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히스토리(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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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 높았던 특집드라마 시절
언제부턴가 거들떠보지도 않아 1980년대까지만 해도 TV드라마 가운데 이른바 특집드라마가 많았다. 꼭 특집이 아니라도 단막 형태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이 자주 방송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텔레비전드라마의 격조와 품위를 알았고, 텔레비전드라마를 통해 예술적 문화적 욕구를 어느 정도 채워가기도 했었다. 무슨 기념일이다 명절이다 해서 구실만 있으면 거의 의무적으로 특집드라마들을 기획했고, 그런 서비스가 마치 방송의 당연한 책무라도 되는 양 열심히 특집드라마들을 만들었다. 해마다 신년특집은 말할 것도 없고, 연중행사라고 할 수 있는 삼일절과 광복절 특집드라마는 절대로 빠지는 날이 없었을 정도였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가정의 달 5월에도 특집드라마는 반드시 방송되었고, 호국보훈의 달 6월에는 어김없이 육이오특집드라마 등이 편성되었다. 각 방송사의 창사특집, 성탄절과 같은 종교기념일, 아니면 그냥 특집드라마를 위한 특집 극도 만들어 방송했었다. 너도 나도 특집드라마를 마치 드라마의 진수라도 되는 것처럼 엄선하고 엄선해서 틈틈이 선보였다. 계절이 바뀔 때는 물론이고 특별히 주목할 만한 내용이나 소재를 찾았을 때는 그것을 드라마로 보여주기 위해 특집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다. 꼭 무슨 그날을 기려서가 아니라 드라마의 의미와 너도 나도 드라마의 완성도에 도전하는 자세로 특집 극들을 만들어 방송하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했다. 덕분에 당시의 시청자들은 평소 연속극에서 맛보지 못한 TV드라마의 함축미와 분명한 주제를 특집드라마들을 통해 만날 수가 있었다. 완성도 높고 진정성 있는 TV드라마들을 보고 수시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가졌다. 물론 1980년대에는 KBS의 ‘TV문학관’이라는 주로 단편소설을 각색하거나 가끔 창작극까지 곁들여 방송하는 드라마편성이 이미 시작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MBC의 단막극 ‘베스트극장’도 적잖은 반응과 호평을 받으며 이 1980년대에 방송되었다. 구조적으로 단막형태의 특집드라마 내지는 본격적인 단막극 시대를 알리는 창작드라마의 편성으로 TV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한번으로 끝나는 단막극만이 아니라 2부작 또는 3부작이나 길면 5부작의 특집 극들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기도 했다. 특집드라마의 황금시기를 되새기고 돌이켜보면 그때는 누구도 드라마를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한국TV최초의 미니시리즈로 불리는 한운사 극본의 3부작 KBS특집 극도 이때 나왔다. ‘씨’ ‘피’ ‘땀’으로 이어지는 이 최초의 3부작 미니시리즈 ‘나루터 삼대’는 어느 문학작품 못지않은 TV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어놓기에 충분한 화제작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광복절 특집 극으로 ‘족보’를 내놓았다. 원래 미니시리즈란 이같이 2부작, 3부작, 길어봤자 5부작 정도가 정상인데 2000년대 이후 지금은 모두 20부작 전후의 사실상의 연속극들을 미니시리즈라고 부르고 있다. 1980년대 그 무렵 언젠가 KBS는 육이오 특집드라마로 ‘6.25’라는 전쟁물을 방송한 적도 있다. 당시로서는 처음 보는 처절한 전투 신과, 전쟁과 평화와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드라마로 역시 특집이 아니면 보기 힘든 그런 역작을 남겼다. 물론 1980년대 이전 1970년대에도 흑백시대이고 제작여건이 비교적 영세하기는 했지만 특집드라마들은 있었다. 그때마다 정규편성이 아닌 특집드라마들이 조금씩 드라마를 발전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특히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난히 특집 극들이 많이 등장했다. 1980년 한해만 보자. 먼저 새해가 열리자마자 신춘특집드라마로 유 호 극본의 ‘봄이 오는 소리’가 방송되었고, 역시 한 달이 멀다 않고 김수현 극본의 신춘특집 극 ‘입춘대길’이 KBS를 통해 방송된다. 그리고는 3.1절 특집으로 ‘그 하늘 아래’를 내보냈고, 석가탄신일 특집 극으로 ‘망혈’을, 육이오 특집 극으로 ‘순교자’를, 8.15특집으로는 ‘검은 해협’을 방송했었다. MBC 역시 삼일절 특집으로 ‘변명’을 내보내는가 하면 TBC에서 통폐합 되어온 KBS 2TV에서는 신년특집 극으로 김수현 극본의 ‘옛날 나 어릴 적에’를 방송했다. 이때부터 특집드라마의 양상도 과거의 무슨 기념일 등의 특별한 테마와 의미를 살리는 데서, 가족과 가정 또는 일상의 생활에서 오는 인간본질 추구와 인생의 가치를 찾는 쪽으로 서서히 특집드라마의 색깔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특집드라마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우리 TV드라마의 판도와 의미를 바꿔갈 만한 괄목할 드라마들이 바로 이 특집드라마들에서 나왔다. 길어봤자 3부작 정도이지만 사람들에게 텔레비전드라마를 강하게 인식시켰고, 오히려 긴 연속극들보다 훨씬 더 오랜 여운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또렷이 남았다. 1986년에는 3.1절 특집으로 ‘님의 침묵’이 KBS를 통해 방송되었고, 이은성 극본의 ‘등신불’이나 ‘심마니’도 특집드라마로 방송되었다. 추석특집 극 ‘달맞이꽃’ 광복절 특집 극 김기팔 극본의 ‘그의 아내’ 등도 이 무렵에 방송되어 마치 좋은 작가들이 특집드라마를 쓰고, 간간이 특집드라마를 써야 좋은 작가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스승의 날 특집드라마가 나오는가 하면 어버이날이나 심지어 해양드라마나 산악드라마까지도 특집으로 방송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각 방송사의 특집드라마 기획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따로 특집드라마를 만들기 보다는 마지못해 정규편성에 내용을 특집으로 바꾸는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더니 그나마 1990대 중반에 접어들고부터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다만 뒤늦게 출발한 SBS에서 창사특집 명목으로 몇 해 동안 마음먹고 특집드라마를 편성하는 정도였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작가 그런 드라마를 만들려는 방송사가 있는가 이때 나온 SBS의 특집드라마들은 대체로 김수현 극본의 창사특집 극으로 가족드라마가 주류를 이뤘고 불후의 명작 TV드라마로 남은 작품들이 몇몇 있었다. 부모자식간의 문제와 인간의 노후를 다룬 ‘어디로 가나’를 비롯해 ‘은사시 나무’ ‘홍소장의 가을’ 등이 모두 이 무렵에 나왔고, 그때마다 각종 극본 상을 휩쓸 정도로 큰 반향과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두고두고 비중 있는 TV드라마로 남았다. 과거처럼 TV드라마의 진정성과 가치를 생각하는 방송사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작품성이 담보되는 드라마를 쓸 작가가 과연 있기나 있는 것일까. 어떤 드라마를 써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작가인지 스스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청자들이 잠시 열광하는 드라마를 써내는 사람은 한낱 기능공이 아닌 유능한 작가인가. 인간과 인생, 사람이 살아가는 본질에 대해 얼마나 천착하고 세상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작가가 누구인가. 방송사는 그에 대한 관심을 끊은 지가 오래인 듯하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TV특집드라마들처럼 진정한 의미의 드라마작가들은 사라지고 이제는 마치 천방지축 칼만 휘두르는 일종의 기술자들만 우대 받고, 그들이 써내는 가짜이야기들을 긴 연속극 형태로만 보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세월만 되풀이되는듯하다 고나 할까. 반드시 특집만이 좋은 드라마는 아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특집보다는 오히려 일반의 접촉 빈도가 높은 정규편성드라마가 더 중요하고 질이 높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특집드라마를 만들 듯이 뚜렷한 메시지와 작자의식이 갖춰졌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테마와 이야기의 내용을 엮어내는 사람이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지켜보고 관찰한 결과를 드라마를 통해 투영하는 사람이다. 모든 TV드라마는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만 오로지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황당무계하고 해괴망측한 지어내는 이야기는 모두 드라마로서의 가치가 없는 일종의 사기놀음에 불과하다. 무슨 드라마를 쓰려고 하고 지금 무슨 드라마를 만들려고 하는가. 특집드라마 황금시대를 돌아보며 새삼 드라마의 본령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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