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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62)-1세대 드라마작가 한운사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62)-1세대 드라마작가 한운사
내용 ‘우리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1세대 드라마작가 한운사(韓雲史)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라는 곳에 가면 그다지 크지 않은 2층집 기념관이 하나 있다. 앞마당에는 주차장 겸 벤치가 놓여있고, 주변은 조그만 시골동네로 여기저기 농사짓는 논밭이 보인다. 기념관 정면 바깥벽에는 이 기념관의 주인공인 작가 한운사의 간단한 약력과 함께 그의 얼굴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여기가 작가 한운사의 기념관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벽에 커다란 작가의 사진을 배경으로 살아온 발자취 위주의 그의 일생을 정리한 작가연보가 눈에 띤다. 옆방 다목적실에는 벽면 높이 빙 돌아가면서 그의 작품 가운데 영화와 드라마의 스틸사진들이 배치되어 있다. ‘남과 북’ ‘빨간마후라’ ‘잘 돼 갑니다’ ‘꿈나무’ ‘서울이여 안녕’ ‘현해탄은 알고 있다’ ‘족보’ ‘나루터 3대’ ‘아버지와 아들’....한 결 같이 그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마들이다. 작가 한운사에 대해 잊고 있던 사람들도 이쯤에서 작품의 명성으로 그의 존재를 눈치 채게 된다. 그는 기본적으로 방송드라마작가였다. 한 때 드라마가 잘 나가자 신문이나 잡지의 연재소설도 쓰고 영화시나리오도 썼지만, 원래 그는 라디오 시절부터 그 시대의 정서를 대변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드라마작가로 유명했다. 한때 그가 쓰는 드라마는 모두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를 따라오는 후배들이 한 계보를 형성할 만큼 오늘날 대중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TV드라마작가 1세대였고, 사실상 한국방송드라마의 틀을 만든 드라마작가의 대부 격인 존재였다. 기념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쪽 벽에는 그가 쓴 숱한 드라마의 제목이 열거돼 있고, 또 다른 벽에는 그가 교분을 가졌던 사람들과의 사진들이 방송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걸려 있다.


드라마의 멋, 향기와 낭만을 그린 작가
드라마작가의 원조 한운사를 아십니까?


그리고는 2층을 올라서자마자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번엔 순전히 작품연보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와 2009년 8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의 작품 활동이 연대별로 정리되어 있다. 드라마, 소설, 영화, 그리고 전기(傳記)문학이라 할 수 있는 것들까지 한 시대 그가 차지했던 문학적 가치를 한 군데 모아놓았다. 그가 어떤 작가정신으로 드라마와 소설, 그리고 영화를 써왔는지 알 수 있도록 모든 작품을 총망라해 분석해놓았다. 시대성을 반영하고 사회를 꿰뚫는 남성드라마를 주로 썼다고나 할까. 우선 그 작품 수와 분량에 놀란다. 대한민국 곳곳에 세워진 소설가나 시인들의 문학관이니 작가기념관이니 하는 곳에 가보면 그 빈약한 내용과 보잘 것 없는 작품 활동에 자못 놀라기 일쑤인데, 이 ‘한운사기념관’은 그들과 전혀 다르게 내용이 풍부하고 알차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그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리고 무릇 방송작가란 그렇게도 많은 양의 원고를 쓴다는 것이 경이롭게 와 닿고, 그가 쓴 드라마마다, 소설마다, 영화마다 우리 뇌리에 남아있는 불후의 명작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또한 놀랍다. 그가 쓴 드라마들은 하나 같이 휴머니즘과 낭만이 넘쳤다. 그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낸 일제말기 학병으로 끌려가 겪었던 이야기 ‘현해탄은 알고 있다’ ‘아로운 전(傳)’ 등을 필두로 한국전쟁과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하얀 까마귀’와 ‘하베이촌의 손님’(머나먼 아메리카), 그리고 피난지 부산의 생활을 주 소재로 한 ‘아낌없이 주련다’와 한국최초의 텔레비전일일연속극 ‘눈이 내리는데’와 ‘남과 북’ ‘빨간 마후라’ 등이 모두 육이오전쟁과 관련이 있다. ‘빨간 마후라’와 ‘서울이여 안녕’ 등은 주제가로도 유명하지만, ‘남과 북’의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마치 이산가족 찾기 방송의 테마음악처럼 알려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레만호에 지다’ ‘이 생명 다하도록’ 등도 육이오와 연관이 있는 드라마들이었으며 영화들이었다. 작가 한운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문학의 한 장르로 업그레이드 시킨 주역이었다. 당시로서는 방송이라는 뉴미디어에 사람들의 정서를 격조 있게 심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철학과 향기와 아름다움을 로맨틱하게 그려가는 대가의 면모를 보였다. 그의 드라마는 작품성이 뛰어나 그 어떤 문학 장르에서도 ‘한운사 드라마’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사람들은 그가 쓰는 드라마에 존중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잘 돼 갑니다’는 자유당정권의 이승만대통령을 내세운 최초의 정치드라마였고, 멜로드라마 ‘오늘은 왕’과 ‘고독한 길’ ‘아빠의 얼굴’에 이어 청소년들에 대한 사랑을 담아 ‘꿈나무’와 ‘가슴을 펴라’를 썼다.


시대와 사회를 관통하는 남성드라마
그는 의미 있는 드라마를 꿈꾸었다


‘꿈나무’라는 드라마제목은 그 후로 청소년을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기념관 안의 작품연보를 훑어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작품의 육필원고와 대본, 그리고 사진들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고, 유리로 되어 있는 가운데 뻥 뚫린 소나무공간에는 이른바 ‘한운사 어록’이랄 수 있는 작가가 남긴 촌철살인 하는 주옥같은 말들이 짧게, 그러나 인상 깊게 새겨져 있다. 한운사의 문장(대사)은 유난히 짧고 쉬우면서 힘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낭만이 넘쳤다. 멋과 향기가 있는 드라마들이었고, 늘 새로운 캐릭터의 인간상들이 등장했다. 결코 적잖은 신문기고들도 원본 또는 복사본으로 남았다. 작가의 유고(遺稿)와 원고지에 휘갈겨 쓴 방언(放言) 형태의 글들도 한 코너를 장식한다. 그가 남긴 저서와 작품집들, 여러 가지 유품들과 육필로 쓴 원고가 그의 집필실 안에 천장까지 쌓여 있다. 그가 드라마를 쓰던 시대는 작가가 절대적으로 존중받던 시대였다. 토씨 하나도 누가 손대면 안 될 정도로 긍지와 자부심으로 창작을 했다. 훗날 후배들이 연출과 토론하고 마치 창작력을 합작 또는 공유하는 듯, 내용보다는 기술을 앞세우는 ‘드라마 공학(工學)’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오로지 작가였다. 자신의 창작과 작가의식을 테마로 내걸고, 거기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바라며 드라마의 향기를 내뿜던 우리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였다. 그는 드라마가 인간본질을 파고드는 것이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며, 멋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원조 격이다. “한 인생이 그가 쓴 드라마에 만천하가 보내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쓰러졌다. 쓴다는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된 것이다. 지나가는 길손들아 옷깃을 여미고, 산에서 사는 새들아 이곳에 와 노래하라.” 1970년대 초 국민드라마 ‘아씨’의 작가 임희재의 묘비에 작가 한운사가 직접 쓴 비문처럼, 언젠가 이 부근을 지나는 길이 있으면 이 최초의 방송드라마작가 기념관을 한번쯤 둘러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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