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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드라마 비평_운명처럼 널 사랑해(MBC)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드라마 비평_운명처럼 널 사랑해(MBC)
내용 현실성 떨어지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
외국원작 로맨틱코미디드라마의 허실(虛實)

197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 한 방송사에서 텔레비전연속극으로 ‘꽃네’라는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가 나가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 그 시절까지만 해도 별로 들어보지 못한 표절이라는 것이다. ‘젠노하나’(돈의 꽃)라는 일본드라마를 그대로 베꼈다는 기사가 터졌다. 그것도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던 한 일본신문 특파원이 제보한 사건이었다. 변명할 여지조차 없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진상조사 결과 담당 PD가 일본에 출장 가서 문제의 드라마 대본을 입수했고, 그것을 작가에게 던져주면서 각색토록 한 것이었다. 일테면 일본의 온천도시를 한국의 온양온천으로 바꿔놓는 정도였다. 드라마는 즉각 중단되었고 작가는 징계를 면치 못했다. 그 후로 작품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 무렵만 해도 일본에서 어떤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는지 일반인들이 알기가 어려웠고, 또 합법적으로 외국원작을 사들여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던 때라 설마 어떠랴 하고 벌인 일이었다. 우리가 외국작품을 들여와 각색해서 드라마로 만드는 일은 이렇게 떳떳하지 못하게 시작된 셈이다.
지금도 가끔 표절시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외국원작을 드라마로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사들여서 만들고 있는 세상이다. ‘하얀 거탑’ 등 주로 일본의 몇몇 드라마들이 국내에서 리메이크 되었고, 우리 드라마의 원작도 그들이 사 가서 만들기도 했다.

외국드라마, 수입원작의 드라마라고 무조건 먹히지 않아

따라서 남의 나라 원작을 왜 드라마로 만드느냐는 식으로 폐쇄적이고 편협한 문화쇄국주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원작을 들여와서 리메이크 할만한, 그럴 가치가 충분한 드라마였느냐 하는 점이다.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신선하다고 해서, 그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우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상업적인 생각만으로 외국의 원작을 드라마로 만드는 경우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국내의 창작드라마들이 소재빈곤에 시달린다 해도 그만한 드라마들은 굳이 외국 것을 빌려오지 않아도 우리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데도 하나의 마케팅으로 외국원작을 들여와서 성공한 예도 그리 많지 않았다. 왜 성공하지 못할까? 여러 가지 원인이나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건 현실성일 것이다. 아무리 우리 현실에 맞게 각색한다 해도 어딘가 모르게 어쩐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사고방식이나 행태에 있어서 우리현실에선 전혀 있을 수 없는 환상을 봐주는 데는 당연히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히느냐가 외국원작 성공 여부의 관건일 텐데, 매번 이 문제에 있어 실패하는 것을 보아왔다. 특히 외국의 원작이 이른바 로맨틱코미디일 때, 거의 대부분이 이 현실성 때문에 드라마가 아닌 코미디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어차피 웃자고 하는 명랑드라마이고 로맨틱한 코미디 식으로 나가는 건데 황당하면 어떠랴 싶겠지만, 불행히도 드라마는 마음을 흔들지 못하면 모두 가짜이며 이용자가 믿지 않는 특성이 있다.

로맨틱코미디의 기본도 현실성이다

이번에 MBC-TV가 수목드라마로 내보내고 있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대만에서 방송된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역시 로맨틱코미디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 한번 웃고 말자는 식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용의주도한 현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무리 로맨틱코미디라 해도 납득이 가는 현실감이 깔려 있지 않으면, 그저 웃고 말자는 식이지만 우선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있을 수도 없는 엉터리 가짜이거나 유치하고 한심한 장난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진지성과는 거리가 먼 낭만과 판타지와 명랑드라마를 내세울수록 허점 없는 현실감이 주어져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는데, ‘운명처럼 널 사랑해’도 역시 그 점에서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좋아하는 과정을 거쳐 결혼하는 순서가 아니라, 서로 모르는 남녀가 하룻밤 사고를 쳐서 결혼하게 된다고? 두 남녀주인공(장혁, 장나라)의 일거수일투족이 현실성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주제가 보이지 않는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로만 끝나서는 외국원작까지 사들여 드라마로 만들 하등의 의미가 없다. 최소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가치를 말하는지 등등에 관한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보여야만 로맨틱코미디가 성립되는 것이다. 다만 그 주제의 운반이 가볍고 경쾌하고 명랑하고 밝게 나간다는 것뿐이다. 무조건 외국의 것을 빌려왔다거나, 우리로선 보기 드문 기상천외의 상황과 아이디어로 드라마가 진행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현실감이 없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방송된 국내산 로맨틱코미디드라마의 경우도 바로 이 현실성의 결여와 주제의 실종으로 크게 호응을 받지 못했는데, 하물며 모든 기본정서와 드라마적 환경이 낯선 외국원작이야 오죽 하겠는가. 외국드라마 또는 외국원작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라는 착각도 버려야겠지만, 현실성 없는 기발하고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때로 먹힐 것이라는 생각도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이다. 비교적 성공한 축에 드는 텔레비전드라마, 특히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판타지나 로맨틱코미디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어떤 형태로든 현실성이 들어있었다. 철저한 계산에 의한 낭만과 황당함의 전개가 전제다. 비록 판타지에 로맨틱코미디지만 그래서 일반 드라마이용자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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