 사정, 즉 작가의 원고가 늦게 나오는 것도 원인이었다. 가뜩이나 원고 늦기로 유명한 작가인데다 외부로부터 간섭이나 압력이 가해지자 더 더욱 쉽게 써 지지가 않았다. 드라마가 어디로 가야하며 어떻게 써야 할지 이미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그것도 정치드라마를 잘 쓰는 작가로 평가받는 그였지만 외부의 압력에 전혀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녹화 당일에야 겨우 원고가 나오는 일은 차라리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밤을 새며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때야 원고는 한 장씩 두 장씩 넘어오는 것이다. 부랴부랴 프린트를 해서 연습을 하고 밤중이나 새벽에 녹화를 하게 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런 일이 며칠을 지나자 누구도 지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번번이 밤을 새고도 모자라 어떤 때는 방송시간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원고가 도착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겨우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래서 드라마 ‘박마리아’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은 어느 날부터 아예 ‘밤마리아’로 불렀다. 주인공 박마리아 역은 탤런트 윤여정이 맡았고 그녀의 어머니 역으로는 연극배우 박정자가 맡았다.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았다. 박마리아의 유족들은 고인의 명예훼손이라고 강력히 항의했고,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시기상조라는 명분을 내세워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사실 드라마의 시작부분은 박마리아의 소녀시절 이야기인데도 이런 난리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쯤에서 먼저 첫 번째 연출을 맡은 표재순이 손을 들었다.

드라마는 인간의 본질과 사는 모습 그려야
3명의 연출자 울리고 다시는 다뤄지지 않아

두 번째 연출을 맡은 이기하는 일주일 치를 녹화하고는 그만 방송을 끝내자고 했다. 아무리 외부압력이 심하다지만 방송사로서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드라마를 밑도 끝도 없이 중단한다는 것이 여간 께름칙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지막 연출자인 유길촌에게 맡겼지만 그 역시 더는 나가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한 달도 채 못 채운 28회 만에 일일연속극 ‘박마리아’는 끝났다. 일일연속극 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짧게 끝난 기록을 세웠다. 자유당 독재정권의 안방마님 박마리아의 일생, 한 여성의 일생을 다루려한 이 드라마는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조기종영 하는 불운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이 짧고 단명한 드라마가 남긴 것도 있었다. 주인공 박마리아 역을 맡은 연기자 윤여정 만은 유난히 강렬한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남겼다. 원래는 TBC탤런트였던 그를 MBC가 개국하면서 스카우트 해온 배우였는데, 비록 중도하차한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았지만 그가 어떤 연기자인가를 일반 시청자들한테 확실히 각인시키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그녀만의 독특한 개성이 박마리아의 캐릭터와 용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일찍 끝나는 불운을 겪었어도 주연을 맡았던 배우 윤여정은 짧은 기간 동안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행운을 잡았다. 이때부터 주연급 배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졸지에 3명의 연출자를 울리고 부랴부랴 막을 내린 일일연속극 ‘박마리아’의 소재는 그 후로 다시는 텔레비전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박마리아’와 같은 인물에 관심을 갖는 방송사도 작가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원고는 느려도 끝까지 인간본질 탐구에 천착하려는 작가도, 무리를 해서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려는 방송사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변화된 TV드라마의 풍토 탓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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