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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평_한국방송의 보도문제와 드라마
내용 한국방송의 보도문제와 드라마


이것은 드라마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한국의 방송사들의 보도문제와 드라마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하겠지.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한국의 방송사들이 보도를 제대로 못하는, 비과학적이고 언론의 정도를 벗어나거나 미숙한 보도를 마구 해대는 것과, 엉터리드라마들을 양산해내는 것과, 방송의 자세나 태도 면에서 보면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보도는 누가 뭐래도 사실에 입각하고, 어떤 수식이나 감정 없이 냉정하게 사실만 전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확한 근거에 의거,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이 방송보도고 뉴스다. 사실과 근거에 의거하지 않거나 그렇지 못한 표현은 보도가 아니다. 기사도 아니다. 기자가 감정에 휩쓸리거나 ‘팩트’가 아닌 표현을 쓴다는 것은 보도일 수 없다. 어떤 경우든 방송뉴스를 듣거나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흥분하게 하거나 감정적으로 자극하게 해서는 안 된다. 기자는 정확한 사실만을 취재해 알려주는 것이 일이다. 가령 아무리 안타까운 사건이라 하더라도 기사는 “안타깝게” “안타까운” 등의 수식을 붙이거나 심정적인 표현을 써선 안 된다. 정확한 ‘팩트’만을 전해야 하고, 안타깝고 아니고는 그 보도사실이 말해주는 것이지 자신의 느낌이나 기분을 쓰는 게 기사인가. 물론 논평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방송보도에서 과연 그렇게 정확한 보도문장을 유지한 기자가 몇이나 될까.
예전과 달리 갈수록 기사 아닌 기사를 많이 접한다. 도무지 기사인지 수필인지 모를 정도로, 취재도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은 기사체가 난무하다시피 하고 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있을 수도 없는 일’ 등의 표현은 글쎄 수필이나 소설을 쓸 때나 더러 쓰는 것이지 기사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아니라 거의 소설이나 수필의 느낌을 주는 엉터리 기사를 한국의 방송보도에서 자주 접한다. 도대체 기사체(記事體)란 어떤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취재에 있어서의 금도(襟度)는 무엇인지도 배우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흥분 일변도로 쓰면 되는 줄 알고 있는 방송기자들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문장 하나 정확히 다룰 줄 모른다. 용어나 어휘선택에 있어 방송의 경우 기자가 정확하지 못하면 우리의 언어는 왜곡 또는 오염될 수밖에 없다. ‘침수’와 ‘침몰’은 엄연히 다르다.


드디어 사고 친 여객선 침몰보도


그런데도 한동안 구별을 못하고 혼동을 거듭했었다. 마치 다른 방송프로그램의 출연자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사람마다 ‘가르치다’를 ‘가리키다’로 해도 지적 없이 넘어가는 것과 같다. 이제 방송에서는 ‘가르치다’는 어느새 사라지고 ‘가리키다’만 남아있을 판이다. 용어의 잘못은 이뿐만 아니다. 이미 몇 년 전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만 해도 그렇다. 설사 주최 측이 ‘촛불문화제’라 내세워도, 방송보도의 공정하고 정확한 표현은 ‘촛불집회’ 또는 ‘촛불시위’가 맞다. 문화제라니? 문화제가 그런 것인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받아 쓴 결과다. 이밖에도 부정확하거나 잘 못된 표현은 수두룩하다. 예컨대 재벌부인이 별세하면 왜 ‘아무개 여사’인가. 왜 재벌이나 고위관직 또는 권력 깨나 가진 사람의 부인은 ‘여사’라고 불러주는가. 한글이야말로 우리의 긍지이자 자존심인데 왜 헌법재판소나 법원, 선관위 등 주요국가기관의 배지나 깃발 가운데는 한자(漢字)가 들어있는가. 그러고도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겨우 국회의원 배지에서나 한자가 한글로 바뀌었을 정도로 무신경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방송에서의 언어, 방송보도만은 정확해야 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이번엔 종편채널 MBN에서 ‘세월호’ 침몰사건 보도와 관련해 보도국장이 방송에 직접 나와 공식 사과했다. 취재대상자가 누구한테 들었다는 말을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해경이 민간잠수부들의 구조작업을 방해한다든지, 배안에 사람이 살아있다든지....희생자 가족들을 분노케 하고 혼란에 빠트리고, 구조당국을 불신하게 만드는 완전 소설을 기사로 써서 보도한 것이다. JTBC도 역시 사과했다. 기자가 생존여학생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어디 종편뿐이겠는가. 사고란 언제나 뜻밖에 갑자기 일어나기 때문에 보도 역시 우왕좌왕 의욕이 지나쳐서 오보나 실수를 하는 경우가 이번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령 여객선 침몰 원인에 대해서도 경찰의 정확한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불려 앉혀놓고 여러 가지를 추정 또는 이리저리 꿰맞추고 있다. 이런 것이 소설 쓰는 것하고 뭐가 다른가. 이번 사건보도뿐만 아니라 종편에선 평소에도 주로 정치 관련 시사토크에서 그랬다. 정부의 의중이 뭔지, 당사자인 특정정치인의 의견은 뭔지 물어본 것도 아니면서 거기 나온 정치평론가들이란 사람들에게 남의 생각을 점쳐 달라는 식이다. 그것도 소위 문화평론가란 사람들도 정치이야기를 해댄다. 엄연히 당사자가 있고, 그가 직접 뭐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제3자더러 분석하라니! 종편에선 주로 그런 걸 정치방송, 보도성격의 프로그램이라고 하고 있다. 지금 버젓이 있는 사람의 의중을 그 사람이 말한 것도 아닌데 제3자에게 물어보는 건 무슨 행위인가. 어떤 경우라도 보도성격의 프로그램은 추측이나 짐작이어선 안 된다. 그것은 이미 보도라고 할 수 없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경우 한동안 현장접근도 못하면서 바다만 바라보다 남한테 전해 듣거나 주워듣기만 하면서 뉴스시간을 때운 날이 며칠 되지 않았던가. 그 결과 보도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불신을 가중시키고 차분함을 잃게 만들었다. 그만큼 방송보도의 영향력은 막중하다. 직접취재에 의한 정확하고 공정한, 책임질 수 있는 기사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3류 보도, 3류 드라마의 방송


그 나라 국민성이나 문화를 어떻게 만드는가도 방송보도의 역할일 수 있다. 얼마나 민주적으로 생각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합리적인 민주시민을 만드는가도 방송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TV드라마도 보도와 함께 방송의 역기능 확산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이란 본질적으로 영화나 연극, 또는 소설이나 책처럼 특정소수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다. 불특정 다수란 그 속에 온갖 계층이 다 함께, 또는 한꺼번에 본다는 말이 된다. 어린애도 있고, 노인도 있고, 배운 사람도 있고, 못 배운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판단력이 좀 모자라는 사람도 있고,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모든 특정하지 않은 다수가 언제, 어디서나 한꺼번에,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텔레비전드라마다. 화면 한쪽 귀퉁이에 연령제한 표시가 뜨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이다. 그걸 핑계로 버젓이 남편이 있는 유부녀가 스무 살 연하의 젊은 애랑 바람을 피워? 그것도 그냥 바람이 아니라 키스에 스킨십에 베드신에....아무리 탐미주의고 애정지상주의라도 불특정 다수가 대상인 방송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소재와 표현에 있어 스스로의 통제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나 소재의 자유를 억압하는 문제가 아니다. 매체가 갖는 본질적인 한계고 덕목이고 특성이다. 글쎄 소재나 표현에 있어 제약 없이 하고 싶으면 다른 매체, 즉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매체로 가라. 그런 기본도 모르거나 무시하면서 방송을 하겠다는 오늘날 한국 방송의 사고방식과 인식이 마치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와 같은 방송보도의 문제와 무엇이 다른가.
방송은 이미 오랜 전부터 우리 사회와 인간성을 황폐화 또는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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