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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미안해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미안해
내용 작년에 만개한 넝쿨 장미 하루 보면서 친구들과 보리밥 해먹고 하루 다녀온 후로 시골집은 거의 방치 되다시피 했었다.
금년에는 용케 벚꽃은 안 놓치고 하루 자고 왔었고 지난주에 하루 몇시간 들렸는데 넝쿨 장미는 이미 다 져가는 판국이라 늙은 여인처럼 추레해 집 주인의 탄성 한번 못듣고 져가는 꽃들이 가엽고 미안해 짠했었다.

시골집을 하나 가져놔야지 하는 꿈을 1989년에 이루었었다.
그 때는 설마 지금 이 나이까지 일에 붙잡혀 있을 걸로는 생각안했었고 60전에 일 끝내고 그때부터는 시골집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수 있을 줄 알았었다.

문득 손가락 꼽아보니 시골집을 만든지가 17년 째였다.
지어놓고 삼사년 제대로 즐겼다고 할까.
그 때는 집에 붙박이 아줌마도 있었고 아우네 가족도 한집살이라 서울 집 비우고 시골가 틀어박혀 있는 것이 가능했었다.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청주 아우들이 번갈아 들락거려 주기는 하지만 내 시골집과 관리 아저씨는 대체로 쓸쓸하고 적막해하면서 거기 그곳에 거의 방치돼 있는 상태다.
어쩌다가 한번 들릴라치면 집에 들어가면서 소리내어
' 미안해 미안해. 이해해줘. 골내지 마. 내가 오기가 힘들어. 미안해 '
집한테 사과하는데, 나와 더불어 늙어가고 있는 동수 아저씨도 안쓰럽고 집도 안쓰럽고 참 복잡한 마음이 된다.

가을이면 만 17살이 되는 시골집은 벽도 바닥도 새단장을 원하고 있고 바깥도 손을 좀 봐야하는데, 금년 초에 평창동 집을 11년만에 손보고 이어서 시골집까지 손을 보기에는 기운이 딸린다.
어쩌나어쩌나. 가을 쯤에 한번 또 뒤집어 보나..

눈비 올 때는 한폭의 산수화가 되고 가을이면 단풍이 곱고 봄이면 꽃이 다투어 피는 내 시골집은 마치 역마살을 감당못해 타관으로만 떠도는 남편 기다리면서 늙어가는 한많은 여인네 같다.

하루 진종일 책이나 보면서 하루 진종일 한 마디도 안하고 정말 혼자서 고요하게 살다 죽었으면 하는 바램이 그냥 바램만으로 끝난다면 아아, 얼마나 억울할까.

십여년 전에 옮겨심은, 그때 이미 꽤 몸통이 굵었던 벚나무는 이제 해마다 더더욱 흐드러지게 꽃이 핀다.
벚꽃 아래서 커피 마시고 싶어 심은 건데, 심은 사람 대신 지나던 사람들이 심심찮게 들어와 사진 찍고 꽃구경하고 간단다.
그것도 좋은 일이죠 뭐. 그런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그냥 그러면서 나는 뭔지 모르게 늘 얼마쯤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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