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이 맛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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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10시 30분 쯤 하나 쿠키, 아주머니와 나, 그리고 막내 아우 다섯이 한 차로 출발.
월요일인데도 교통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 두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가면서 아우와 내가 나눈 말. ' 꽃 아직 제대로 안 폈을 거야.아저씨 뻥 알잖아. ' ' 응 나두 그렇게 생각해. 아마 이제 겨우 팝콘 터지고 있을 거야. 평창동이 지금 피고 있으니까. ' 미리내는 기온이 상당히 찬 편이라 윤중로 벚꽃은 물론 한참 서늘해서 윤중로보다도 늦는 평창동까지 다 지고 난 뒤에야 꽃이 피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미리내가 서울 이남에서는 가장 늦게 벚꽃을 보는 곳으로 믿고 있다. ' 아저씨 뻥 알잖아 ' 한 아우의 말은, 아저씨의 ' 꽃 다 폈슈. ' 하는 보고에 신나게 달려갔다가 ' 이제 피기 시작했슈 ' 를 ' 다 폈슈 ' 로 말씀하신 것에 둬차례 속아 본 과거 경험에 근거한다. 그래서, 많이 폈으면 반쯤 폈겠지, 이틀 밤 잘 예정이고 날이 더우니 그동안 더 피어 주겠지 하고 저수지 제방 고개를 넘으며 보니 이게 웬일, 우리 집 쪽이 하얬다. ' 어머나. 별일이다. 꽃 다 폈다 얘. ' ' 이이? 그러네? ' 꽃은 만개 상태다 못해 바람에 눈송이처럼 흩날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세상 뒤죽박죽처럼 날씨 또한 뒤죽박죽 평년 기온보다 6.5도가 높다나 어떻다나, 필 때 아직 멀어 청처짐 졸고있던 우리 집 벚나무들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피느라 준비부족이었는지, 꽃 밥이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작년 벚꽃 보며 내년에는 꽃밥이 더 좋겠지 했는데 말이다. ' 오셨슈? ' 마중나온 아저씨한테 나의 첫마디. ' 아저씨 보리쌀. '' 해놨쥬. '' 찧어서 삶았어요? '' 그럼유. '' 절구는 아저씨가 찧어 주셨어요? '' 아 해놨슈. ' 절구질까지 마나님한테 시키신 눈치였다. ' 에이 아저씨가 하시라니까아아. ' 눈 흘기는 나를 보며 아저씨 그냥 씨익 웃으셨다. 점심은 벚나무 아래 파라솔 펴놓고 집 뒤편에 있는 버섯찌개 집에서 배달해 먹고 저녁밥은 드디어 소원하던 옛날 우리 엄마식 보리밥. 아저씨가 산에서 캐다 놓은 달래넣고 끓인 된장찌개에 달래간장만 넣고 비볐는데, 구수한 보리밥에 달래향이 정말 기가 막혔다. ' 으음 바로 이맛이야. ' 나도 아우도 우리 아줌마도 ' 맛있다 맛있어 맛있어 ' 요란하게 좋아하며 먹는 것으로 동수 아저씨를 흐뭇하게 했다. 밥 숟가락 놓으며 나 ' 근데 아저씨. 보리쌀 얼마나 삶어왔어요? ' 그러고 곧장 냉동고 조사를 해보니 택도 없었다. ' 어어이 아저씨 이게 뭐야아. 몇끼 먹으면 끝이네. '' 더 삶어와유? '' 그럼요. 하안솥 삶어 오세요. 이거 갖구 안돼요. ' 이튿날 아저씨, 다시 가마솥에 불 때서 보리쌀 삶아 오셨다. 화요일 두 끼 보리 밥 잘 해 먹고 ' 아저씨 달래 좀 더 캐다 주세요. 우리 운동하는 친구들 나눠주게. ' 그래서 수요일 아침 젖은 신문지에 싼 달래 다섯 뭉치 들고 운동하러 나가 친구들에게 퍼돌리고 다시 미리내 들어갔다가 어제 7시쯤 평창동에 도착했다. 아침에 출근한 아줌마. ' 근데 선생님 아가씨 오면 보리밥 못해요. 밥도 쪼끔하는데 보리 넣으면 끓으면서 섞이고 어쩌고 저쩌고. ' ' 잉? 뭐라구요? 알아서 해요. 보리밥 안해주면 나 가출할 거야. ' ' 깔깔깔깔깔. ' 오늘도 아주 잘 먹었다. 식탁에서 일어서며 ' 아아 행복하다. 밥도 맛있고 된장도 맛있고 아줌마 열무김치 환상이고. 행복 간단하네 뭐. ' 행복은 아주 간단하다. 영산홍들 꽃봉오리도 벌써 며칠 상관에 터지기 시작할 눈치였는데 다음 주 운동은 포천 쪽이라 금년 봄 영산홍은 놓치지 싶다. 영산홍이 끝나고 나면 6월 중순 쯤에 담장에 넝쿨 장미들이 또 볼만하다. 날씨 탓에 꽃들이 모두 서두르는 추세니 담장 장미도 서두르겠지. 장미 필 때는 청주 친구들이 들어온다. 일을 보고는 못 견디는 우리 아줌마는 몇년을 거의 방치 상태로 고양이 세수만 했던 미리내 집을 이박삼일동안 구석구석 치우고 닦아 때 빼고 광내느라 무지 바빴고, 나는 ' 아이고 나는 왜 이리 복이 많을까. 감사합니다 ' 그러고 있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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