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히스토리(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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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동의보감’
드라마가 거꾸로 책으로 나오다 TV드라마의 세계에서는 오리지널이 아닌 원작을 토대로 각색을 해서 만드는 경우가 더러 있다. 원작을 각색하는 대상으로는 비교적 짧은 단편소설로부터 긴 대하소설도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이른바 ‘웹툰’이나 만화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그만큼 소재의 다양화 요구와 오리지널드라마의 빈곤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시청자 입장에서야 뭐면 어떠냐 싶기도 하지만 TV드라마라는 독자적인 문예사조의 측면에서 보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소재든 내용이든 표현이든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지 소설이나 만화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각색과정에서 TV드라마의 본령인 불특정다수의 수용자에게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순기능을 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원칙적으로는 드라마로서의 창작물, 즉 오리지널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컬러TV시대와 함께 KBS의 ‘TV문학관’이 신설되면서 많은 한국의 유명단편소설들이 TV드라마로 각색되어 방송되었다. 물론 그 이전인 1970년대의 비교적 TV드라마 초기에 해당되는 기간에도 이미 흑백드라마로 각색 방송된 작품들이 많았고, 바야흐로 컬러시대를 맞아 새롭게 한국단편문학을 조명하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졌었다. 사람들은 그 당시 컬러로 펼쳐지는 문학성 짙은 단편소설들을 TV드라마로 보면서 큰 감동을 나타내기도 했다. 새삼 한국문학의 향기를 호흡하는 문예적 공헌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물론 이런 식의 단편소설을 각색하는 드라마는 일본이 먼저 하고 있어서 우리 방송이, 우리 드라마가 그들을 뒤따라간다는 비난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1980년대 무렵만 해도 정권의 입김이 거세던 때라 TV드라마에서 현실 문제를 정면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다루는 데는 나름의 한계에 부딪치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현실을 피해 간 것이 ‘TV문학관’의 편성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 무렵 단편소설을 각색하는 TV드라마의 횡행은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에 못지않은 보이지 않는 배경이 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드라마가 소설 화 되어 베스트셀러도 되고 영화도 되고....한때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 이 때문에 TV드라마가 현실을 도피해 한국문학의 소개라는 피난처를 찾았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그때 단편소설 각색도 좋지만 독자적인 문예사조로서의 오리지널 TV드라마를 더 개발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폭넓은 TV드라마의 발전이 있었을 것이란 견해도 없지 않다. 그 얘기는 곧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각색에 매달리지 않고 풍부한 서사구조와 스토리텔링, 현실적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과 인생의 본질추구에 도전하는 드라마가 더 많았더라면 훗날 드라마의 발전에 훨씬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다. 어쨌거나 단편소설을 비롯한 적잖은 소설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과정인 것처럼 여겨지는 때도 있었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도 여러 차례 각색해 드라마로 방송되었고, 이병주의 ‘지리산’ 유주현의 ‘조선총독부’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 그 밖에도 여러 장편소설들이 드라마 화 되었다. 홍성원의 ‘남과 북’이 ‘6.25’란 제목(방송드라마 ‘남과 북’이 이미 나와 있어서)으로 전파를 타기도 했으며,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과 박영한의 ‘똠방각하’ 등도 TV드라마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이후 한국의 소설들은 왜 TV드라마로 각색되는 경우가 뜸해지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는 소설의 너무나 빈약한 서사구조가 문제가 된다. 지나치게 스토리텔링이 무시된 일종의 말장난에 그치는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각색하기에는 너무나 부담이 크기 때문이었다. 드라마란 본시 이야기산업이라 할 만큼 서사구조를 먹고사는 매체인데, 한국소설의 방향은 점점 스토리텔링을 무시하고 지극히 이야기가 없는 폐쇄적인 개인의 감정을 그리는 것으로 일관하는 사례가 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한 때는 소설이나 만화의 각색 이전에는 오히려 드라마를 다시 소설로 만들거나 책으로 찍어내 히트한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드라마가 소설화 되어 독서시장을 잠식하는 경우다. 그만큼 당시의 드라마들은 소설 못지않게 스토리가 풍부하고 이야기가 탄탄했다는 말도 된다. 처음 라디오드라마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드라마의 출간과 소설화는 일상화되다시피 할 정도로 그 서사구조가 어느 문학작품 못지않았다.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드라마 속에 다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육이오를 거치면서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가 대부분의 드라마 속에 녹아 있었고, 인간의 본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드라마 속에 더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래서 방송드라마로 나오자마자 책으로 출간되거나 빠짐없이 국산영화의 소재로 제공되었다. 한운사의 ‘이 생명 다하도록’을 비롯해 ‘현해탄은 알고 있다’ 시리즈, 최초의 정치드라마 ‘잘 돼갑니다’ 이후로 나온 김교식의 ‘광복 20년’은 당당히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었다. ‘광복 20년’은 무려 10권이 넘는 전집으로 한때 출판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빅 셀러’가 되었다. 해방 후의 정치사를 중심으로 사회문화, 시대적 흐름을 다룬 다큐멘터리드라마로 한국방송드라마 사에 한 획을 그은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김기팔의 ‘정계야화’와 더불어 드라마 못지않게 책으로도 인기를 얻은 시대적 문화콘텐츠로 남았다. 그러니까 소설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각색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못할 만큼 드라마의 내용과 서사구조가 탄탄하고 그 창작성이 뛰어났던 것이다. 물론 이 가운데 정치드라마들은 TV드라마 시대에 들어와서 다시 ‘제1공화국’ ‘제2, 3공화국’ ‘코리아게이트’식으로 다큐멘터리드라마로 만들어졌고, 한때는 소설이나 만화가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막강한 드라마 파워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점점 드라마의 소설화나 영화화는 사라지고 거꾸로 소설이나 만화 등에서 원작을 빌려오는 오늘날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드라마의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반증도 되고, 드라마 내용 등의 개발에 있어서 자원이 고갈되었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광복 20년’과 ‘소설 동의보감’의 전설 출판시장을 뒤집어 놓은 드라마 원작들 이야기의 창작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억지와 거짓이 남발하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드라마가 자꾸만 늘어나 오죽하면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분야인 만화에서까지 원작을 빌려오기로 했을까. 원래 TV드라마작가는 각색자가 아니다. 자신만의 눈으로 인간과 인생을 바라보는 창작자여야 하는 것이지 남이 해 논 이야기를 겨우 드라마로 다시 각색하는 기능공 내지는 기술노동자가 아니란 뜻이다.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모름지기 작가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작가정신 또는 작가의식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1975년에 들어와서 MBC드라마 이은성(李恩成)의 ‘집념’이 나온다. 조선조 시절 한의학 서적인 ‘동의보감’을 쓴 ‘허준’의 이야기다. 그전에 숱한 역사드라마들이 있었다. 주로 궁중사극이 주류를 이루기도 했고, 대부분이 나름대로 왕조실록 등의 기록에 의한 스토리텔링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허준의 이야기는 달랐다. 기록에는 겨우 몇 줄 밖에 남아있지 않은 이야기를 순전히 작가의 새로운 구축에 의해 오리지널 콘텐츠로 탄생시킨 것이다. 한 마디로 작가 이은성의 독창적인 이야기였다. 모든 내용은 작가에 의해 창작되었고, 드라마의 주제와 구성 또한 순전히 작가가 지어낸 창작물이라는 데에 그 의미가 더 컸다. 이후 이 ‘허준’의 이야기는 사실상 작가 이은성의 독점물이 되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서사구조이고 창작물로 남았다. 이 이은성 원작의 ‘허준’ 이야기는 드디어 1980년대 말에 ‘소설 동의보감’이란 책으로 나왔다. 한의학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가 적지 않게 깔렸는데도 사람들은 그때까지 나온 그 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당연히 그 시절은 물론 한참 뒷날까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가 이은성은 이밖에도 많은 드라마들을 썼지만 이 드라마로 나갔던 ‘허준’이야기를 ‘소설 동의보감’으로 다시 쓰다가 마지막 부분만 조금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불후의 명작을 남긴 작가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이 드라마는 리메이크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집념’에서 ‘동의보감’으로, 다시 국민드라마가 되다시피 한 ‘허준’과 나중에 또 ‘구암 허준’으로, 심지어 영화로도 다시 만들어졌지만 드라마로는 무려 네 번이나 제작된 기록을 남겼다. 아마도 드라마를 소설화해서 책으로 낸 것 가운데 ‘광복 20년’ 이후 ‘소설 동의보감’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아닌가 한다. 소설이나 만화의 각색도 좋지만 오리지널 드라마 극본의 콘텐츠개발과 창작에 더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그래야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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