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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32)-김수현(1)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32)-김수현(1)
내용 최고의 인기, 최초의 한류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와 작가 김수현


이른 아침, 서울의 어느 주택가 양옥집. 그 집의 가장(배우 김세윤)은 잠옷 차림으로 조심조심, 살그머니 침대에서 빠져나와 대문간에 가서 조간신문을 집어온다. 그리고는 주방에서 커피를 끓여놓고는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아내를 깨운다. 한편 또 다른 주택가 한옥 집에서는 역시 그 집의 가장(배우 이순재)이 마당에 서서 다짜고짜 안에다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 각 방마다 온 식구들이 화들짝 놀라 깬다. 그리고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군대조직의 졸병처럼 쩔쩔 맨다. 한 눈에 봐도 한쪽 집안은 비교적 세련되고 진취적인 문화인데 반해, 다른 한쪽 집안은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며 거의 독재에 가까운 가풍이다. 1990년 11월 23일부터 1992년 5월 31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저녁에 MBC-TV에서 방송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시작부분, 즉 도입부의 장면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집안의 소개가 처음부터 심상찮다. 이 상반된 문화의 두 집안의 자녀들이 서로 사귀귀도 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앞으로 사돈도 되고, 사사건건 부딪쳐가며 가치관 내지는 문화적 충돌을 빚는다. 두 집안의 아내들은 알고 보면 여학교 때 동기동창 관계다. 당시의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이야기들이 장장 일 년하고도 6개월이 넘도록 유쾌하게 펼쳐진다. 그때까지 김수현의 주말 또는 일일연속극에서 가끔 보여주었던 코믹터치가 이번에는 그 절정과 주류를 이루면서, 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주말 저녁 8시 시간대는 남의 집에 전화하는 것이 실례라고 할 정도로 온 국민이 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른바 ‘김수현신드롬’의 또 다른 종결 판 현상을 또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방송사마다 발표하는 자체 시청률 조사결과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사랑이 뭐길래’의 시청률은 어디서든 대체로 70%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실로 엄청난 수치의 시청률이다. 수치상 어느 드라마가 역대 시청률 최고였느냐에 대해선 조금씩 다르게 기록된다 하더라도 무려 70%를 넉넉하게 웃도는 시청률은 금세기에 보기 드문 단연 최고의 인기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엄청난 시청률로 공감 얻은 이야기
현실에 바탕을 둔 사람 사는 이야기

그것도 특집극처럼 특별한 이야기를 다루거나 울고 짜고 하는 최루탄식 드라마가 아니라, 밝고 긍정적인 눈으로 인생을 보는 일상의 드라마로 전국의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본연의 기능인 인간의 본질에 천착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친근감 있게 펼쳐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적어도 황당무계하거나 해괴망측한 판타지 따위의 가짜로 지어낸 이야기나 엉터리 거짓드라마는 없었다. 삶의 리얼리티가 있었다. 뭐 유별나게 떠들어대지도 않으면서 이 ‘사랑이 뭐길래’는 당시 TV드라마에 대한 흥미와 수준을 한 단계 높였고, 이른바 코믹 홈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개 시청률 60%를 넘는 드라마를 국민드라마, 최고의 인기드라마, 시청률의 정점을 찍은 드라마라고 말해왔는데, 이 ‘사랑이 뭐길래’는 그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명실공이 국민 누구나 다 보는 친근한 드라마로 당대 최다의 시청 층을 확보하는데 크게 손색이 없었다. 그때까지의 김수현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할머니와 손자손녀까지 3대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한국형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의 삽입곡 ‘타타타’라는 가요를 일시에 전국적으로 널리 유행시켰고,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이순재는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는데 사실상 간접지원을 받은 것이라고도 했다. 한편의 드라마가 얼마나 큰 문화적 파워를 가졌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텔레비전드라마가 한낱 대중적 오락물에 그치지 않고 실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본 중국의 국영TV에서 급기야 이 ‘사랑이 뭐길래’를 수입하기에 이른다. 최초로 해외에 팔린 한국드라마가 된 셈이다. 한류(韓流)의 시작이다. 십억이 넘는 중국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한다. 중국의 가정과 가족문화와는 많이 다른, 그러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동양적 문화와 생활윤리를 그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합리적인 가족관계도 눈길을 끌었지만 아직도 남성위주의 카리스마 넘치는 가부장제도에서 적잖은 중국남성들이 호감을 나타냈다는 소식도 있었다. 가부장제 가정의 비민주성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인정하지만 동시에 가장의 독재에도 이유가 있음을 공정성의 논리로 펼친다. 결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바로 이런 공평함으로 이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웃음을 유발시킬 수 있는 장치도 갖추었던 셈이다.

최초의 한류(韓流)드라마로
중국 시청자까지 홀리다

가령 독재와 권위의 상징인 가정과 민주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가정, 여기에 상반된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자란 양쪽 집안의 아들과 딸이 밀고 당기며 사귄다. 그리고 일종의 양념 격으로 기독교신자 시어머니와 불교신자 시이모가 등장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잣대의 공존이다. 서로 다른 잣대가 공존하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시청자를 긴장시키지만 작가는 결코 어느 한쪽의 편을 들거나 한쪽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급기야 그 갈등과 긴장감이 절정에 다다르면 모두의 기대를 무너뜨려 끝내는 웃음으로 갈등과 긴장을 해소시킨다. 가벼운 터치였지만 그 속에 역시 인간본질을 담았고, 무릇 드라마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국내는 물론 중국인들한테까지 무척 신선하게 받아들여 진 것이다. 그렇게 김수현드라마는 생활이 바탕이다. 그 속에는 괴물이나 비정상적인 인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람’이 나온다. 사람이 살아있다. 오로지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도 미움도 모든 것이 삶 속에 있고, 살아가면서, 살기 위해서 일을 저지르고 해결한다. 절대로 삶을 팽개치고 사랑이니 미움이니 하는 그 무엇에 ‘올인’하는 엉터리 이야기는 없다. 우리가 살다보면 실제로도 그렇지 않고 드라마는 ‘산다는 것’ 외에 그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드라마의 허구란 없는 것,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것, 말도 안 되는 것을 잔 머리 굴려 허황된 순 엉터리 거짓말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있거나 있을 수 있는 것, 말이 되는(리얼리티가 있는)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과 창작력으로 꾸미는 것임을 확실하게 보여준, 드라마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범(典範)이 된 경우가 ‘사랑이 뭐길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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