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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히스토리(7)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히스토리(7)
내용 TV드라마 인문학과 공학의 공존
1990년대 끝 무렵의 드라마 변화


1990년대의 끝 무렵, 더 정확히 말해 1997년 이후 1999년까지의 TV드라마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변화가 없는 듯,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공동 집필’의 등장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듣도 보도 못한 용어가 슬그머니 나타난 것이다. 우선 MBC의 월화미니시리즈 ‘별은 내 가슴에’가 김기호, 이선미라는 두 사람의 작가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부부사이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흥행에 비교적 성공했다고 믿은 MBC는 다시 같은 해에 이들에게 드라마 하나를 더 맡겨 쓰게 한다. 그러더니 곧 이어 SBS가 연달아 3편의 드라마에 각각 2,3명의 작가를 투입시킨다. 수목드라마 ‘모델’에 이윤택, 이선희, 이경희를 함께 집필하게 하고, 주말특별기획 ‘아름다운 그녀’에서는 권윤경과 김효선을 투입하고, 역시 같은 해 1997년 연말까지 방송한 수목드라마 ‘달팽이’에는 송지나와 김광식 두 사람을 함께 쓰게 한다. 1998년에는 KBS2의 ‘야망의 전설’(최완규, 김명호 극본), 월화미니시리즈 ‘순수’(홍영희, 최호연 극본)와, MBC의 월화미니시리즈 ‘애드버킷’(한태훈, 김영현 극본)도 사정이야 어쨌든 두 명의 작가들이 공동집필한 것으로 되어있다. 한 작품을 둘이서 쓰게 하는 일은 그때까지 최소한 시리즈물에는 없던 일이었다. 하나의 제목 아래, 나오는 출연자도 고정적이고 같은 무대와 같은 배경에서 매회 상황과 에피소드만 바뀌는 형태의 시추에이션드라마(예컨대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나 ‘수사반장’ 같은 경우)에서야 당연히 매회 단막극 형식이니까 매번 작가가 바뀌거나 해서 공동 집필이란 말이 가능하다. 흔히 ‘시즌 제’ 운운하는 미국드라마들의 공동 집필이란 말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한 작가의 창작성과 작품의식 또는 작가정신을 일관되게 담아야 하는 드라마에서는 한 마디로 불가능한 공동 집필이란 단어가 이 무렵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드라마에 있어서 작가는 무엇인가. 또 그 작가가 극본을 쓰는 드라마란 무엇인가. 극본이란 그 작가의 독창적인 생각과 창작, 즉 철학과 가치관을 사려는 것이지 단순히 여러 사람이 의논한 결과를 활자를 두드리거나 써내는 일개 타이피스트와 같은 노동력을 사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공동 집필’ 등장


아무리 부부든, 선후배든, 스승과 제자이든, 형제자매지간이든, 부모자식간이든 두 사람이 한 드라마를 쓴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드라마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하거나 작가의 고유영역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어떤 경우든 하나의 작품을 두 사람이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둘이서 한 드라마를 함께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 순간 작가란 하나의 기능공으로 전락하는 것이고, 드라마 역시 작가의 작품에서 인위적으로 장면을 바꾸거나, 짜깁기 하거나, 뒤죽박죽 단어들이나 재배치는 하는 한낱 심부름꾼 정도로 전락하는 것이다. 애당초 사려 했던 그 작가의 정신이나 창작으로서의 가치나 철학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일종의 기술자만 남는다. 엄밀히 말해 그러려면 작가란 필요가 없어진다. 누구든 여럿이 의논한 결과를 글자만 충실히 잘 쳐주는 인력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애당초 작가에게 원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갖고 있는 인간본질에 대한 추구와 사람이 살아가는 일, 즉 인생에 대한 작가로서의 그만의 생각을 듣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근데 작가가 그런 것은 하지도 않고 그저 지어내는 이야기만 꿰맞추는 봉제업자 또는 바느질 장이로 남겠다는 것이 공동 집필의 저의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부부관계이든, 선후배관계이든, 스승과 제자이든, 형제자매나 부모자식간이라도 서로 같거나 나눌 수 없는 것이 창작의 세계라야 맞다. 그런데 공동 작업이란 말이 이 1990년대 끝 무렵에 등장해 실제로 두 세 사람의 작가들이 함께 또는 나눠썼다고 버젓이 공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 무렵부터 드라마에서의 작가란 마치 창작성은커녕 여럿이서 통박 굴린 이야기를 대본 화 해주는 타이피스트 정도로 인식되는 잘못 된 풍조가 나타나게 된다. 설사 공동 집필을 한다 해도 막상 극본을 쓰게 되면 완벽한 공동 집필이란 있을 수가 없다. 어느 부분은 누가 쓰고, 이번 회는 누가 쓴다고 해도 그 부분은 결국 혼자서 쓰는 것이지 같이 쓰는 것이 아니다. 함께 토론하고 그 결과를 조금씩 나눠 썼다고 해서 공동 집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작가의 작업이 아닐 것이다. 드라마작가란 인간본질에 대한 추구와 인생에 대한 천착에서 우러나는 나름의 독창적인 정신과 철학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가 드라마마다 작가를 달리하는 것은 바로 그 작가마다의 가치와 의식을 보려하기 때문이다. 누가 타이피스트로 했느냐를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글자나 치고 장면을 이리저리 바꾸는 공학적 기능인 또는 숙련된 기술자로만 부려먹겠다는 것은 드라마가 인문학에서 공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풍토변화 속에서도 드라마는 홍수


이 무렵이 바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작가만의 독창적인 철학과 가치나 정신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거짓으로 지어내는 이야기만을 엮어서 장사만 하면 그만이라는 상업적 논리의 시대를 열어가는 일대 전환기적 초입이 된다. 그 후 이런 풍조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만연해져 공동 집필이란 드라마가 상당부분 잠식해 오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렇게 되는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작가다운 작가의 부족이 그 첫째다. 원래 작가가 해야 할 구실을 제대로 해내는 작가의 빈곤문제다. 인간의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가치와 리얼리티에 천착한 결과 그 사람만이 갖는 향기와 가치와 철학과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드라마를 쓸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자원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또 워낙 길이가 길고 분량이 적잖은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작업을 감당해야 할 물리적 인원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드라마의 작가주의에서 기획 또는 제작자 주도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이런 폐단이 생겨나지 않았는지. 실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종래의 드라마의 수준과 기능에서 상당부분 일탈하는 부정적인 풍토를 만들어내었고, 드라마의 본래 기능인 인간본질의 추구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즉 인생에 대한 진정성과 감동이 없는 엉터리 지어낸 이야기들이 마치 드라마인양 한참 오도되는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대세에 큰 문제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드라마들이 많이 방송되었다. 1997년의 KBS일일연속극 ‘정 때문에’(문영남 극본, 김현준 한준서 연출), KBS2의 주말연속극 ‘파랑새는 있다’(김운경 극본, 전 산 연출), MBC의 미니시리즈 ‘의가형제’(김지수 극본, 신호균 연출), 주말연속극 ‘신데렐라’(정성주 극본, 이창순 연출), ‘그대 그리고 나’(김정수 극본, 최종수 연출) 등이 있었다. 그리고 1998년에는 KBS2의 ‘거짓말’(노희경 극본, 표민수 연출), MBC의 미니시리즈 ‘해바라기’(인정옥 극본, 이진석 연출), SBS의 ‘백야 3.98’(강은경 극본, 김종학 연출)과 월화드라마 ‘은실이’(이금림 극본, 성준기 연출)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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