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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김수현 드라마의 작품세계②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김수현 드라마의 작품세계②
내용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크게 히트
1980년대 주간드라마의 새 장(章)을 열다

1980년대는 컬러 방송시대로 막을 연다. 197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김수현의 일일연속극들은 모두 흑백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자마자 한국의 텔레비전방송들이 컬러 화 되면서 TV드라마의 양상도 사뭇 달라지고 김수현의 드라마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우선 일일연속극 집필을 사실상 끝내고 주간드라마, 즉 주말연속극 등으로 무대를 옮겨간 이후, 매일연속극의 재미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이제는 주 1-2회로 방송되는 주말연속극 쪽으로 드라마 마당을 펼친 것이다. 일일연속극이 거의 일기에 가까울 정도로 일상적인 생활환경의 성격이라면, 주간연속극은 훨씬 더 극적이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장치를 해야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면 시청자들이 일주일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 적어도 자질구레한 일상사 정도로 시청자들이 일주일을 기다렸다 봐주지는 않을 것이다. 컬러 방송 덕분에 리얼리티도 훨씬 강해지고 화면도 흑백보다 화사해진 건 사실이나 그것으로 시청자들을 일주일 씩 붙들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김수현은 일일극 때보다 훨씬 멜로 성이 강한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멜로는 어떤 경우라도 이성 보다는 감성, 정서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대중성을 벗어나 통속적으로 흘러서는 봐주지 않는다. 이미 1978년 흑백시절에 김수현은 ‘후회합니다’라는 주말연속극을 내놓은 바 있다. 1999년에 SBS에서 리바이벌 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청춘의 덫’도 이 1978년에 처음 방송된 주말연속극이다. 그리고는 잠시 1979년 ‘행복을 팝니다’라는 일일극으로 돌아갔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본격적인 컬러 방송시대와 함께 일일극이 아닌 주간연속극(주로 주말연속극)으로 옮겨 가서 쓰게 된다. 그리고 주말연속극 시간도 완전평정에 들어간다. 매일매일 나가는 일일극과 달리 과연 일주일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봐 줄 사람들이 있을까. 하지만 김수현드라마의 경우에는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1984년 5월 12일부터 1985년 11월 25일까지 장장 약 18개월 동안 방송된 주말연속극 ‘사랑과 진실’은 무려 76%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올리며 이때도 여전히 김수현은 이른바 ‘시청률제조기’라는 별명을 혼자서 보유하게 된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거의 다 본다고 해서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출생 이후 신분이 뒤바뀐 두 자매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벌이는 인간의 욕망과 애증과 진실에 대한 갈등이었다. 이때도 김수현의 드라마는 죽은 시체도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 후 1987년에 방송된 ‘사랑과 야망’ 역시 시청률 70% 이상을 기록하며 동 시대 사람들로 하여금 TV드라마 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이른바 김수현표 ‘사랑과 00’의 시리즈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전편인 ‘사랑과 진실’은 자매의 이야기, 즉 여성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였다면 ‘사랑과 야망’은 두 형제간의 이야기, 즉 남자들이 주인공인 셈이었다.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들만 주로 다룬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버린, 사나이다운 면모를 듬뿍 보여준 드라마였다는 점에서 남녀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김수현드라마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이 ‘사랑과 야망’은 시대극 적인 요소까지 가미한 채 시대를 관통하는 인생에 관한 하나의 보고서를 펼쳐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랑과 야망’ 역시 2006년 SBS에서 다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감동의 드라마로 남았다. 누가 일주일을 기다려 드라마를 봐줄까 하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주말연속극이 확실하게 자리 잡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주말마다 나가는 연속극을 학수고대 기다리게 되었고, 한때 TV드라마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졌던 일일연속극이 오히려 다소 주춤하며 퇴색해 가는 추세로 그 판도가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그만큼 주간드라마의 극적인 구도는 더 강해졌고, 드라마의 기능인 인간본질에 대한 천착과 탐구는 보다 무게를 갖게 되었다. 진정성을 가진 이야기만으로 드라마를 구축해나갔다. 황당한 판타지나, 리얼리티가 없는 상황은 일체 배제된 가운데 오로지 살아가는 문제, 현실의 문제들만을 중심으로 인간본질을 줄기차게 다루었다. 인간과 인생의 본질, 그 바탕 위에서의 가족과 가정, 그리고 남녀의 애정문제와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들을 드라마에 담았다. 김수현의 주간연속극은 대부분 높은 시청률로 한 시대의 화두가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시청률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작품들을 내보이면서 주간연속극 퍼레이드는 계속되었다. 처음부터 김수현작가 자신은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썼을 뿐이다. 1990년 1월부터 8월까지 방송된 MBC의 주말연속극 ‘배반의 장미’의 경우, 의식을 잃고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병석에 누워있는 남편과 그를 돌보는 아내의 헌신과 인내의 한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 드라마였다. 당시로서는 상정하기조차 어려웠던 현실보다 한 발짝 앞 선 특별한 상황이었고 일반화되기가 쉽지 않았던 이야기라, 시청률 면에서는 여타 김수현드라마에 비해 폭발적이지는 못했다.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한 미래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SBS 주말연속극으로 1994년 6월부터 12월까지 방송된 ‘작별’ 역시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탄탄한 극적 구성과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작가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과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던 김수현드라마 가운데 하나다. 직업이 의사이면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중년남자와 그의 가족이 겪어야 하는 우리 시대의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되새겨보는 꽤 비중 있는 드라마 가운데 한 편이었다. 특히 자식을 앞세워 보내는 노부모의 입장에서 보는 인생에 대한 아픔이 인상적이었다. 그 보다 앞서 1992년에 방송된 SBS의 주말 극 ‘산다는 것은’ 역시 김수현드라마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한 미혼여성이 가장이 되어 살아가는, 그야말로 시청률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는 엄혹한 생활위주의 하나의 실험적 드라마의 예가 되기도 했다. 그때까지의 멜로나 홈드라마와는 달리 꿋꿋하게 살아가는 한 젊은 여주인공(배우 원미경)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끈질긴 삶을 다뤘다는 점에서 흥행성과는 별개로 주목을 끌었다. 오직 살아가는 이야기만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현의 주말연속극 인기 행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내놓는 드라마마다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작가 김수현은 점점 날이 갈수록 텔레비전드라마의 대모(代母) 또는 대명사가 되어갔다.

‘목욕탕 집 남자들’ ‘엄마가 뿔났다’.....
인기주간연속극 30년 넘게 이어져

한국TV드라마에 있어서 작가 김수현을 당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드라마의 인기 면에서도 그랬고, 인기드라마의 작품숫자에서도 그랬고, 화제성이나 드라마가 추구해야 할 주제와 드라마의 안정된 품질 내지는 작품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에 있어서도 그랬다. 더욱이 그가 매번 써낸 주간연속극들이 압도적인 인기를 무려 30년이 훨씬 넘도록 유지해왔다는 사실 자체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일일극까지 합치면 40년도 더 넘게 드라마작가 왕좌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왔다. 김수현의 드라마가 그렇게 폭넓은 공감을 얼마나 오랫동안 불러일으켰는지 충분히 알만한 일이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한국의 드라마시청자들은 그 몇 십년동안을 김수현의 드라마에 빠져 있었으며, 알게 모르게 그의 정서적 영향력과 함께 있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하나의 오락물 정도로 무심하게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말들을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는 TV드라마의 문화가 한 시대의 정서를 사실상 지배해 온다는 점을 그 누구도 결코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김수현과 같은 TV드라마작가가 쓰는 드라마를 보며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그들의 사고와 생활방식, 의식구조에 있어서 부지불식간에 드라마 속의 삶의 형태에 젖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수현드라마의 등장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그만큼 그의 드라마는 세상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정 어린 시야를 항상 갖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환상이나 기능 기술위주의 드라마, 얄팍한 속임수나 잔꾀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본질,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데만 몰두했다. 1970년대 내내 TV드라마 계를 주름잡았던 김수현의 일일연속극에서 그랬고, 1980년대 이후 계속 이어진 주간연속극(주로 주말극)에서도 TV드라마에 대한 그의 성찰과 위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 결과 쓰는 것마다 사실상 불후의 인기드라마 반열에 올랐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95년 11월 18일부터 방송된 KBS의 주말극 ‘목욕탕 집 남자들’로, 김수현드라마의 엄청난 시청률을 다시 한 번 고공행진까지 끌어올려 공전의 히트작 가운데 하나로 남겼다. 이 드라마 하나로 그때까지 타 방송에 비해 비교적 저조하고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KBS드라마를 일시에 강세로 돌려놓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모두 83회를 방송한 ‘목욕탕 집 남자들’은 일반적으로는 효와 형제애 등을 생각하게 하는 정통 홈 멜로물이라고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김수현 특유의 작가의식, 즉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펼쳐놓은 것이었다. 서울 쌍문동에서 대대로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는 건물에 모여 살면서 가족 끼리 다투고 화해하고, 일을 벌이고 마무리 하고, 연상의 여성과 결혼을 요구하는 등 달라져 가는 세상을 코믹하면서도 호들갑스럽지 않게 담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자식들의 생각과 늘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조화와 화해를 이뤄가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모습들이 그려지는 바람에 사람들은 주말마다 유쾌하게 이 드라마를 보았다. 가족끼리 부대끼고 어울려 살면서 살아가는 맛과 향기, 인생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늘 앞세우려는 김수현드라마 가운데 한편이었다. 애당초 김수현의 드라마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무슨 거창한 메시지를 표면에 내세우며 출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매 작품마다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다루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놀랍다. 드라마마다 명랑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언제나 확실한 주제가 있다. 밥 먹고 잠자고, 애들 혼사 치르고, 부부 또는 가족 사이에 티격태격하는, 어찌 보면 지극히 일상적인 시시콜콜한 일들을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인생은 결국 특별하지 않은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99년에 들어서는 1978년에 MBC를 통해 이미 한번 나갔던 ‘청춘의 덫’을 SBS에서 다시 제작 방송해서 또 다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순정을 짓밟고 떠난 남자를 상대로 통쾌한 복수극을 펼치는 자칫 한 편의 신파 같은 이야기로 빠질 수 있는 경우였다. 하지만 거기로부터 출발해서 본질적인 인간의 격을 높이고 적절한 타당성과 합리적 감각을 부여해 진정성을 살리는데 깨끗하게 성공했다. “당신, 부셔버릴 거야”. 이 한 마디의 대사로 집약되는 ‘청춘의 덫’ 식의 애정윤리와 정서에 사람들은 한때 열광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각 방송사를 번갈아 가며 이어진 여러 편의 주간 극들도 어김없이 TV드라마의 경쟁력을 높이며 시청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견인하고 있었다. ‘엄마가 뿔났다’ ‘부모님 전 상서’ ‘인생은 아름다워’ ‘내 남자의 여자’ ‘무자식 상팔자’ ‘세 번 결혼한 여자’ 등등 이어지는 연속극마다 대부분 평균 이상 또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생은 아름다워’는 주말극 사상 보기 드물게 처음부터 끝까지 수도권을 벗어나 제주도라는 특정지방을 고정무대로 하는 드라마로 성공시켰다. 어딜 가나, 그 무대가 어디든, 변함없는 화두는 사람 사는 이야기고 인간의 본질과 인생에 천착하는 내용이었기에 장소나 배경에 관계없이 성공적일 수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있을 수도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희귀하고 해괴망측한 비정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나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엄혹한 생활과 풍속과 꿈과 정서의 변주곡이었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일종의 블랙홀 같은 역할을 해냈다. 어찌 보면 시시콜콜한 생활의 사연들을 변함없이 드라마로 다루어왔다는 점이 작가로서의 내공을 말해주는 남다르고 탁월한 창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억지로 뒤틀고 온갖 수작을 다 부리는 이른바 막장드라마라는 지경까지 가지 않고 지극히 정당한 방법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줄기차게 써내려왔다. 그는 드라마 교본에만 의존하는 하수(下手)가 아니었다. 이미 교본을 체득하고 태어난 듯이 철저히 교본에 충실하면서 그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상위개념의 교본을 새로 만들어 가는 무림의 고수(高手)였다. 그것은 바로 ‘드라마란 모름지기 기법이나 기술이 아닌 오직 내용’이라는 점을 중시하는 작가적 자세에서 나왔다. 때문에 그의 드라마는 어느새 시청자들에게 믿음을 주고 시청자들이 항상 신뢰하는 콘텐츠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청춘의 덫’ ‘부모님 전 상서’ ‘인생은 아름다워’
‘내 남자의 여자’ ‘무자식 상팔자’ ‘세 번 결혼한 여자’....

영화나 만화나 소설이나 연극과 다른 텔레비전드라마만의 특성과 맛을 가장 잘 살린 드라마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예컨대 서울을 떠나 경기도 일대를 무대로 벌인 가족드라마 ‘부모님전 상서’와 ‘무자식 상팔자’가 있었다. ‘부모님전 상서’는 아침마다 뒷동산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찾아 보고하는 형식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펼쳐 나갔고, 그보다 훨씬 뒤인 2012년에 나온 ‘무자식 상팔자’는 역시 가족드라마였지만 많은 화제 속에 그때까지 방송된 종합편성채널의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나타냈다. 퇴직한 남자의 우울증과 가족의 기대주로 미혼모가 된 판사 딸, 기타 부부간의 문제를 노인세대까지 끌어올리는 등 시대의 화두를 대부분 다루며 역시 인간과 인생의 본질에 접근하려 했다. 2008년에 KBS-2TV의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는 이른바 아날로그 세대로 지칭되는 부모와 디지털 세대인 자녀들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을 주요 소재로 하면서, 특히 평생을 주부로 살림이나 하면서 살아온 여성의 이유 있는 반란을 추가시켜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잠시라도 집을 나가 자기시간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 드디어 시아버지의 이해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간이지만 평소 꿈꾸던 자기만의 삶을 실현시킨다. 그것은 일탈이 아니었다. 얼마나 통쾌한 인생의 지혜인가.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김수현의 드라마 가운데는 2012년의 ‘천일의 약속’, 2007년의 ‘내 남자의 여자’, 2003년의 완전한 사랑‘, 2000년의 ’불꽃‘ 등이 있다.
2013년에 SBS-TV를 통해 방송된 ‘세 번 결혼한 여자’도 빼 놓을 수 없다. 꼭 한 사람과의
사랑이 끝까지 지켜지기를 바라는 결혼이라는 약속은 어느새 지켜지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
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김수현의 드라
마에 는 사람이 살아있다. 괴물이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나와서 움직인다.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정상적으로 행동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여 가는가를 보여주
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드라마의 작품성이나 완성도는 결코 해괴한 아이디어나 기술적 조
작에 있지 않고 그 진실된 내용에 있음을 계속해서 드라마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드라
마마다 반드시 선명한 주제와 메시지가 있다. 왜 그 드라마를 하는 것인지, 매번 그 드라마
를 통해 무엇을 주려고 하는 것인지가 명확하다. 늘 같은 패턴과 비슷한 환경의 삶을 이야
기 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언제나 다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선
변함이 없지만 그 실제적인 이야기는 판이하게 다르다. 똑같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 같지
만 그때마다 노리는 바가 다르고 거기에 걸맞은 다양하고 신선한 재료들을 다룬다. ‘엄마가
뿔났다’에선 중년주부의 자아 찾기가 있었고,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다루기 까다로운 동
성애까지를 진정으로 애정 어린 측은지심과 애틋한 부모의 가슴으로 소화하려 했다. ‘부모
님 전 상서’는 지금이 아닌 조금 전의 살벌하고 삭막하지 않은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었
고, ‘무자식 상팔자’는 자식이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역설적으
로 인식시켰고,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불륜과 배신의 허구성을 다뤘고, ‘세 번 결혼한 여
자’에서는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만들었다. 그들은 한 결 같이
여타 드라마에서들처럼 결혼과 이혼을 마치 무슨 게임을 하듯이 식은 죽 먹듯이 하지 않았
다. 결혼과 이혼을 결코 가벼운 이유 등으로 저지르지 않고 인간에 대한 중대한 믿음의 문
제로 이끌어 간다. 남녀 간이나 가족들이 살아가는 형태를 무슨 패션처럼 하지 않았다. 살
아가는 문제는 다 팽개치고 치기어린 애정놀음에 ‘올인’ 하거나 앞 뒤 분간 없는 ‘묻지 마’
복수에나 몰두하지도 않는다. 생활은 아예 나오지도 않거나 뒷전이고, 사소한 감정에 인생
을 거는 비정상적인 수준과 감정에서 나오는 해괴한 모습도 없다. 직업이 직장인인 사람이
나 기업이 나와도 본연의 일은 하지 않고 서로 음모와 암투와 비리와 타락에만 빠져들지도
않는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마치 그런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들이 드라마인 것처럼 하지 않
는다. 김수현드라마의 여러 매력 가운데 바로 이런 점이 오랫동안, 매번 시청자를 사로잡았
던 비결이자 강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김수현표’ 단막극과 특집극들의 작품성
시대의 명품드라마로 시청자 심금 울려

거듭 말하지만 텔레비전드라마에 있어 인생과 인간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갖춘 뛰어난 작가와 더불어 한 세상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행운이고 행복한 일이다.
작가 김수현은 한국적 텔레비전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해온 금세기 최고의 드라마작가다. 어쩌다 가끔씩 이른바 국민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드라마를 지속적으로 들고 나오는 밑천과 저력을 가진 경우는 김수현 외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그만큼 김수현의 드라마는 작가의 평가에 있어서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언어문학으로서의 텔레비전드라마 진화와 인물의 캐릭터 창조, 세상과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각에 있어서의 특별함은 그로 하여금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입증시켰다. 그리고 그 번득이는 창작력은 작품성과 완성도가 비교적 높은 단막극이나 특집극 등에서 동시에 빛을 발했다. 특히 1981년에 열린 컬러텔레비전시대 이후, 설이나 추석 등 신년이나 명절의 이른바 계기(季期)특집 또는 각 방송사의 창사 특집극 등을 통해 내놓은 단발성 드라마들 가운데 유독 격찬을 받은 작품이 적지 않았다. 대개 2부작 또는 길어야 3부작의 형태로 방송된 이들 단막극 또는 그 길이와 본래적 의미의 미니시리즈 형태의 드라마들은 과연 김수현이 희대의 특별한 드라마작가라는 것을 말해준다. 대충 2000년대 이후 쯤에서부터 미니시리즈는 그 길이나 내용에 있어서 일반연속극과 별반 다름이 없는 형태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김수현의 단막극과 특집극 등은 달랐다. 이들 작품들 역시 주로 가족드라마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인간과 인생의 본질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 그때까지의 숱한 연속극들과는 또 다른 압축과 함축미로 작품성 있는 TV드라마의 진수에 눈 뜨게 해주었다. 하룻밤에 3부작 모두를 연속으로 집중 편성한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때마다 쟁쟁한 주변 연속극을 단숨에 뿌리치고 시청률 면에서도 매번 최고를 기록하다시피 했다. 컬러시대 이후 내놓은 김수현의 단막극과 특집극들은 TV드라마의 작품완성도 면에서도 금자탑을 이뤘다.
흥행과 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다 잡는데 성공했다. 우선 1981년에 컬러 방송시대를 맞아 내놓은 두 개의 특집극이 주목을 받았다. 하나는 MBC의 신년특집극으로 방송한 90분짜리 드라마 ‘첫손님’이었고, 같은 해 같은 신년특집극으로 KBS-TV에서 3부작으로 방송한 ‘옛날 나 어릴 적에’는 노인문제를 깊이 다룬 문제작으로 그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작가상을 받았다. 같은 해 서로 다른 두 방송사의 신년특집극을 김수현드라마가 석권했다. 노인문제라고 해서 그저 단순한 노인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노인문제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과 인생을 다룬 잘 짜여 진 주옥같은 단막극들이었다. 특별한 사건이거나 액션이 아닌 그저 그냥 담담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폐부를 찔렀다. 스쳐지나가는 생활의 편린
속에 자칫 놓치기 쉬운 인간의 삶의 이야기가 언제나 화두였다. 김수현은 연속극뿐만 아니라 작품성이 강한 굵직한 특집극 작가로서도 더 많은 찬사를 받게 된다. 물론 흑백TV시대인 1970년대 후반에 KBS와 MBC에서 방송한 단막극 ‘말희’와 ‘보통여자’도 주목을 끌었다. 1982년 1월 1일 MBC 신년특집극 ‘아버지’도 주목을 받았고, 1983년의 KBS 신년특집극 ‘딸의 미소’ 역시 김수현 텔레비전 특집드라마 특유의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 후로도 특집극 ‘인생’과 ‘은사시나무’ 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드디어 1992년 SBS 창사기념특집극 ‘어디로 가나’는 3부작을 하루에 다 방송한 드라마로 인간본질에 관한 작가의 농익은 시각과 천착이 전편에 흐르고 있었다. 전신불수로 거동이 불편해 누워서 용변까지 봐야 하는 심통스런 시아버지를 모시는 문제를 통해 자식과 부모, 삶과 죽음,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인생의 슬픔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새삼 생각하게 만든 드라마였다. 과연 인간은 살다가 죽으면 정녕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일일연속극과 주말연속극은 홈드라마나 멜로드라마를 주로 다뤄왔지만 특집극에서만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를 부각시켜 심도 있게 다룬다는 평을 받았다. 김수현의 단막극과 특집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때마다 이어졌다. 훨씬 전에 ‘혼수’와 ‘아버지’ ‘딸의 미소’를 내놓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홍소장의 가을’과 종편에서는 개국과 더불어 ‘아버지가 미안하다’ 등을 계속 집필해 단막극 성격의 특집극으로 사람들을 울렸다. 잘 나가던 중년의 가장이 명예퇴직으로 직장에서 밀려나고 가정에서도 홀대를 받으면서 김수현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물게 결국은 목숨까지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지켜봐야 하는 형제의 마음을 그린 것이 ‘홍소장의 가을’이었다. 시청 환경미화원에서도 정년을 다해 오토바이를 타고 퀵서비스를 하고 있는 가장과,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그 자식들이 받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냉정하게 다룬 드라마가 ‘아버지가 미안하다’였다. 김수현에게 있어 단막 성격의 특집극들은 연속극 사이사이에 어쩌다 짬을 내서 쓰는 쉼표가 아니었다. 절제된 감정과 정제된 언어로 정성을 다해 펼쳐내는 인생의 고해성사, 인생고백서와 같은 것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김수현드라마, 특히 단막 성격의 드라마들에서 다뤄지는 인간과 인생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이미 오래전부터 김수현은 여기저기서 주는 영화시나리오나 TV드라마 극본 상을 휩쓸게 되지만 나중에는 작가자신이 각종 작가상을 극구 사양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한다. 1970년대 초반 ‘새엄마’로 방송대상 작가상을 받기 시작했고, 그 후 수차례의 방송대상, 한국방송작가상, 백상대상, 그리고 영화시나리오 상까지 받았고,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살아있는 드라마작가로는 처음으로 국가에서 주는 문화훈장까지 받는다. 아마도 연속극이 아닌 단발성 단막 또는 특집극으로 연속극 뺨칠 정도의 수많은 사람들을 일시에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 모으는 경우는 김수현드라마 밖에 없을 것이다. 연속극의 특성 상 자칫 놓치기 쉬운 작품성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그의 몇 부작 특집극들은 그 어떤 문학행위에서도 이루기 힘들 만큼 충분한 작품성과 완성도를 이뤄냈다. 대체로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일 년이나 일 년 반 만에 연속극 한 편씩을 썼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2년 만에 한편씩을 쓰기도 한다. 드라마에 대한 동력이 떨어져서라기보다 더욱 더 알찬 내용의 작품만을 내놓겠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온갖 막장이 판을 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자존심을 사수하는 작가의 드라마. 언제나 많이 모자라는 평균 이하의 정신질환자 수준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살아있는 사람, 평균적인 사람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고 싶은 꿈이 우리에게는 있다. 20대 후반 즈음에 김수현드라마 마니아가 된 사람들이 어느새 70대로 접어들었다. 그 아들딸은 물론이고 어쩌면 손주까지 김수현드라마를 지금도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 결 같이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저렇게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정확하게 쓸까? 이것이 또한 김수현드라마의 비결이다. 그렇게 따뜻한 인생의 향기와 인간의 아름다움까지 전해주는 드라마가 김수현의 드라마들이다. 그가 확실히 금세기 최고의 드라마작가임을 각인시켜주는 김수현의 드라마세계는 천만다행히도 아직은 끝나지 않고 계속 중이다. 언제 또 사람냄새 듬뿍 담은 그의 인기드라마를 보게 될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여전히 만만찮다. 일찍이 1995년 한 월간 잡지가 펴낸 신년호 별책 부록 ‘광복 50년, 한국을 바꾼 100인’에 드라마작가로는 유일하게 김수현이 들어있다. ‘한국을 바꾼 100인’이 아니라 ‘한국을 바꾼 10인’이라도 김수현은 그 안에 들어야 마땅하다. 여기 김수현에 대한 또 다른 평가가 그를 말해주고 있다. “김수현드라마는 한국인의 삶과 풍속을 꿰뚫어 읽는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도 섬세한 시선, 화려하고도 맛깔스러운 화법과 더불어 시퀀스의 개연성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작품마다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한편,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끝없는 천착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대중성과 더불어 문학성에서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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