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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나는 바담풍이지만 너는 바람풍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나는 바담풍이지만 너는 바람풍
내용 솔직한 반성문을 쓰자면 나는 친구를 많이 가질 수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우선 나는 나 자신을 따듯한 사람이라고 믿는데 남들은 나를 차갑게 보는 모양이고 나만큼 보드라운 사람이 어디 있나 싶은데 딱딱하고 빽빽하게 느껴져 아주아주 불편한가 보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많은 이들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인간의 눈은 다른 사람은 날카롭게 보면서 자기 자신을 보는데는 완전 맹인이니까.

우리 형제들을 모두 나와 닮은 성격이니 유전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싫은 감정은 즉각 일초의 여과도 없이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좋은 표현은 쑥스러워 생략해 치우는 결함이 있다.
이것을 거꾸로 뒤집어 좋다는 표현은 즉각적으로, 싫은 표현은 상대에 대한 배려의 여과를 거쳐 부드럽게 바꿔야 하는 걸 잘 안다.

잘 알고 노력하는데도 아직이다.

' 수현씨,저녁먹으러 안 나올래? '
' 아 싫어요. 귀찮아. '
세월의 도움으로 가까워진 이들은 이제는 그 버릇조차도 김수현의 일부로 받아들여주기는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즉각 거절식이 상당히 당황스럽고 정나미가 떨어지는가 보다.

삼십여년전 문화방송에서 데뷰작 ' 저 눈밭에 사슴이 ' 를 심사하셨고 당선 뒤에 원래의 제목을 ' 저 눈밭에 사슴이 ' 로 바꿔까지 주셨던 김포천 선생님과 어느 날 일인데, 내용이 뭐였는지는 까먹었고,
'수현씨, 그렇게 상대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싫어요 하지 말고 좀 생각해 보겠어요 하고 집에 갔다가 며칠 뒤에 싫어요 해도 되잖아 잉? '
걱정스럽게 물끄러미 보면서 그러셨었다.
' 집에 가 생각할 것도 없이 싫은데요 머. 생각해봐두 싫기는 마찬가질 거구요. '
' 글세 그렇더라도 열심히 생각해봤던 척이라두 해 주는 게 말을 한 상대에 대한 대접 아니겠소? 집에 가 며칠 생각해 보시오 잉 '
' 싫어요. 생각해 보나마나에요. '
그때 정나미 떨어져 하시던 그 어른 얼굴이 지금도 서언한 걸 보면 나도 그게 그리 잘하는 짓이라고는 생각 안했던 것 같다.
이 나쁜 버릇은 반드시 고쳐야 하는데 아직도 못 고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나는 바담풍이지만 아이야.
너는 바람풍 하기 바란다.

네 주변에 있는 너와 연결된 모든 사람에 대해서 늘 따듯하고 친절한 관심을 주면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사람들 하나하나의 평생 친구로 남을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라. 그럴 작정으로 살아도 진정한 의미의 평생 친구는 그리 많아지지 않는다.

내 경우에도 많은 친구들이 다가왔다가 멀어져 가고 내가 죽으면 조금쯤 허전해하고 때때로 그리워해 줄 친구들이 글쎄, 몇이나 될까.
다가왔다가 멀어져 간 친구들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인간적으로 매력이 없었든 그들에게 무가치했든 길게 친구해 주기가 피곤했든 어쨌든 나의 부족함이다.

나는 실패작이지만
아이야.
너는 실패작이 안되기를 바란다.

비슷하게는 생겼어도 정말 똑같이 생긴 사람은 있을 수 없듯이 사람의 속도 모두 다 다르다. 일란성 쌍동이라 할지라도 가족은 알아볼 수 있는 다른 점이 반드시 있고 성격도 똑같지는 않다.
우리는 각자 다르다.
각자 다른 모양새로 다른 생각과 다른 가치관과 다른 성격과 다른 판단과 다른 방법들로 살면서 각자 자기가 옳다고 믿고 산다.

아이야.
다른 사람의 너와 다른 점에 대해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지말고 가능한한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네가 너그러워야 상대도 너한테 너그러워 준다.
다른 사람의 너와 다른 점이 너를 힘들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의 다른 점은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마라.

시비가 많으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점 찍히고-바로 나-그럼 많은 사람한테 경원당하고 기피당하는 불유쾌한 사람이 되고 만다.
들꽃들 조차도 다 각기 다른 꽃을 피우면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 않니.
너와 같지 않음에 골내지 마라.
모두가 다 너와 같다면 무료하고 따분해서 어찌 살래.

상대한테 네가 버려진 것 같더라도 너는 아직 상대를 친구로 여기고 있거든 상대가 알아주거나 몰라주거나 그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라.
생색낼 것도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느 순간 정말 그 일이 힘들어지면 그때 상대의 친구에서 그냥 조용히 물러서면 된다.

어치피 끝까지 다함께는 불가능하다.
멀어져간 친구에게 나쁜 감정은 절대 갖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렴.
그저 단순하게 ' 다름 '의 차이가 너무 커서라고, 인연이 거기까지 뿐이었다고 생각하렴.

나는 바담풍이지만
아이야 너는 바람풍 해주기 바란다.
너그러움도 아름다움 중에 하나라고 나는 믿는다.

아아 그런데 이런 얘기가 왜 이리 공허하냐.
마치 도둑이 도둑은 나쁜 짓이라 말하는 것처럼.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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