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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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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 인문학(22)-이서구(1)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22)-이서구(1)
내용 TV사극 ‘장희빈’의 스토리 발굴하고,
그 제1탄으로 TV일일사극의 미래를 열었다

그러니까 TV드라마에 있어서의 1971년은 이미 TBC-TV의 ‘아씨’가 온 나라를 한번 휩쓸고 간 뒤였다. TV드라마, 그것도 일일연속극이라는 것이 세상을 확 뒤집어놓다시피 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제 텔레비전드라마는 당당히 대중문화의 실질적인 파워로 등장했다. 당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나타나 계속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미디어의 총아가 되었다. 무슨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살아가는 현실과 일상의 이야기도 좋지만 ‘아씨’의 성공으로 지나간 세월, 살아온 시대의 이야기도 드라마 거리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왕조 시절이나 그 이전의 역사이야기는 어떨까. TV드라마보다 훨씬 앞서 나온 라디오드라마를 복기(復棋)해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라디오드라마에서는 현대물은 물론 사극이 얼마나 인기를 끌었던가. 쉽게 말해서 ‘장희빈’과 ‘강화도령’ ‘안시성의 꽃송이’ ‘연산군’ 등이 얼마나 인기였던가. 그렇다면 이제는 TV드라마도 본격적인 연속사극에 도전해 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물론 그 이전의 TV드라마에서도 주간연속사극은 있었다. 그러나 구수한 이야기 중심의 일일연속사극은 사실상 없었다. 이것을 당시 MBC-TV가 깰 생각을 했다. 이미 1960년대 중 후반부터 주로 TBC-TV에서 ‘민며느리’ ‘정경부인’ ‘상궁나인’ ‘수청기생’ ‘공주며느리’ ‘후취댁’ ‘언제나 오실랑고’ ‘팔판동 새아씨’ ‘다방골 알부자’ ‘애기며느리’ ‘사돈댁’ ‘넉살도 좋을시고’ 등의 주간연속극을 쓴 작가 이서구(李瑞求)에게 MBC는 드디어 매일 나가는 일일연속사극을 맡긴다.

사극의 대부 이서구가 찾아낸 ‘장희빈이야기’

그때까지 MBC로서는 개국 이후 이렇다 할 히트드라마가 없어 늘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 고민을 사극으로 한번 풀어볼 작정을 한 것이다. ‘장희빈’으로 가자. 일찍이 라디오에서도 히트해 그 주제가까지 유행될 정도였으니 TV에서도 한번 쯤 해 볼만 한 아이템이 아닐까. 라디오드라마로 ‘장희빈’을 쓴 이서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단 한 가지 께름칙한 것은 그때 이미 작가 이서구의 나이는 고령이라는 사실이었다. 드디어 1971년 7월 회심의 카드 일일연속 TV사극 ‘장희빈’은 막을 올렸다. 대단한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일연속사극 ‘장희빈’이 나가는 시간이면 특히 주부층의 여성시청자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TV앞에 앉았다. 날로 악독해지는 장희빈의 욕망에 찬 캐릭터를 놓고 혀를 끌끌 차면서, 때로는 그녀의 기구한 운명과 처지를 동정하면서 열심히들 보고 있었다. 사극으로는 처음 보는 선풍적인 인기였다. 이것이 TV드라마 사상 첫 번째 ‘장희빈’이다. 그러니까 이 첫 번째 ‘장희빈’에 출연한 제1대 장희빈은 배우 윤여정이었다. 그 밖에 박근형, 양정화, 김용림, 김금지, 정규택 등이 출연해 열연했고, 이 드라마 한편으로 MBC-TV는 슬슬 기력을 회복했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았다. TV사극으로서의 ‘장희빈’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 후로도 사극의 단골소재가 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희빈’이다. ‘장희빈’이야기가 텔레비전사극으로 등장할 때마다 다들 그때마다 마치 새로운 버전, 다른 버전인 것처럼 했다.사극 사상 가장 많이, 자주 극화한 ‘장희빈’

그러나 사실은 이서구의 이 첫 번째 ‘장희빈’이 원조이며 모든 장희빈스토리의 기본패턴이었다. 역사를 소재로 한 사극 중에서 가장 단골로, 심심하면 터뜨리는 이야기, 언제나 폭발적이거나 평균 이상의 안정된 시청률을 확보하는 사극 ‘장희빈’의 원조는 이서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도 한꺼번에 엄청난 인기드라마로 부상하면서 다른 TV일일연속사극의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밤마다 장희빈의 처지에 연민을 느끼거나 미워하면서, 사람들은 마치 역사를 배우듯이 몰입해주었다. 한 마디로 “사극도 인기드라마가 된다”였다. 이 얼마나 괜찮은 스토리의 발견이며 발굴인가. 마치 전설의 고향,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구수함이 앞서고 있어 그저 그냥 역사드라마라고 하기엔 문제가 있다고 하는 주장도 없지는 않지만, ‘장희빈’은 분명 역사극의 대표적인 콘텐츠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일을 작가 이서구가 처음 한 것이다. 일테면 궁중사극의 확립이고 특히 궁중여인사의 미래를 열었다. 조선조 중엽 숙종 때의 대표적인 조선의 요화로 불리는 장희빈과 임금 숙종과의 관계, ‘왕의 여자’가 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일개 나인의 신분으로 궁중에 들어가 온갖 모략과 미색을 무기로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 횡포가 날로 극에 달해 급기야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여인의 이야기! 이 방송 저 방송에서 거의 한 두 번씩은 드라마로 만들었고, 그때마다 많은 시청자를 불러 모으는 역사극이 되었다. 라디오드라마로 시작해 TV드라마로 영화로, 그야말로 하나의 소스가 다양한 용도로 쓰인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작가 이서구는 이 TV일일연속사극 ‘장희빈’이 마지막 집필이 되었다. 이미 라디오드라마 시절부터 사극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온 그가 적잖은 TV주간사극들까지 쓰고, 영화까지 휩쓸었다. 그리고 TV일일연속사극의 시대를 열어 당시로선 최고시청률의 반열에 ‘장희빈’을 올려놓았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때 이미 그는 고령이었다. ‘장희빈’이 한창 인기를 끌 때, 평소에 안 그러던 그가 그날따라 웬일인지 원고를 보내놓고는 연습하는 곳에까지 나타났다. 근데 대본을 연습하던 연출자는 순간 얼굴빛이 파래지면서 “선생님, 이 인물은 몇 회 전에 이미 죽었는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요? 그 인물이 왜 죽었을까?”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래도 ‘장희빈’만은 어찌어찌 무사히 끝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작가 이서구는 그 스스로 다시는 방송가에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은 공평한 것이었다. 인기사극작가에게나 부자에게나 가난뱅이에게나. 불후의 인기드라마, 불후의 사극 소재를 발굴하고 개발한 작가 이서구도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누구든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고 가고 나면 또 다른 시대가 오게 마련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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