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구설 속에서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구설 속에서
내용 나를 ' 어머니 ' 라는 호칭으로 부르면서 일년 내 김치도 담아 나르고 국도 끓여 나르는 ' 무당 ' 아이가-그 아이는 스스로 자신을 ' 무당 ' 이라 부른다-맨 처음에 나를 보았을 때 입 열어 한 첫마디가 ' 고아원 원장 팔짜에요 ' 였다.
그리고 ' 구설 ' 조심하라는 말이 뒤따랐었다.
구설이야 일을 시작하고 불과 몇 년 안돼서부터 늘상 끼고 사는 셈이니 나는 ' 구설 ' 에 대해서는 졸업이 된 사람이다.

이제는 거의 딸처럼 되어서 그 아이는 누군가가 내가 신경 쓸 일을 만들면 몹시 싫어하고, 나는 그 아이가 신기한 꿈을 꾸거나-멀쩡한 누군가가 죽는 꿈 같은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진짜 황당하게 저 세상으로 이사를 간다-할 때면 ' 어엉 그러니까 니가 무당은 맞구나 ' 할 정도로 허물이 없다.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거나 보았던 ' 무당 ' 의 모양새가 아닌 그 아이는 40 킬로그람의 체중에 아주 예뻐서 제대로 입고 나서면 ' 아이고 이쁜 것 ' 할 정도로 모양새가 좋고, 머리도 좋고 예민하고 마음씨도 어여쁘다.

아주 최근에는 그 아이가 어떤 회사의 ' 대표이사 ' 로 뛰어 다니느라 바빠서 자주 못 보는데 그래도 무당은 무당이라서 며칠 전에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꿈얘기를 하면서 내가 챙기는 누군가에 대한 조언을 해 그 쪽으로 전달해 주었다.

2004년은 ' 쓰레기 파문 ' 으로 구설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잠시 조용했다가는 1월 하순부터 작가협회 이사장 선출 선거운동원으로 뛰면서 ' 이 소리 저 소리 ' 가 돌아다니게 만들었고, 게다가 이승연 문제까지 덧붙여졌었다.
식구들은 천진난만한 내가 부르르르 해서 또 이승연 문제에 대해 ' 안티 이승연 ' 에 ' 안티 김수현 ' 들을 자극하는 말을 할까봐 그들이 폭탄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니 절대로 입도 뻥끗하지 말라고 내 입을 아예 꿰매버렸다. 톡톡톡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내가 또 일 저지르는 거 아닌가 기겁을 해서 딴방에서 달려오곤 했다.

폭탄이 무서워서는 아니고 비겁해서는 더구나 아니었고, 그 상황에 내가 입을 여는 것이 결코 이승연에게 이롭지 않다는 주장에 동의했는데, 실은 처음부터 나는 그 ' 단죄 ' 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 승연아 잘했다 ' 소리를 할 문제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거의 죽일듯이 난리 벌거지를 치면서 이승연을 때려잡고 있는데 나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 승연아 너 잘못했어 ' 는 결단코 안하고 싶었다.
사적으로 그녀에게 얼마나 독하고 심하게 야단을 쳤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보는 누군가가 착한 심성을 갖고 있다고 여전히 믿을 수 있는 한은 설혹 그 사람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실수를 했대도, 무섭고 독하게 야단을 치기는 하지만 사람 자체를 버리지는 않는다.

방송작가 협회 이사장 선거가 끝나고 벌써 오늘이 아흐레짼데 그 동안 나는 한 사흘쯤 누군가 협회 회원들이 어딘가에 써 올린 ' 김수현 비난 ' 글들을 줄줄이 장장 읽어내려가는 꿈을 꾸었다.

원래가 나는 대부분의 회원들이나 방송관계자들은 나를 거북해 하거나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 깃발들고 나선 것으로 더더욱 인심을 잃지는 않을까 같은 걱정은 하지도 않았는데, 도무지 무슨 까닭으로 그런 꿈들이 꾸어졌는지를 모르겠다.

다 까먹어서 지금 건져낼 대목은 별로 없는데
1. 할머니들이 조용히 가만 있지 뭐하러 나와 설쳤냐. 흉하다.2. 김수현이 미려한 문체로 써보낸 편지가 약발을 받았다 생각하느냐 천만에다. 3. 오늘의 협회를 있게 한 김수현의 공은 알지만 이번 선거에 3. 뛰어나온 건 ' 웃기는 일 '이다.4. 만약 논공행상으로 김수현이 협회 집행부에 들어온다든지 한다면 4. 또한 그것도 '웃기는 일 ' 이다.
대체로 이런 내용들이었다.
나는 이것을 그냥 내 마음대로 선거 후 여기저기서 누군가들이 얘기하고 있는 ' 구설 ' 이 꿈의 형태로 전달돼 온 것이라 생각해 버렸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 구설 ' 이기 때문이다.

꿈인데도 불구하고 좀 불쾌했는데, 그것은 그 글들이 나를 자기들만큼, 아니면 자기들만큼도 못되는 모자란 늙은이로 치부한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꿈이 아니라 생시의 실제 상황이다.
선거 바로 다음 날 박정란 새이사장이 수고한 이들한테 저녁을 사는 자리에서 내가, 새이사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논공행상은 없는 것으로 하자는 말을 했었다.
그 자리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 뒤에 ' 논공행상은 당연하다 ' 는 주장으로 자기들을 이용만하고 버렸다는 둥, 자기들이 실미도가 됐다는 둥, 은혜를 모른다는 둥으로 새이사장을 괴롭게 만드는 이들이 있어 ' 작가는 역시 작가다 ' 라는 내 말을 취소해야 할 판이다.

만약 그들이 선거에 참여해서 이겼을 경우 집행부에 들어오는 것을 목표한 이들인 줄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그 일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경위는 다음과 같다.
1. 선거가 아직도 먼 어느날 무슨 볼일인가로 박정란 씨가 우리집에 왔는데 ' 야 ***선생님이 날더러 이사장 선거에 출마하랜다. ' 했다. 일초도 안 걸린 나의 대답은' 너 절대로 하지 마. 그거 하는 거 아니야. 가문에 영광일 것도 없고 명예일 것도 없고 보람도 없고 마지막은 씁쓸할 거고, 그거하면 너 바보야. 하지 마. 너 그거 하면 나 너랑 안 놀아. ' 였다.' 야 내가 미쳤니? 그걸하게. 나 싫어. 싫다 소리하는데 얘는 '
박정란 작가는 눈을 째지게 흘겼다. 우리는 뉴질랜드 여행이 잡혀 있었다.
2. 상당한 날들이 흘러가고 어느 날 후배들이 집에 오겠대서 만났다. 그때 처음 이사장 임기가 4년으로, 또 얼마든지 연임할 수 있도록 정관이 고쳐져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3. ' 야 너 이사장 나와야겠다 '박정란 작가는 자기가 알고 있는 욕은 모조리 동원해서 펄펄 뛰며 악을악을 썼다. 그녀가 결심하는데까지 상당한 날이 흘렀다.
4. 그리고 우리는 이겼다.
이용 당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 논공행상은 당연한 일이다 ' 라고 주장하는 것은, 뒤집어서 그들이 집행부로 들어오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을 이용한 것이 된다.

심정적으로 그들을 안쓰러워하는 한 후배가 전화에서 네덕에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 김수현이때매 안 찍겠다는 회원도 있었습니다 선배님. '했다.
' 물론이죠 그럼요. 그런 회원이 어디 한둘이겠어요. 나 다 알고 있어요. 협회가 언제까지 김수현 그늘에서 못벗어나야하느냐 화내는 회원 무리도 있는 거 나 다 알아요. ' 로 끝내버렸는데, 나는 지난 6년 동안 심정적으로 협회 회원이 아니었었다.

구설 중에 많은 부분이 앞으로 협회 일에 김수현이 상당한 관여를 할 것이다는 쓸데없는 우려일 것으로 추측하는데,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새 이사장의 친구이며, 그녀가 나 때문에 시시한 소리들을 듣기를 원하지 않으며, 진심으로 그녀가 한 단체장으로 어여쁘게 빛나기를 바란다.

이미 며칠 전에 상임이사에게 통고했다.
' 협회 일로 나한테 전화하지 마라. 김수현은 없다. 잊어 다오. 열심히 이사장을 보필해라. '
상임이사는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 네 알겠습니다. '
했고 그날 밤 박정란이사장한테 똑같은 말을 했더니, 그녀는
' 야 싫다는 사람 끌어내 벌판에 세워놓고 '
어쩌고저쩌고 화를 내고 나는
' 미안햐.미안햐.진짜진짜 미안햐. '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 眞意를 그녀는 알 것이다.

그저께, 뜻을 같이 해 수고해준 후배 몇을 모아 점심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 후배가 말했다.
' 두 선생님이 뛰어나오신 걸보구요, 이 선생님들이 뛰어나오셨을 땐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 그러실만한 어떤 문제가 있는 거다, 그렇게들 많이 생각하더라구요. '
아하, 그랬구나.
그래서 표 차이가 그렇게 많았구나.

우리들이 접촉하지 못했던 회원들의 호응까지 얻어, 어쩌면 그것이 '기분좋은 승리 ' 를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박정란 작가에게 그 말을 전했고 그녀도 기뻐했다.

아아, 다행이다.
그리 크게 잘못살지는 않았나보다.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