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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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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줄 알았네
내용 2003 .10. 13

첫방이 나간 토요일 밤부터 월요일까지 화증머리 내느라고 기운 빠지고 7,8회 원고 내보내느라 지친데다 이튿날은 아침 8시부터의 請會때문에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6시 반에 집에서 나가야 했었다.
길 막힐 것 걱정해 너무 일찍 나갔는지 40분이나 일찍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고 할매가 일등이었다.
'나가서 연기자들 잡지 마 엄마'
주의까지 받고 나갔건만 타고난 인품 어디가나, 그때부터 하나 둘 나타나기 싲가하는 연기자들을 차례차례 아던정 보던정없이 지적하면서 유감없이 고약한 성질머리를 발휘했다.
당하는 연기자들이야 유감이 많았겠지만 하하하하.

10시 20분 경, 리딩이 훨씬 좋아진 느낌으로 할매 헤벌레해서 연습을 마치고 그때부터 평택 어린이 농장으로 중학고 恩師님 생신 모임에 참석하러 달렸어야 했는데, 길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외곽 순환도로는 외곽주차장이었다-두시간 반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지각이었다.
제주도 강연인가 뭔가때문에 제주도에 가 있었던 조정래 선생 부부는 부러 전날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까지 올라와 벌써 도착해 있었는데 이런 민망한 노릇이 있나.

고등학교 동창 휘델리스 수녀님, 중고등 친구들,, 내 사회 친구 몇명, 선생님 이북 제자 기타 등등 이십여명의 손님들과 잘 먹고 잘 떠들다 4시에 일어섰다.
서울까지 두 시간, 딱 열두시간 만에 들어왔는데 옷 벗고 간신히 클린싱으로 얼굴만 닦아내고 쓰러졌는데 그날부터 꼬박 사흘을 시멘트 바닥에 팽개쳐진 넙치처럼 완전히 넉다운이었다..
물에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는 것처럼 까부러져 잠들었다 잠간 깨었다 다시 까부러졌다를 반복했었다.
원고 써야는데 써야는데... 허리가 아파 죽겠으면서도 누워서 뭉개다 일어나 둬 페이지 쓰고 또 눕고 하면서 토요일에 9회를 보내고 어찌됐든 오늘 오후 4시 10회 원고 내보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데 나는 원래 국력에는 아무 보탬이 못되는 사람이다..
일을 할 때는 일 외에 바깥 세상은 담을 쌓아야만 웬만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젊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가끔은 피치 못할 일도 생겨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고 나면 내가 죽을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되게 힘이 든다.
선생님이 아니고 내 엄마였다면 '엄마 나 못가'하고 제 컨디션으로 일이나 했을텐데 선생님한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더구나 가족 중에 하나인 하나-강아지-가 그 전 토요일에 갑자기 피오줌을 누어 기절초풍을 해서 입원시켰는데 공교롭게도 병명이 '특발성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이라고 했다.
'완전한 사랑'의 영애 병을'특발성 폐섬유화종'으로 잡았는데 왜 우리 하나가 느닷없이 '특발성'인가 말이다..
'특발성'이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병이란 말이다..
원인불명이니 당연히 희귀병이고 희귀병은 완치가 약속되지 않는 병이기 십상 아닌가.
가장 낮은 단계의 항암 치료에 수혈까지 하고도 아이는 어제까지도 예후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도 계속 뒤에서 누군가가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열흘을 보내고 오늘 겨우 호전 반응을 보인다는 좋은 소식을 들었다..
급한 김에 아우와 가까운 분당 동물병원으로 실어보내고 나는 한번 밖에 병문안을 못했다.
대신 아우가 매일 한 차례씩 들여다 보고 놀다 와 주었는데 눈에 삼삼 우리 하나, 착한 하나, 우아한 하나, 제발 제발을 하루에도 몇번씩 뇌까렸다..
그 신경소모도 나를 지치게 하는데 一助를 했을 것이다..

10회 분 원고까지가 자신없어 곽감독한테 미리 어쩌면 10회는 못나갈지도 모른다고 예고를 해놨었다.
내가 그래도 감독들은 믿어주지도 않는다.
그래 놓고도 어쨌든 가능한 한 써 보내주니까 대충 엄살로 듣는 것 같은데 결코 엄살은 아니다.
그저 쓰는 사람이 원고를 제 시간에 못대는 건 최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용을 쓸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고를 미처 내보내지 못했을 때는 상태가 꽤 나쁘다로 생각해도 된다..

지난 10여일 동안 정말 할매 죽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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