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인문학(13)-임희재(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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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TV드라마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TV앞에 끌어 모을 수 있을까. 텔레비전일일연속극 ‘아씨’가 방송되기 전까지만 해도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인 최초의 드라마가 되었고, 그런 점에서 ‘아씨’는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가지고 드라마를 따지려 드는 그런 선을 넘고 있었다. 그것이 시청자의 눈물이나 짜내는 일종의 ‘최루드라마’라 할지라도, 그 많은 사람들이 밤마다 몰려 와서 보고, 또 그로 인해 바야흐로 텔레비전드라마의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만으로 이른바 불후의 인기드라마로서의 그 역할은 충분했다. 가는 곳마다 ‘아씨’이야기였고, ‘아씨’다방에 ‘아씨’음식점에, 온통 전국이 ‘아씨’의 몸살을 앓고 있을 정도였다면 그건 이미 일개 드라마의 차원을 넘어선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지나간 한 시대를 텔레비전드라마가 담아냈다는 점에서 TV드라마의 역할과 순기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실로 대중문화와 대중적 정서의 일대 변혁이었다. 드라마로서의 의미를 따진다면 ‘아씨’보다 조금 일찍 시작한 KBS-TV의 일일연속극 ‘아버지와 아들’(한운사 극본, 김연진 연출)이 있었다. 일제와 해방과 육이오를 거치며 한 집안이, 우리사회가 살아온 격정과 정신사를 함께 다룬 일종의 대하드라마로 ‘아씨’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텔레비전드라마의 격을 높인 드라마이기도 했다.
최초 최고의 관객 동원 드라마 ‘아씨’ 그러나 일반대중의 인기 면에서는 ‘아씨’를 능가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대중적 소구력을 두고 다소 다른 해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봤다는 사실 하나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씨’의 공이었다. 가는 곳마다 자고나면 모두들 ‘아씨’이야기였으니까 실로 엄청난 의식의 변화요, 그 위력만으로도 사실상 기록적인 문화적 선풍에 해당되는 일대 사건이었다. 드라마 ‘아씨’는 작가 임희재가 나름대로 작심하고 쓴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TV드라마란 영상에 거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영화와 달라서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작가, 즉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을 요구한다. 현란한 액션이나 충격적인 사건보다는 등장인물의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그려내는 이야기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의 본질과 관련한 풍부한 이야기의 밑천이 갖춰진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작가로서의 임희재는 이미 그런 실력이 쌓여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22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기항지’라는 희곡당선으로 문단에 나왔고, 이후 희곡 ‘복날’ ‘무허가하숙’ ‘고래’ ‘잉여인간’ 등을 써서 TV드라마 이전 연극계에서 희곡으로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하던 작가였다. 그러나 이 무렵의 희곡작가란 사실상의 실업자 신세였다. 벌이도 시원찮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시절의 연속이었다. 작가 임희재를 아는 한 재미교포 지인의 말로는 “일제 말 청년시절 황해도 해주에서도 살았고, 그때도 신극운동에 몸담아 주로 해룡극장을 중심으로 희곡 집필에 여념이 없었지만 극심하게 가난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가 연극에 매달려 희곡을 쓰던 그 무렵은 하루 밥 한 끼를 먹기가 힘들 정도로 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육이오를 거치면서 라디오드라마에서부터 작가로 활동, 1960년대 말 드디어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텔레비전작가로서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불후의 인기드라마 ‘아씨’는 영원한 우리들의 어머니 작가 임희재가 쓴 텔레비전드라마로는 ‘첫날밤 갑자기’와 ‘사노라면 잊으리’ ‘천사여 옷을 입어라’ ‘뜨거워서 싫어요’ ‘얼굴 없는 여자 손님’ ‘돌아서면 타인’ ‘빨간 카네이션’ ‘엄마의 일기’ ‘상감마마 미워요’ 등등. 현대물이든 멜로드라마든 사극이든 청탁을 가리지 않았고 영화시나리오도 닥치는 대로 썼다. 그러다가 1969년 KBS-TV에서 비로소 ‘신부일년생’이란 연속극을 성공시키며 텔레비전일일연속극에서의 그의 가능성을 내보인다. 이미 그 전에 몇 사람의 작가들에 의해 일일연속극이 시도됐지만 그다지 오래가지 못해 실패였다고 말하던 시절이었다. 임희재 역시 눈물을 짜내는 슬픈 이야기든, 밝고 희망적이고 명랑한 이야기든, 역시 가리지 않고 마구 쓰고 있던 참이었다. 그 무렵에 TBC-TV에서 호시탐탐 노리던 일일극의 성공을 위해 작가 임희재와 만난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떤 내용을 스토리로 전개할 것인지에 대해 전적으로 작가에게 일임하고, 드라마의 방향을 포함한 그 모두를 오로지 극본을 쓰는 작가에게 의존하고 작가를 존중하던 시절. 말하자면 토씨 하나도 작가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손대지 않았다. 작가 임희재는 승부를 걸었다. 누가 보고 안 보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고,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드라마로 쓰리라 마음먹었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애환과 눈물, 한(恨)과 희생으로 얼룩진 한국의 어머니, 한국여인의 일생을 드라마로 쓰리라 마음먹었다. 애당초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드라마를 보면서 울어주기를 기대하고 쓴 것은 아니었다. 한번쯤은 반드시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아씨’를 택한 것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과연 어떤 이야기가 텔레비전드라마로, 연속극으로 맞을지에 대해선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일종의 모험 또는 실험으로 드라마를 내놓던 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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