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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친구야 친구야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친구야 친구야
내용 지난 주 금요일에 너희들 보고 와서 오늘 화요일인데 나는 아직 얼마쯤 무거운 채 있다. 왜 그럴까.
일년에 한 두 번 만나 몇 시간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지내다 헤어지려면, 번번이 꼭 집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무지근하게 아린 것같기도 하고 쓰린 것같기도 한 그런 마음이 된단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그 상태가 계속되면서 다소 처진 채 지내게 되지. 애달픔이랄까 서글픔이랄까 아니면 슬픔에 가까운 것이랄까.

친구야 친구야.
우리는 각각 다른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서 만나 고등학교까지 6년을 같이 보냈고, 생각해보니 50년, 반백년을 '친구'로 지내고 있구나. 나이 오십을 넘은 내 아래 아우들 말고는 내 어머니 아버지도 나와 ' 50년 관계 '를 가진 사람은 너희들 말고는 없다.
참으로 대단한 관계 아니니 동무들아.

나는 원래 지난 일에 대한 기억은 한심할 정도로 형편 무인지경이라 너희들과의 추억을 사진첩 넘기듯 할 수는 없다만 그래도 몇가지는 말할 수 있다.

친구야.
내 아이가 설사병이 심히 났는데 병원 갈 돈이 없어 아이 들쳐업고 너한테 전화했을 때, 너는 두말없이 ' 빨랑 와 ' 했었다.
버스타고 병원비 빌리러 너 살던 보광동 네 집을 찾았을 때 너는 철 대문을 비눗물로 닦고 있었다.

또 하나 친구야.
내가 물어물어 너를 찾아갔을 때 너는 마당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지. 나는 지금 그게 어느 동네였는지조차 모른단다. 모래내였었나?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은 못하지만 아마 너를 야단쳤던 것 같고, 나 역시 고학하는 처지였지만 너는 나보다 더 힘든 거 같아서 참 속이 많이 상했었단다. 우리 수색이라는 곳에서 너도 월셋방, 나도 월셋방 한동안 자주 보면서 살기도 했었지.

병원갈 돈 꿔줬던 친구야.
어느 날 네 전화를 받았는데 네 아이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횡액을 당핬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방송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전화받자마자 너와 네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 너를 보았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게 어디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강원도 쪽 아니었나 암튼 지방이었는데....

나는 너희들의 어머니 아버지도 뵈었었고 네 동생들도 알고 있고, 너희들도 내 부모 형제들을 다 알지 않니.
자식은 낳아 놓고 밥먹이고 옷 입히면 절로 크는 거였던 그 퉁명스럽고 가난했던 시절에 우리는 대부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쯤 아버지가 위암수술을 하시면서 운도 내리막길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제일 그만했었지.

반백년을 같이 살고 있는 친구들아.
바쁜 사람 안 건드린다고 전화 대신 편지 쓰는 친구야.
40대가 되고 50대를 넘겨 환갑을 넘긴 친구들아.
만날 때 마다 얼굴색 살펴 서로 얼만큼 늙어있나 곁눈질하면서 말은 안하는 친구들아.

나는 왜 이렇게 너희들한테 많이 미안할까.
왜 이렇게 마음이 힘이 들까.

지난 금요일 친구야.
아직은 믿는 사람으로 등록도 안된 사람인데 너는 아름다운 관음보살상을 그려 들고 와 미리내 걸어주었다. 불교 신자들인 너희들이 같이 앉아 불경을 외우며 나와 내 아이를 축원해 주는데, 뻔때없는 나, 딴청 필수 없어 옆에서 어정거리다가 문득 보니,
친구들아
너희들 기도가 너무나 절실하고 진지해서 거의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다 끝난 거지 싶어져 좋아했더니 아이고 친구야, 그때부터 절을 백팔번을 하겠다고??? 엄마야아아.
친구야 친구야

' 야 나 절 못해. 발가락 아파서 절 못해. '
' 응 그럼 하지 마.우리가 할게. '
' 야 그걸 언제 다할려구. '
' 아냐 십오분이면 돼. '
그러고 너희들이 절을 시작하는데
아아 관음보살님.
그 전심전력 진실한 두 얼굴.
그만 눈물이 왈칵 나와서 마루로 나가 딴청을 피웠지.

친구야친구야.
고맙고 고마워.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너희들한테 많이 미안하니.
나는 너희들이 왜 이리 애달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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