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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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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스쿨 특강 메모
내용 “김수현 작가론”

작가론을 얘기하기엔 너무 재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특별히 쟁점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한 작가를 말하자면 더 그렇다.
거창하게 작가론을 말할만한 드라마작가도 많지 않고.
그러나 다행히 김수현씨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작가론으로 평가받아야 할 작가로 생각한다.
그리고 프로듀서 스쿨이라 기획과 작가 선정에 필요할 것도 같고.
제값을 하는 작가가 몇이나 되는가. 작가를 어떻게 고를 것인가.
지금의 소위 드라마작가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알아야겠기에.
먼저 진정한 의미에서의 TV드라마 작가가 몇이나 있는가.
인터넷이나 잘 모르는 매체에 의해 조작된 사이비작가는 몇 인가.
우리가 진정 맡기고 신뢰할만한 작가가 몇 이나 될까.
따라서 작가의 선정과 존중과 인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잘 알고 있겠지만 TV드라마는 영화와도 다르다.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고 영상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불특정 다수란? 그 특성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개인적인 감상수준의 이른바 대중문화평자란 사람들이나,
일부 저널리즘에서 방송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쓰는 상황.
화젯거리로 정도로 다루는 바람에 오히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건 아닌지.
텔레비전 매체의 불특정 다수라는 특성과 관련해 등급제라는 것도 그렇다.
원칙적으론 불특정 다수 대상의 방송매체에선 있을 수 없다.
실제로 그 효과여부도 비과학적이고 불투명하고.
그림이나 영상을 갖고 말하려면 영화나 사진을 해야지.
TV드라마는 그쪽이 아니다. 이야기산업이다.
새삼스럽게 스토리텔링이니 하면서 갑자기 요란한데 원래부터 있었다.
서사구조, 이야기(소스)를 만들어내는 작가다운 작가가 필요하다.
기술자가 아니라 창작하는 작가, 생각 있는 작가를 말한다.
작가의 기술이나 노동력을 사는 게 아니다.
가치관이나 인생을 바라보는 눈과 생각을 사는 것이다.
흔히 영화가 감독의 작품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TV드라마는 극본이, 작가가 절대적이다.
마치 연출자가 극본까지 좌지우지 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잘된 극본이 나쁜 드라마가 되는 건 가끔 있다.
하지만 못된 극본이 좋은 드라마가 되는 건 못 봤다.
극본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몫이고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와야 정상이다.
연출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지 작곡가는 아니다.
어떤 지휘자가 작곡에 관여하는가. 그러려면 차라리 자기가 쓰지.
역할분담이 확실히 안 되는 상황에서 진정한 작가란 없다.
작가의 역할도, 작품도, 창의성도, 책임도 없다.
그저 하수인이나 기능인, 받아쓰기 정도의 지망생이 있을 뿐이다.
시청자 ,즉 국민을 상대로 연습을 하거나 장난을 쳐선 안 된다.
그래서 되는 드라마도 못 봤다. 시청자는 결코 우롱당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작가적인 의식과 생각, 창작적 시각을 보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이것저것 관여해서 만든 ‘하드’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정서와 정신이 깃든 ‘소프트’적인 측면, 즉 내용을 보려는 것이다.
공동 작업? 결국은 어느 한 부분은 작가가 혼자 쓰는 것이다.

지금 우리 드라마의 시청률을 놓고 보자.
시청률 30% 드라마는 자주 나온다. 30%라면 몇 명인가.
그 인원이 한꺼번에 아무런 강요도 없이 본다? 대단한 것이다.
영화, 소설, 그 무엇이 이런 영향력을 해낼 수 있는가.
좋은 작가와 한 시절을 같이 한다면 행복한 일이다.
지상파 편성에서 주당 30편 안팎의 드라마가 나간다.
벌써 몇 십 년째다. 시청률 20위, 10위 안에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근래 나가는 프로그램들은 어떤 것들인가.
밤낮으로 먹는 것, 연예인 얘기나 그들이 빠지는 프로는 없다.
공영도 민영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그나마 막장드라마라도 본다.
해방 후 ‘한국을 바꾼 백인’ 가운데 누가 들어가야 하는가.
죽은 시체도 아무개 드라마라면 벌떡 일어난다는 그런 작가.
백 년 만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한 그런 작가.
이런 게 그냥 기술로, 아이디어로, 극작술로만 되는 건 아니다.
아직 TV드라마 작가론은 정립 안 돼.
그러나 10여 년 전에 ‘김수현드라마에 대하여’를 비롯해,
방송평론 ‘TV드라마의 가능성’ 등에서 김수현과 드라마를 다룬바 있다.
김수현드라마의 인간과 문화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본적이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이런 특강에 부른 것 같다.
작가 김수현은 라디오드라마 현상모집 당선작가 출신이다.
상금 원고료의 상당부분을 어려운 학생에게 쾌척하고,
한동안 방송하고 관계없는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몇몇 단막극 이후 MBC-TV의 드라마로 돌아온다.
1970년대 초의 일일극 ‘새엄마’가 그것이다.
그때는 이미 ‘아씨’나 ‘여로’ 같은 복고풍의 드라마가 대세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MBC가 일일극으로 일상생활을 들고 나왔다.
그것도 김수현이라는 신인에게 과감하게 맡긴 것이다.
순전히 작가의 생각대로 드라마는 쓰여졌다.
당시로서는 가장 긴 연속극이 되었다.
서울의 어느 대가족 집안에 재취로 들어온 여자.
장성한 본실자식들과 거기다 짱짱한 시어머니까지 있는 상황.
이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한 사람의 인간으로 해쳐나가는 이야기.
지금까지의 며느리, 후처, 여성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당시만 해도 한동안 TV드라마 단골메뉴는 고부간의 갈등이었는데.
한 여성을 비로소 인간으로, 인격체로 다뤘다는 것.
정상적인 생각으로 괴물이 아닌 가족과 인간과 살아가게 했다는 것.
현실의 삶, 팔딱팔딱 뛰는 생선 같은 느낌을 주는 드라마.
일상생활과 인간, 현실의 정서에 천착했다는 점.
일상이란 원래 재미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드라마 속에 묶어놓았다는 사실....
예컨대 밥상머리가 자주 나오는데 그냥 구색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살아가는 데 있어 ‘밥’ 먹는 것의 중요성이랄까.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가치를 내보인다.
과거회귀적, 복고풍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그 속에서 일상을 다루는 김수현의 등장은 흥미로운 데가 있다.
훗날 한국텔레비전드라마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으로 드라마의 리얼리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드라마란 무엇인가. 이야기다.
근데 인간의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라야 한다.
흔히 ‘극적’이니 ‘드라마틱’이니 하는 것이 재미다.
조립과 기능에 의한 인위적 재미가 아니라 자연스런 리얼리티.
최고의 극작술은 결코 지어내지 않은 것 같은 경우다.
압축, 정면 돌파, 과감한 생략과 깊이 파고드는 것.
정확하고 정직한 관찰과 문제해결의 방법연구.
갈등까지의 어떤 과정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포트나 다큐다.
드라마는 어떤 문제를 터뜨려놓고 해결해가는 것이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여기에 충실하고 있다.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지어내는 이야기고 허구다.
그런데 만약에 거짓이라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면 어떨까.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외면하고 믿지 않는다.
다시 말해 99%의 허구에 1%의 진실이 들어있을 때만 성립한다.
이 1%가 작가정신 또는 작가의식, 작가의 생각일 수 있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새엄마’ 이후 계속되는 MBC의 연속극들의 구조가 그랬다.
‘수선화’ ‘봄이 오는 소리’ ‘강남가족’ ‘여고동창생’ ‘신부일기’....
한때 MBC를 드라마왕국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김수현드라마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만큼 김수현의 드라마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향력 있다.
흑백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1980년대 컬러시대에 이후도 마찬가지다.
그 김수현드라마의 영역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가족과 가정을 주 무대, 주재료로 다룬다는 것.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는 것.
말하자면 TV드라마가 갖는 특성에 가장 근접해있다는 점이다.
컬러시대 이후 멜로드라마가 훨씬 많아지긴 했지만.
그러나 그 역시 가족극, 가정극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새엄마’ 이후 홈드라마란 장르를 정착시킨 데다가 멜로까지.
그래서 한때는 ‘홈멜로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켰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 대한 관찰과 애정이 담겨있다.
인간에 대한 탐구와 관찰이 정확했고 애정 어린 것이었다.
이것은 곧 등장인물들의 성격, 즉 캐릭터를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주연 조연이 따로 없이 모두의 캐릭터를 살려주는 묘미가 있다.
그만큼 인간은, 인간의 생각은 다양한 것이다.
살아가는 방법도 누구나 같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늘 새롭고 싱싱한 일상이 가능했다.
드라마는 유아대상의 만화수준이 아니다.
누가 그만큼 인간의 마음속을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김수현의 작품에 끊임없이 흐르는 인간애와 삶에 대한 탐구.
결국 그것은 드라마가 ‘마음을 그리는 것’이라는 이치다.
영화처럼 액션이나 영상, 사건의 충격, 장소의 현란함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의 마음의 흐름과 변화를 그린다.
다시 말해 심리적인 측면에서 출발하고 끝난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김수현드라마는 좀 더 인생에 천착한다.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김수현의 드라마가 흥행 면에서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배반의 장미’와 ‘산다는 것은’ ‘작별’ 등이 그랬다.
그러나 다들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다룬 것으로 남는다.
김수현 아니면 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의 인간과 인생에 대한 관찰은 정확하고 예리하다.
“그림은 보이는 대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너만이 느끼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해.
그리고 그 느낌은 항상 새로운 것이어야 해.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관찰이 중요하지.
사람마다 성격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거야.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사물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내면에 있는 것까지 놓치지 말아야 해.”





여기에 김수현의 대사는 가히 국보급이다.
언어의 연금술사,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칭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TV드라마는 영화와 달라서 그냥 영상만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영상물에 대사가 너무 많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드라마는 대사가 절대적인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말을 유창하게 잘 한다고 해서 좋은 대사라는 뜻이 아니다.
적확한 곳에 적확한 표현, 영상위주의 매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TV드라마의 대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다.
TV드라마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언어, 방송문장이란 말이 나올 수 있다.
쉽게, 짧게, 말하듯이, 품위 있게, 시각적인 언어의 세계다.
예컨대 ‘엄마가 뿔났다’나 ‘엄마 눈에서 불이 떨어진다’ 식이다.
대사란 언어를 다루는 것이고 TV드라마는 대사가 필수다.
대사가 드라마를 진행시키고 캐릭터를 나타내고 많은 정서를 전달한다.
이 ‘말’에 있어서 김수현은 TV드라마에 맞는 작가다.
대사의 상당부분이 드라마의 진정성과 관련되어 있다.
최고의 극작술은 지어내지 않은 것처럼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
이것을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눈으로 해내는 것이다.
‘사랑이 뭐길래’가 일상성이 강했다면 ‘인생은 아름다워’는 작가의 가치관이다.
‘청춘의 덫’이나 ‘내 남자의 여자’는 사랑의 진실을 말하고자 했다.
이제 그가 바라는 대로 ‘사랑과 인생’을 그렸으면 좋겠다.
성직자 앞에선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이듯이, 이제 우리는 드라마에 관한 한,
작가 김수현에게 경의를 표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의 드라마로 대다수 사람들이 한 시절 웃고 울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는 누가 뭐래든 ‘드라마의 신(神)’의 경지에 들었으니까.
문화적 영향력으로 치자면 오늘날 누가 그만큼 파워를 가졌는가.
그래서 좋은 작가는 반드시 나와야 하고,
그런 작가를 발굴하고 존중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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