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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 인문학(61)-TV드라마 속 '고부갈등' 마케팅의 변화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61)-TV드라마 속 '고부갈등' 마케팅의 변화
내용 ‘슈퍼 갑’에서 역전(逆轉)된 시어머니들,
TV드라마 속 ‘고부갈등’ 마케팅의 변화


처음부터 한국의 텔레비전드라마, 특히 연속극에서는 시어머니가 권력의 중심이었다. 대부분의 연속극들이 가정을 주 무대로 펼쳐지고, 가족의 구성원들이 드라마의 주요인물로 등장하면서 자연히 시어머니는 극의 핵심이자 슈퍼파워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어머니는 전통적인 가정의 질서 차원에서 사실상의 ‘갑질’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며느리는 늘 가련한 ‘을’의 위치에서 온갖 핍박과 눈물 속에 시집살이를 했었다. 그러니까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걸쳐 시작된 텔레비전연속극에서는 이런 시집살이가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자연스런 모습으로 등장했고 우리 드라마의 고부갈등 마케팅은 이때부터 짭짤한 재미를 보기 시작했다. 족히 50여년 가까이 연속극의 중심에서 시어머니는 빠지지 않았고, 고부갈등만 등장시키면 시청률 안정권에 든다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시대가 변하고 전통적인 가족 또는 가정이 해체되는 과정을 밟으면서 시어머니의 위상과 권위도 예전과 같지 않게 하향추락 세(勢)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극히 최근인 2015년에는 급기야 ‘어머니는 내 며느리’라는 제목의 연속극도 나왔다. 물론 이 드라마는 제목만 그랬지 실제 내용은 어쩌다가 팔자를 고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고 과거 시어머니였던 사람이 거꾸로 뒤집혀 며느리가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이지만, 그 바탕에 고부갈등이 깔려 있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만큼 한국의 TV드라마에서는 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 다시 말해 고부갈등이 큰 비중을 차지해오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초기드라마들에서 시어머니들이 절대적인 ‘갑’이 되어 며느리를 시집살이 시키고 눈물과 한숨으로 여자의 일생을 살아가게 했다면, 점점 세월이 흐르고 변화의 역사가 쌓여가면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이 권력구조에 놀랄만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고부갈등 마케팅은 처음부터
악독한 시어머니 ‘갑질’에 눈물의 며느리


처음 연속극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무렵에 나온 드라마 가운데 시어머니가 등장한 연속극은 1970년 당시 TBC의 ‘아씨’(임희재 극본, 고성원 연출)였다. 그리고 이 보다 약간 앞선 KBS의 연속극 ‘아버지와 아들’(한운사 극본, 김연진 연출)에서도 구도 상 시어머니가 등장했다. 이 두 편 모두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또는 육이오라는 시대를 거쳐 오는 이야기였고, 한 여자의 일생 또는 한 집안의 일대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시어머니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두 편의 연속극은 한국텔레비전연속극의 중흥을 이끈 연속극의 조상 격이다. 연속극 ‘아씨’는 사상 최초로 일약 국민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다. 매일 밤 ‘아씨’가 방송되는 시간에는 서울시내 거리가 텅텅 비었다고 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편성된 ‘아버지와 아들’은 상대적으로 시청률은 낮았지만 주로 여성시청자들을 끌어들인 ‘아씨’와 달리 우리의 근대사 공간을 파고들어 나름대로 시대성과 사회성을 반영해 비교적 남성 식자층에서 많이 본 드라마로 평가 받았다. 말하자면 그 취향이나 대상에 있어서 ‘쌍끌이’를 한 셈이다. 이 두 드라마에 시어머니는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 드라마가 시어머니에 초점이 맞춰지거나 시어머니가 사실상의 기둥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시어머니의 ‘갑질’이 문제가 되거나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고부갈등에 허송세월 하거나 오로지 거기에 ‘올인’할 드라마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것 말고도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고, 실제로 한 여성이 시집을 와서 살아가는 일생을 그리는 데는 시어머니보다 속 썩이는 남편 쪽 비중이 더 크게 마련이고, 또 한 집안이 시대적 격변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선 고부갈등으로 날 샐 여지가 없었다. 덕분에 이들 두 드라마 때까지만 해도 시어머니의 횡포나 며느리 구박은 극의 중심으로 크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기껏해야 권위적이고 엄한 시어머니고 무조건 순종하는 며느리 정도였으며, 고부갈등 자체가 드라마의 핵심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시어머니 ‘갑질’의 하이라이트, 1차 고부갈등 종결드라마 시대가 온다. 1972년 4월에 시작해서 그해 연말인 12월 29일까지 총 211회를 방송한 KBS-TV의 인기연속극 ‘여로’(이남섭 극본, 연출)가 그것이다. 이 역시 ‘아씨’에 이어 전국을 눈물바다로 몰아넣은 또 한편의 국민드라마가 되었다. 그 인기가 전무후무할 정도로 한때 사회전반에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대신 드라마 ‘여로’를 보는 바람에 극장은 텅텅 비었고, 식당이나 다방, 술집과 여관 등등의 접객업소 간판까지 하루아침에 ‘여로’로 바뀌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로 이 ‘여로’의 인기비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다름 아닌 고부갈등이 한 축을 자리 잡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악독한 시어머니(박주아-작고)에 시누이까지 거들고 나서는 전형적인 한국가정의 고부갈등 유형을 만들어냈다. 시어머니 배역을 맡은 배우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함부로 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공공의 적, 악의 축으로 지탄을 받았다. 그래도 그걸 참고 견디는 며느리의 덕목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사람들의 공감과 동정과 호응을 얻었다.


이제는 ‘갑’과 ‘을’이 역전된 상황
변형된 고부갈등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고 거의 비슷한 무렵에 나온 드라마의 시어머니들이 무턱대고 며느리를 괴롭히기만 하는 악행의 대명사만은 아니었다. 예컨대 지나간 시대가 배경인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를 펼쳐 나간 김수현 극본의 MBC드라마 ‘새 엄마’ 같은 경우에는 전혀 다른 시어머니 모습을 보였다. 케케묵은 고부갈등이나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를 동등한 인간, 동등한 가족 이상으로 소중해 하고 존중하는 시어머니 상(정혜선)을 만들어냈다. 이 역시 당시로서는 연속극 사상 가장 길게 방송한 장수드라마로, 굳이 고부갈등이나 고압적인 시어머니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드라마를 본다는 또 다른 측면의 리얼리티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구조상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연속극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부관계가 아닌 종래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침소봉대 하거나 확대시켜 재미를 보는 드라마가 여전히 득세하거나 끊이지 않았다. 특히 남지연 극본의 일련의 드라마 ‘결혼행진곡’ 등에서는 부정적 시어머니와 고부갈등을 확대재생산 또는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바람에 급기야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서는 ‘갈대’라는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방송정지를 먹고 잘리기까지 한다. 방송중단의 이유는 부정적 고부갈등을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후로 고부간의 갈등이나 시어머니의 횡포가 드라마에서 사라졌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거의 모든 연속극에서 중심 또는 부분적으로 ‘갑질’하는 시어머니와 고부간의 긴장관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충 한 세기가 바뀌는 2000년을 기점으로 그 이후부터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역전(逆轉)이 되는 현상이 서서히 드라마 속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부갈등과 시어머니와의 이야기는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지만 그 위상이 세상 따라 변해서 이제는 오히려 며느리가 주도권을 쥐는 상황으로 변모하고 있다. 며느리가 불편해 하는 존재로서의 시어머니,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 때문에 생기거나 며느리가 불러일으키는 고부갈등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 관계없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대등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사실상 지배하는 구조로 드라마 속 고부관계 마케팅은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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