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인문학(68)- TV드라마를 왜 보는가? | |
내용 |
TV드라마를 왜 보는가?
“사람 사는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인간본질을 추구하는 드라마는 없는가“ 한 가톨릭 신부가 종교채널 TV에 나와서 하는 말이 대충 이랬다. 행복해지려면 웃어라, 곰곰이 생각해라, 운동해라, TV를 보지 마라....등등 몇 가지를 강조했다. 특히 그 가운데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TV드라마는 왜 멍청하니 봅니까?” 하는 말이 새삼 마음에 걸렸다. TV드라마를 왜 보느냐고 하는 사람이 어찌 그 천주교 사제뿐이겠는가. 여러 군데서 듣는 말이다. 그러는 양반들은 정말 드라마를 하나도 안 보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이, TV드라마를 전 혀 안 보는 사람이 어떻게 그 쓰레기 같은 드라마를 왜 보느냐고 하겠는가. 필시 언젠가는 잠시 또는 조금이라도 보기도 했으니까 그 결과로 한 말일 것이다. 어쩌다 보아하니 드라마란 것이 참 한심하더란 말이겠지. 그러면서 그 신부는 드라마 내용과 관련해 이런 예를 들었다. 소위 출생의 비밀, 불륜의 씨앗을 혼전에 잉태하고 속여서 결혼해서는 그 자식이 장성해서는 사실은 씨 다른 남매와 사랑을 나누고, 나중에 비밀이 탄로 나고 그래서 한강에 뛰어내리려는데, 하필이면 그때 어느 부잣집 딸에 의해 구조되고 뭐 어쩌고저쩌고....그 양반이 말한 내용과 꼭 같지는 않지만 말하자면 막장드라마 비슷한 얘길 하면서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무런 개연성도 없는 막 돼 먹은 이야기만 해대는 드라마는 왜 멍청하게 보고 앉았느냐고 개탄했다. 속이고 속고, 누구를 못 잡아먹어 환장한 듯이 미쳐 날뛰고, 대부분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이나 존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자들을 등장시켜서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은 다하고 그러는데 그런 걸 왜 보느냐는 것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백해무익한 드라마를 왜 하느냐는 얘기다. 그것도 적잖은 제작비를 들여서, 멀쩡한 연기자들을 동원해서, 공익과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의 첨병이어야 할 방송사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냐는 데 백퍼센트 공감한다. 하지만 원래 TV드라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사회를 형성하는 긍정적 대중문화에 TV드라마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TV드라마란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하고 또 그렇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것인지,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존재인지, 그들이 사는 것 다시 말해 인생은 무엇인지, 그 본질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이 모든 문학행위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최종적인 종착점이다. 만약에 문학이, 드라마가 그렇지 않은 곳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어떤 경우든 본분을 잃어버린 일종의 일탈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자산낭비다. 따라서 드라마는 끝없이 인간을 탐구하고 관찰하고 그 본질을 규명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마땅히 그런 기능을 수행해야 할 드라마가 제 구실을 못한다면 그런 드라마를 우리가 봐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는 인문학이지 공학이 아니다. 그 내용에서 무엇을 주려는 것이지 어떤 방법으로 줄 것인가는 그 다음이다. 내용이 우선이다. 어떤 방법, 어떤 기술로 포장해서 전달 할 것이냐는 어디까지나 내용 다음의 문제다. 현재의 대다수 드라마들이 내보이고 있는 여러 가지 행태는 어쩌면 그 비중이 전도됐거나 기본인식이 뒤집어 진 데서 오는 반(反)드라마적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까짓 드라마는 왜 보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인간문제에서 멀리 떠난 거짓투성이 드라마들” 흔히 TV드라마는 구조상 가정과 가족의 관계를 많이 다루게도 되고 즐겨 다룰 수도 있는 매체다. 그래서 적잖은 TV드라마들이 가족관계나 가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가정과 가족관계의 현실성을 배경으로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고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적잖은 TV드라마들이 이미 그런 정상궤도를 이탈했거나 충격과 관심을 끌기 위한 상업주의와 결탁해 리얼리티가 전혀 없는 드라마, 가정과 가족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이나 따뜻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당성이나 현실성 없이 순전히 갈등과 적대관계의 확대 재생산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륜과 부도덕이 난무하고, 최소한의 기본윤리나 인간으로서의 덕목이 여지없이 파괴된다. 인간이 아니라, 가정이나 가족이 아니라 괴물들이 대거 등장해 설치고 날뛴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적대감으로 넘쳐나고, 부부간의 관계설정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믿음 내지는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직장에서의 동료나 상하관계도 서로 음모와 계략에 의한 오로지 투쟁의 상대로만 나타난다. 가족이고 부부고 연인이고 직장의 선후배 동료이고 간에 모두가 적으로 간주되거나 설정된다. 기본 컨셉이 이쯤 되면 그 전달방식이나 표현에 있어 주고받는 말이나 대하는 태도가 고울 리가 없다. 누가 얼마나 적대감을 부풀리고 악행을 저지르며, 험한 말을 주고받고, 무서운 눈빛을 보내느냐에 만 초점이 맞춰진다. 어느 쪽이 더 악질이고 악인인가를 마치 경연대회라도 벌이는 듯이 악다구니에만 열을 올린다. 한 마디로 막가는 것이다. 죽인 아내가 어느 날 얼굴에 점 하나 찍고 살아나 오로지 복수혈전에만 불탄다. 교통사고를 가장해 상대를 살해하고도 그것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악행을 끝없이 저지른다. 가정이고 직장이고 살아가는 일을 하거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복수와 악행과 막가는 일에만 집착한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꾸며대고 보태고, 속이고 속고 부도덕한 행위를 반성하기는커녕 되레 큰소리친다. 가족과 가정의 개념만 해도 그렇다. 급속한 사회변동 속에서 대 가족은 이미 무너졌고, 핵가족 중심의 스위트홈도 어느 새 지극히 부분적인 모델로 전락했다. ‘나 홀로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미 2009년 9월 어느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은 20.2%나 되었다. 고령화로 인한 독거노인들, 미혼이 아니라 비혼(非婚)인 결혼하지 않은 싱글들, 결혼을 했다가 이혼한 사람들, 여기에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까지 보태지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과 가정이 괴멸되어 가는 현실인데도 여전히 TV홈드라마는 유사대가족 시스템에 타당한 이유 없이 적대적 가족관계에 바글거린다. 억지에 억지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다 리얼리티 대신에 막장코드를 끌어들여 대부분의 연속극들을 꾸며대고 있다. 현실을,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시각도 없다. 치열하게 인간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관찰력도 없다. 판타지나 픽션은 드라마의 진실을 보다 감동적으로 전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어야 하는데, 마치 판타지나 픽션이 드라마의 전부인양, 그것들이 드라마인양 저질, 저 품격 막장들만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행복해지려면 TV를 보지 말라 하고, 당연히 TV드라마를 멍청하게 왜 보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작금의 TV드라마, 특히 아침저녁과 주말의 연속극 안에는 사람(인간)이 없다. 그 자리에 괴물들만 잔뜩 출몰한다. 생각이 있는, 인간의 덕목을 가졌거나 인격과 인품을 갖춘 인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인간상은 고사하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편적인 인물도 나오지 않는다. TV연속극은 마치 비정상적인 인물들의 복제기구이거나, 누군가를 해치고 속이기 위해 살아가는 희한한 저질인물들의 전시장 내지는 집합소 같다. 진정성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래서 또 “그깟 TV드라마는 왜 보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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