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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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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하나는 껐고
내용 8월 10일로 약속했던 특집 원고를 14일 오후에 내 보냈다.
나흘의 차질은 하루는 친구들과 노느라 날려 보내고 이 다음날을 친구와 논 피로 후유증으로 날리고 이틀은 무엇때문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외출할 일이 있었다.

여름에 일하는 걸 질색팔색을 하는 사람이라 ' 나는 여름에 일 안해요 ' 를 공언해 놓고 있으면서도 한심하게 ' 여름 일 안하기 ' 를 제대로 고수한 적이 별반 없다.

94년 이래 혹독한 더위라는 기상예보대로 우리 집에서도 에어컨을 일주일쯤 돌렸을 만큼 이 여름-딱 특집 만드는 동안-은 상당했는데 그래도 악몽의 94년도 여름에 비하면 약과였다.

94년도 여름은 ' 작별 ' 을 쓰는 중이었는데 78년도에 지었던 이 집을 완전히 들어내고 터파기부터 다시 시작해 집을 짓느라고 저 아래 남의 집에 잠깐 전세살이를 했었다.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더위, 아래 층이 제본손가 뭔가여서 새벽부터 쿠웅쿵 무거운 것 내던지는 것같은 소리. 골목의 아이들 소리, 때로는 악을악을 쓰는 싸우는 소리, 게다가 임시로 때려 넣은 어수산란한 짐들 속에서 ' 아아 악몽이다 ' 소리를 푸우푸우 내뱉으며 숨차게 보낸 여름이었다.

얼마나 독한 더위였는지 ' 작별 ' 을 찍으면서 한진희 씨와 막내 딸이었나 둘째 유호정이었나가 같이 눈이 익어버려 버얼겋게 하고 리딩에 나온 일도 있었다.
얼마나 혼이 났으면 그 여름 연도숫자를 내가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 지겨워 전세금도 깔아 놓은채 미처 유리도 안끼워진 이 집으로 허둥지둥 이사부터 해 치웠었다.

이 곳은 높은 데다 숲이 좋아 한 여름 어지간하면 에어컨이 필요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끽해봤자 이삼일 잠깐씩 에어컨 도움을 받았는가 하면 여름이 끝나는데 그러는 것도 몇년에 한 해 꼴이다.

마당에 수국 이파리가 더위에 있는대로 추욱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만 내 머리가 몽롱해지는 느낌이었다.

' 이렇게 더운데 무슨 일이야 일이 '
투덜거리면서 하루 2페이지도 메꾸고 3페이지도 메꾸고, 끝이 나기는 날려나 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좌우간 끝은 냈다.

토요일 오후에 프린트 사로 원고 보내고 일요일에 정을영 감독, 삼화프러덕션 제작본부장과 점심 먹으며 캐스팅 얘기를 하고 어제는 껌 사러 시장 잠깐 다녀왔다가 식구와 동네 나가 저녁을 먹었는데 나가면서 바닥이 너무 차다고 식구가 잠깐 보일러를 넣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어제까지 푹푹찌던 날씨가 긴팔 셔츠를 입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밥먹고 들어와 보일러 끄고 있는데 그때부터 창을 하나하나 닫기 시작하면서 정말 웃긴다겠지만 하루 상관에 달라진 날씨가 잠시 아주 묘하게 불쾌했다.

뭐랄까.
하루 상관에 전혀 다른 얼굴을 하는 인간을 보는 기분이랄까.
아니면 글쎄. 모든 것이 이렇게 ' 순간 ' 이라는 새삼스러운 허탈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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