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세월 | |
내용 |
아주 최근에 젊은 날, 꽤 단정한 미남자였던 어떤 소설가 양반이 티비에 비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 아이고머니나 ' 무릎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냉혹한 세월이 망가뜨리는 얼굴들에 대한 씁쓸함이야 연예인들한테서 날마다라도 씹어 삼킬 수 있는 일인데 유독 그 양반한테서 더 충격을 받은 것은 아마도 그가 연예인처럼 노출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 차암 세월이라는 게...... ' 눈은 짜부러들고 코는 길어지고 입은 헬렐레해지고 뺨은 패이고 사람이 늙으면 모두 다같이 궁상맞고 침울한 하회탈 얼굴이 된다. 애당초 더럽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추한 것은 없고 모두가 다 내 마음의 어리석음이라 하지만, 그 경지까지야 어림 반푼어치도 없고 그냥 나는 이대로 살다 죽을란다. 세월의 심통은 잔인하다. 파바로티가 타계했다. 마침 불과 사나흘 전에 2005년 그리스 공연했던 디비디를 보면서 ' 역시 저 양반 소리는 시작하면서 벌써 소름이 돋게 만들잖아. ' 했던 터라서였는지 내 가족을 빼고 지구상 누구의 부음보다도 마음이 섭섭했다. 지금도 아직 섭섭한 중이다. 세월은 우리 육체를 망가트리는 심통을 부리다가는 어느 순간 가차없이 뒷덜미 나꿔채 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끌어내 영원히 폐기처분해 버린다.. 아아 그래. 좋다좋아. 그것이 세월이고 그것이 유한한 생명의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니 뭐 좋다구. 몇년 전부턴가 나보다 십년이나 이십년 쯤 젊은이들이거나 개중에는 간혹 나하고 같은 나이거나 혹은 나보다도 년배의 사람들로 부터 ' 모쪼록 건강관리 잘해서 오래오래 좋은 작품 써라 ' 는 말을 꽤 자주 듣는다. 그이들이야 혹시 진심으로 내가 오래 살면서 더 많이 일하기를 바래서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말에서 내가 건지는 건 그저 ' 아아 나한테 남은 세월이 얼마 안된다는 거구나 ' 뿐이다. ' 좋은 작품 ' 운운은 그냥 인사치례고 늙은 사람한테 하는 ' 만수무강하세요 ' 정도..아하하하하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가 ' 선생님 ' 하면서 내 얼굴을 보면 내가 먼저 잽싸게 ' 뭐 오래오래 건강하라구? 알았어 그래 볼게 ' 해버리고 만다. 어느 새 그런 얘기를 풀코스 식사 마지막 디저트까지 먹고 난 다음 추가 디저트처럼 들어야 하는 나이가 된 건지 진심으로 실감이 안난다. 그런가. 진실로 내가 그 지점에까지 이르러 있는가. 그렇다면 어서어서 이사갈 준비와 정리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나는 너무 철없이 아직 힐랄라 힐릴리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저절로 입이 푸울쑥 나와 돼지 주둥이처럼 내밀어지고 미간이 찌푸러진다. ' 선생님 모쪼록... ' 나는 아직 잘 실감이 안나는데 다른 이들은 나한테서 냉혹한 세월을 보고 있는가보다. 으하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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