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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드라마아트홀

Kim Soo Hyun Drama 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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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記 1
내용 작업 테이블이 마주하고 있는 北窓 바깥 숲이 어느 결에 나무잎들을 거의 다 잃어 대머리가 되어가는 것처럼 성글어져 있다. 어제는 때묻은 양털같은 구름이 덮여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오늘은 맑다.
거의 두달만에 어제는 운동을 나갔었는데 파랗던 잔디는 그동안 완전히 누렁 담요가 돼 있있다.
다행이 보슬비가 두어 차례 얼굴을 간지럽혔을 뿐 춥지도 덥지도 않아 오랜만에 하루 잘 놀고 돌아왔는데, 다리는 뻐근하고 어깨쭉지도 불편하고 일은 꾀가 나고 벌써 3신데 원고는 점만 찍어놓은 상태로 신문보며 등 펴고, 물 먹고, 있는대로 늘쩡거리는 참이다. 하기 싫을 때는 안한다 주의니까 늘쩡거리면서도 불안하거나 초조하지는 않다.
지지난 주에 치통으로 정신이 산란해서 대본 한편을 까먹었더니 다른 작가한테서는 늦은 대본 받아 머리에 김 나면서 작업한 일도 있으면서 곽영범 감독 왈
' 다음 주에는 세개 줘유? '
어제 그저께 화요일 리딩에서 괜히 옆구리를 찔렀었다.
일초의 여유도 없이 그야말로 오버랩의 기분으로 나의 대답.
' 쪽대본 한번 받어볼텨? 양양이가 나나보다. 할매 죽일래? '
무슨 좋은 소리 들을 거라고 하하하하. 감독도 지지 않았다.
' 쪽대본 아무나 내보내나유? '
' 요샌 아무나 쪽대본인가보더라. 여러 소리 말구 편집이나 좀 잘해라. 아무 데서나 뚝뚝 잘라서 사람 뒤로 넘어가게 하지 말고 앙? '
' 원고가 긴 걸 어떡해유. '
' 더 써라 더 써라 누가 했니. '
' 내가 했슈. '
' 한번만 더 그따우로 잘라내라. 그럼 내 모가지를 잘라버리 고 말테니까 '
연기자들이 듣다가 와와아 웃어댔다.
오래 호흡을 맞춰온, 고약한 소갈머리까지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감독과 일하는 건 기분 좋다. 워낙에 누구 비위 맞추는 거 젬병에, 마음에 없는 소리 하는 건 빵점에, 같은 말도 부드럽게 다듬어서 하는 기술도 쌍가위표인 나로서는, 때문에 자연히 나라는 사람을 잘 파악하고 있는 감독과 일하는 것이 여러 사람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래서 나는 새 사람을 피한다.
왜냐면 새로 만난 감독이 언제 나를 감당하지 못하겠다 뻗어버릴지 언제 내가 감독을 못 참겠다고 길길이 뛸지 모르기 때문에..
드높은 惡名으로 치자면 나와 일하겠다는 감독이 하나도 없을 법도 한데 그렇지는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잘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곽감독. 한 주에 세 편은 안되지요.
돌아가신 아버지 엄마가 살아 돌아오신다면 모를까..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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