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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2022 시청자 평가단] 태종 이방원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2022 시청자 평가단] 태종 이방원
내용 사실 이걸 대하사극이라고 해야 할 지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다. 기존의 대하사극들과 달리 30부작으로, 때문에 상당히 중대한 사건들이 간단하게 처리되는 경향이 있다. 대신 기존 역사에선 사소하다고 볼 수 있는 사건들, 인물간의 관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훗날 이방원이 칼을 들이대야 하는 소중한 존재들과 친밀한 관계성을 쌓는 이야기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사이사이 빈틈없이 자리해있다. 그런 소중한 이들과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가 대립할 때, 그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과거 이 시대를 다뤘던 이야기들과 다른 인물상을 보여주었던 점이다. 과거 최고의 무장이자 철혈의 무인, 강력한 지도자처럼 그려졌던 이성계는 이 드라마에서 감성적인 면이 크게 부각된다. 이건 그 아들인 이방원도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은 그러한 철혈의 군주다운 모습보다는 유약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 흔들리고, 고민하고, 때로는 감정에 휘둘려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방원의 심리적 몰락을 다룬 드라마이기에 이런 점이 부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에 반대로, 그들의 부인들은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강단 있는 모습이 부각된다. 신덕왕후도 원경왕후도 역사적 측면으로만 봐도 여걸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부들이지만 그걸 이렇게까지 조명해준 드라마가 있었나 싶다. 과거였다면 그들의 남자 형제, 아버지들에게 주어졌던 역할들을 이 드라마에서는 두 부인들이 직접 수행한다. 그 전까지 부인들의 역할은 그저 자리에 앉아서 성질을 내거나 남자형제, 아버지들에게 조언을 부탁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여말선초 여성들의 지위 등을 충분히 반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현대의 여성 지위 향상 분위기 또한 반영이 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30부작 내내 이방원이 겪는 심리적 몰락의 방향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칼같이 쳐내는 소중한 존재가 누구냐만 달라질 뿐(소중함의 정도는 깊어지지만) 결국 이방원의 선택은 정해져있고(역사적으로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끝없이 같은 방식을 반복하는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이건 대하사극의 틀을 가지고 개인의 심리를 주제로 삼은 한계가 아닐까. 하지만 쉽지 않은 주제와 플롯, 그것도 요새 이야기 매체에서는 선호되지 않는 주제로 끝까지 퀄리티 있고 몰입감 있게 진행해나간 점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이를 가로막는 소중한 존재들에게 망설임 없이 잔혹하게 칼을 빼들었지만, 그리고 그것이 일견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 끝에 사람으로서 제 곁에 남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너진 자의 모습. 그런 자신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대하사극의 이야기성과 개인의 몰락을 심도 있게 보여준 좋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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