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소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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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문득 손가락 꼽아 보았습니다.
당선한 1968년부터 꼽아보니 2006년 내년이면 방송작가로 이름 달고 살아온 세월이 서른아홉 해 째가 됩니다. 내 나이의 반을 훨씬 넘어선 햇수니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이쁘지 않은 성격으로 다니던 잡지사에서도 잘리고 먹고 살 길 막연해서 보자기 쓰고 밤길 나서듯 무작정 써서 투고했던 것에 당선이라는 행운이 따라 주었고, 이어서 정소영 감독님께 불림을 받아 시나리오 몇 편을 쓰면서 한두 해는 방송작가 아닌 시나리오 작가로 먹고 살았습니다. 이 순간 왜 그 당시 어느 해 겨울, 어린 딸아이를 재워놓고 밤새워 시나리오 한편을 탈고해 들고 나오던 북창동 여관 골목의 눈길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찬사도 많이 받았고 찬사만큼 욕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환갑 나이를 훌쩍 넘어 아직 이 바닥에 버티고 서서 이것이 욕인지 영광인지 헷갈려하며 살고 있습니다. 협회에서 ' 작가상 ' 을 준다고 하네요. 한번 받았으면 됐지 무슨 두 번 씩이나 받느냐고 사양했습니다만, 이렇게 됐습니다. 이사장이 따따부따 일깨워 줘 두말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 작가상 ' 을 만들 때 오직 작품만으로 심사하자고 했었습니다. 그러니 한 작가가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받을 수 있고 바로 어제 데뷔한 신인작가도 받을 수 있는 상을 만들자고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협회를 맡았을 때 만든 상을 두 번이나 받는 것이 솔직히 그리 편치는 않습니다. 나도 한 때는 선배님들께 걱정스러운 후배작가였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는 요즈음 드라마들을 보면서 후배 작가들을 걱정하는 선배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리고 시작 전부터 ' 심심하고 졸리게 쓸 것이다 ' 전제했던 ' 부모님전 상서 ' 였고 그렇게 썼습니다. 더 강력한 화학비료, 더 결정적인 조미료. 경쟁하듯 더!더!더!를 찾고 있는 듯한 일부 후배 작가들이 ' 부모님전 상서 ' 를 보고 뭔가 느껴 주기를 바랬고, ' 더더더 드라마 ' 에 외면한 시청자들이-그들이 비록 한 웅큼밖에 안 된다 하더라도-편안하고 기분좋게 봐주기를 기대했었습니다. 후배들에 대한 바램은 헛된 것이었던 듯 싶습니다만, 시청자들에 대한 기대는 보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시청률이라는 성적표를 포기하고 시작했던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안교감 집 식구들의 이야기에 생명을 넣어준 정을영 감독과 연기자 여러분, 그리고 모든 스탭분들께 감사합니다. ' 부모님전 상서 ' 는 끝내고 나서의 ' 뒷맛 ' 이 꽤 괜찮았던 몇 개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한창 나이였을 때는 쉬흔살 근처까지만 일하고 그 뒤는 책이나 보면서 한가하게 지낼 생각이었습니다만 아직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언제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는 교만한 소리 안 합니다. 살다보면 꼭 하고싶은 대로만 하면서 살수는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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