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58)-광복 70년에 TV드라마 속 들여다보기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58)-광복 70년에 TV드라마 속 들여다보기
내용 광복 70년에 TV드라마 속 들여다보기
일제잔재(日帝殘滓), 청산 되었는가 남아있는가

정확히 말하면 일제의 잔재이기도 하고 일본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TV드라마의 일제잔재는 어떤 것들이었으며 TV드라마에 미친 일본의 영향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말들이 많았다. 당시는 우리가 일본방송을 직접 볼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방송요원 가운데 일부, 특히 TV드라마 종사자들 가운데 일부는 일부러 휴가를 내 부산 해운대의 호텔에 머물기도 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개편을 앞두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일본TV방송이 그나마 잡히는 부산으로 갔다는 얘기다. 그리고 어쩌다 특별한 경우에 일본에 출장을 가는 제작요원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일본의 드라마들을 필사적으로 모니터링하고, TV드라마로 쓸 만한 소재를 발굴해오는데 열을 올린다고도 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또 실제로 얼마나 참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 된 바가 없지만, 어쨌거나 그 무렵의 대형사건 가운데 하나는 일본드라마 ‘젠노하나’의 표절이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돈의 꽃’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 무렵 어느 방송사가 시작한 TV드라마가 이 일본드라마를 그대로 베꼈다는 사실이 화제로 떠올랐다. 사연인즉 그 드라마의 연출자가 일본에서 잘 나가는 TV드라마대본 하나를 가져와서는 작가에게 주었고, 작가는 그 이야기를 우리나라에 맞게 고쳐 ‘꽃네’라는 이름으로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의 온천지대가 무대인 것을 우리나라의 온양온천으로 지명을 바꾸는 정도였다. 일본드라마를 누구나 볼 수 있고 나라간의 저작권관계가 보다 명확해진 지금 같으면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일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아마도 요즘이라면 원작을 사들여 떳떳하게 각색을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누가 뭐래도 완벽한 표절이었기 때문에 방송윤리위원회로부터 징계도 받았고, 사정이야 어떻든 그 작가는 그 후로 작가생활을 폐업하고 방송가를 떠났다.

TV드라마는 이미 일본을 앞섰는데도
여전히 일본 것을 기웃거리고 있다

물론 원인제공자인 연출자는 방송사직원이니까 그 후로도 계속 드라마를 만드는데 크게 이상이 없었고. 그로부터 40년도 더 흐른 지금은 어떤가. 이제는 표절도 할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툭하면 일본원작을 사들여 국내드라마로 각색해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본원작의 드라마가 뛰어난 작품성을 지녔거나 그 원작의 가치를 사들여 국내에서 다시 드라마 화 할 뚜렷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드라마 원작의 우수성이나 작품성보다는 그저 ‘일본드라마’라면 손님을 끌 것이라는 지극히 막연한 주먹구구식 상업적 논리로 적잖은 일본원작들을 국내에서 재탕해먹는 식이다. 특히 판타지나 이른바 로맨틱코미디 계통이 많았다. 한때 가난하던 시절의 여인네 이야기들이 텔레비전연속극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이 먼저였고, 아침드라마들을 여성중심의 낭독 비슷하게 ‘TV소설’이라면서 끌고나간 것도 일본이 먼저였는데 지금의 우리 TV아침드라마들은 대부분 막장으로 치닫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른바 ‘트렌디드라마’라고 해서, 별다른 내용 없이 음악을 깔면서 화면을 빙빙 돌리고, 주로 청춘남녀의 러브라인을 다루는 식의 추세도 사실상 일본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다. TV드라마를 잘못 해석하거나 감각만을 앞세우는 나쁜 쪽으로 호도한 결정적인 일본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일부 젊은 시청 층에서는 지금도 ‘일드, 일드’ 하면서 마치 일본드라마의 선진기법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때로 열광하는 팬들이 있다. 이미 우리 드라마들이 일본의 수준을 능가하고 거꾸로 한국의 TV드라마들이 일본에서 방영되어 호평을 받고 있는데도 여전히 일본드라마가 더 재미있고 좋다면서 빠져있기도 하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TV드라마 제작현장에서는 일본용어가 판을 쳤다. 편집, 연출, 배우들의 연기, 기술 등의 모든 분야에서 마치 일본말을 써야 유식한 것처럼 하던 때도 있었다. 이거야말로 일제잔재였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중반 방송관계자들의 자정노력과 일본용어의 한국식으로 고쳐 쓰기 운동 등에 힘입어 많은 부분에서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없앴다. 그래도 여전히 일본용어인 줄도 모르게 그냥 예사로 쓰고 있는 말들도 남아있다. 예컨대 ‘쫑파티’ ‘입뽕’ 등이 그것이다. 일본식 표현, 일본말, 왜색용어는 쓰지 말자고 했는데도 일본말인지 뭔지 잘 모르고 쓰는 세대들에서 일부 일본말과 일본식 표현은 여전히 확대재생산 되고 있기도 하다. ‘아다리’ ‘대빵’ ‘마이(윗도리)’ ‘오뎅’ ‘석유곤로’ ‘왔다리 갔다리’ ‘오야붕’ ‘꼬붕’ 뿐만 아니다. 원래 ‘뒷다마’의 ‘다마’라는 일본 말을 최근에는 아예 ‘뒷 담화(談話)’로 고쳐 즐겨 쓰기도 한다.

일본말, 일본식 표현 아직도 청산 안 되고
식민지사관에 의한 역사드라마도 남아있어

우리말 속에 들어있는 일본 말은 하나 둘이 아니다. 심지어 방송진행자 가운데서나 일제의 탄압을 말하는 방송출연자가 자꾸만 ‘유도리(융통성), 유도리’ ‘정종(청주의 일본상품명)’이라고 하는 판이다. 특히 언어문제에 신경 써야 할 드라마의 대사에서 조차 잘 알지도 못하고 일본말을 우리말로 알고 그대로 쓴다. 일본식 영어, 일본식 신조어, 일본의 영어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여 마치 유식한 것처럼 쓰는 경우도 많다. 영어권에서는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표현들을 새로운 영어, 새로운 감각인양 쓴다. ‘스킨쉽’ ‘프로(퍼센트)’ ‘리어카’ ‘바께스’....생각해보면 부지기수다. 지금도 쓰고 있는 ‘위안부’나 ‘원조교제’도 그렇다. 일본에서 지어냈거나 그냥 내 뱉은 말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방송에서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라니? 그대로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노예’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경우인데도 무심코 ‘원조교제’니 ‘위안부’니 하는 표현을 일본에서 지어낸 말 그대로 쓰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일재잔재는 주로 역사극에서 나타난다. 가령 일제가 조선을 비하시킬 목적으로 이(李)씨들의 나라 ‘이씨조선’이라 한 것을 심지어 교육자라는 양반들도 ‘조선’ 또는 ‘조선왕조’ 대신에 자꾸만 ‘이씨조선’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조선의 당파싸움을 마치 분열만을 일삼는 기질인 것처럼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일제가 남긴 소위 ‘식민지사관’의 잔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칼잡이 하나로 다스리던 일본에 비하면 신하들의 토론과 논의를 거쳐 왕정을 꾸려나간 조선이야말로 일찍이 정당정치 또는 민주정치를 구현한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런 역사를 다분히 폄하한 것이 일제의 식민지사관이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조선의 왕들이나 역사를 아무런 비판 없이 그저 삼류의 나라로 전락시키는 TV사극들이야말로 일제의 잔재가 가장 철저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일본의 역사인식과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진정한 사죄를 촉구하면서도 정작 속으로는 여전히 일제의 잔재에서, 일본의 좋지 않은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새삼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