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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TV드라마 인문학(18)-이은성(4) 상세보기 - 제목,내용,파일,비밀번호 정보 제공
TV드라마 인문학(18)-이은성(4)
내용 ‘소설 동의보감’과 미완성 ‘아리랑’

이은성은 드라마 ‘허준’의 원작을 드디어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소설이 드라마로 된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드라마가 소설로 다시 태어난 예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드라마를 소설화 한 것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마도 ‘소설 동의보감’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전후무한 일이었다. ‘소설 동의보감’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 어떤 인기소설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면서 드라마 ‘허준’은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한의학에 관한 따분한 이야기일 거라는 통념을 깨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극적인 장치가 쉴 틈 없이 전편에 깔려 있으니 독자들은 그 어떤 소설보다 재미있어 했다. 일반적으로 보아온 소설에 비해 워낙 흥미진진하게 짜여 진 드라마를 소설로 바꿔놨으니 얼마나 재미가 있었겠는가. 거기다 해박한 한의학과 한약재에 관한 풍부한 지식까지. 군더더기 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드라마 적인 이야기는 이미 나와 있는 소설 가운데서 그리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어쩌다 가끔 인기드라마를 소설로 내놓아도 드라마만큼 주목을 끄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소설 동의보감’만은 달랐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우리 소설에서 ‘소설 동의보감’ 만큼 풍부한 서사구조를 못 만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연속극 한편의 원고 분량은 그 어떤 장편대하소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많다.

“드라마가 소설로 다시 태어나 베스트셀러가 되다”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분량이다. 그 속에 심리묘사나 지문(설명묘사)이 많은 소설과 달리 드라마는 온통 움직임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소설도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난 지문과 대사로 표현되는 이야기들로 원고지를 채우는 것이 드라마, 특히 연속극이다. 그걸 다시 소설로 옮겼으니 사람들은 그 풍부한 스토리텔링과 박진감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많은 원고분량을 작가 이은성은 대부분 방송사 작가실에서 써서 넘겼다. 방송사 작가실이란 집필을 위한 장소이긴 하지만 그 분위기는 때로 시장바닥 같은 곳이다. 여기저기서 떠들고 바둑도 두고, 한쪽 구석에선 큰소리로 환담도 하고 전화기에다 대고 고래고래 고함도 지르는 그런 곳이다. 책상은 누구 임자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나 급히 쓸 것이 있으면 앉아서 쓰면 되는 싸구려 책상이 벽을 보고 옆으로 쭉 놓여있다. 그 싸구려 책상 하나를 끌어안고 작가 이은성은 그 숱한 드라마도 썼고 ‘소설 동의보감’도 썼다. 작가의 일이란 늘 일정치가 않다. 월급쟁이들처럼 출퇴근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일이 없을 땐 빈둥거리지만 원고작업에 쫓길 땐 며칠이고 밤을 새는 것이 예사였다. 특히 방송원고는 시간을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끝날 때까지 숙식을 방송사 작가실에서 해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한 가지 일이 끝나고 나면 집으로 가든 술집으로 가든 흩어져 간다. 일이 없는 동안 이은성은 당시 방송사들이 몰려있던 여의도를 떠나 주로 신촌 부근에서 혼자서 마시거나 술친구를 불러내 둘이서 마시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쩌다 작가실 동료들과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저 충청도 서해의 섬에 바다낚시를 다니기도 했다. 그는 욕심이 많았다. 고기를 많이 낚고 싶어서 누구보다 낚시에 몰두하기도 했고, 뜻대로 써지지 않을 땐 꺼이꺼이 울기도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다음 작품을 생각할 줄도 알았다.
“가슴으로 쓰던 작가 가슴으로 돌아가다”

별로 많지도 않은 머리숱을 빗어 다듬는 것이 아니라 거울을 들여다보고 일부러 헝클어버리는 것이 버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료작가 한 사람과 술을 마시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우리 그동안 술 너무 마셨어. 내 이번에 작품 하나 만들어낼게!”
그때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로 되어있던 해였다. 서울올림픽 기념특집극 ‘아리랑’을 쓰기로 KBS와 계약을 맺은 직후였다. 마음먹고 걸작을 하나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번에는 따로 호텔방을 잡아 거기서 쓰기로 했다. 그러나 그 ‘아리랑’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1988년 1월 30일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껴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심장수술에 들어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다. 그는 그 길로 세상을 떠났다. 심장으로 드라마를 쓰던 작가 이은성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향년 54세, 한창 더 써야 할 나이였다. 이듬해 드라마 ‘집념’(허준)을 다시 소설로 쓴 문제의 ‘소설 동의보감’ 상, 중, 하 세권이 책으로 나왔다. 그때는 이미 ‘소설 동의보감’이 수백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었다. 사실은 작가의 사망으로 미완성인 채로 간행된 책이었지만, 그 책이 팔려서 그나마 유가족을 지키는 밑천이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은 이은성의 드라마로는 ‘인간의 벽’ ‘달아달아 밝은 달아’ ‘독 짓는 늙은이’ ‘소망’ ‘행복의 문’ ‘사랑하는 사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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