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흐드러진데 | |
내용 |
영산홍은 흐드러지다 못해 먼저 핀 건 벌써 꺼줄해지고 있고 모란이 향내 풍기며 한창이다.
금년에는 꽃시장 가는 것도 벅차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와 운전으로 도와주는 홍기사를 보내 매년 하는 베고니아 화분 채우기를 했고그것도 이제 제자리잡아 싱싱한 꽃을 피우고 있는데 나는 영 클클하다. 쿠키 밥 뜨러, 커피 만들러, 한약 챙기러, 하루에도 몇차례 씩 거실을 가로 질러 왕복하면서 마당의 꽃들을 흘끈거리며 보는데 그저 '다 폈네,..곧 지겠네, 자리 잡았네. 흰색을 좀 더 섞지.... 마음 속으로 그럴 뿐 별 감흥이 없다.. 보고싶은 사람도 없을 뿐더러 보고싶지는 않아도 볼만한 사람조차 없고, 전화하고 싶은 사람도 없고, 딱히 붙잡고 볼만한 책도 없고, 한번 나가볼까 싶다가 곰방 나가기 싫어져 버리고 뭔지 모르게 클클하기만 하다. 그냥 어디서 주워 담은 건지 모르는 '오늘 내가 가고 내일 네가 온다' 라는 말을 두세차례씩 마음으로 주절거리며 하루 해를 보낸다 그 저 뭔지 모르게 클클할 뿐이다. 사람 말을 못할 뿐이지 거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 쿠키는 아침 달래서 얻어먹고는 침대에 똬리처럼 동글게 몸을 말고 식후 달콤한 잠을 자고 있다. 한결같이 착하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쿠키가 유일한 나의 기쁨이고 평안이다. '왜 이렇게 이쁜 거야' '이렇게 이뻐도 되는 거야?' '너무 심하게 이쁜 거 아냐?' 요즘은 쿠키와 엉겨붙어 있을 때만 살아있는 것 같다. 꽃은 흐드러진데 나는 반쯤은 죽은 사람 같다.. 2008.05.03. |
---|---|
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