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인문학(40)-신봉승(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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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을 통한 정통사극 완성
정사(正史) 중심의 역사드라마 맥을 잇다 한 왕조의 5백년 역사를 대하실록 텔레비전역사드라마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봉승은 해냈다. 야사나 허구에 의한 황당한 전설 같은 이야기 중심의 역사극이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사료나 기록을 철저하게 뒤지고, 그 과정에서 작가 나름의 역사관(歷史觀)을 세워가며 사실상 새로운 시각의 역사를 드라마로 해석해낸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일제(日帝)의 식민지 사관(史觀)에 의해 폄하되고 왜곡된 조선왕조의 역사가 아니라, 조선의 역사에서 긍지를 찾고 올바른 가치를 세우는 차원에서 TV드라마 ‘조선왕조 5백년’을 써 내려갔다. 무려 7년을 넘어 8년 가까이 끌고 가는 대단한 작업이었다. 오죽하면 그의 에세이집에서 ‘역사의 강물에 빠지며 허적이며’라고 썼겠는가. 덕분에 사람들은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視覺)에 대해 많은 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시청률 또한 여느 드라마들 못지않게 높아서 방송기간 내내 이른바 ‘불후의 인기드라마’ 반열에 늘 올라 있었다. 제1화 ‘추동궁마마’(1983년 3월 31일-7월 1일)에 이어 제2화 ‘뿌리 깊은 나무’는 1983년 12월 31일까지 방송되었다. 제2화의 내용에서는 세종대왕의 위민(爲民), 민본(民本) 정치의 실체를 철저히 정사(正史) 중심으로 접근했다. “훈민정음의 창제와 과학의 진흥, 정악(正樂)의 확립 등 문화 창달에 진력하면서도, 역사인식에 투철했던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국가경영이라는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재미는 덜했다. 선량한 인물보다는 악인을 내세워야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드라마의 생리를 무릅쓰고 굳이 성군 세종의 이야기를 극화해 무사히 끝내고는, 그 다음으로 비교적 드라마투르기가 강한 수양대군 시대 즉 세조 때의 이야기 제3화 ‘설중매’로 넘어간다. 이 시대 드라마의 중심인물은 달랐다.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찬탈에 나선 수양대군 못지않게 당대의 뛰어난 정치가와 경세가로 확인된 한명회로 잡았다. ‘한명회’를 주인공으로 한 ‘설중매’ 인기 치솟아 8년 가까이 연장 또 연장 이미 그 이전에 나와 있는 ‘단종애사’와 같은 소설에서는 한명회를 천하의 간신배이자 악인으로 묘사했지만, 드라마작가로서 신봉승이 살펴 본 기록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바로 그런 한명회를 드라마 ‘설중매’의 중심인물로 내세우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설중매’의 첫 회분 드라마의 55분 중 한명회에게 배당된 장면은 무려 30분을 넘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기존의 ‘단종애사’와 같은 작품들이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부수고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남성드라마로 일약 전국적인 화제에 올랐다. 결국 ‘조선왕조 5백년’ 제3화 ‘설중매’는 치솟는 시청률과 이런저런 시중의 화제에 힘입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 년이 넘도록 방송되었다. 1984년 1월 9일부터 이듬해인 1985년 2월 28일까지, 사극으로서는 전무후무한 긴 롱런드라마의 기록을 남긴다. 이러다보니까 애당초 예정한 2년이 이미 지나버렸다. 조선왕조 5백년에 대해 아직도 못다 한 드라마는 지나간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많이 남았고, 약속된 기간은 다 써버렸고, 여기서 방송사는 별 고민 없이 ‘갈 데까지 가자’로 무기한 연장방침을 정해버린다. 물론 여기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제3화 ‘설중매’의 시청률 덕이 컸다. 한 임금의 시대가 대충 1년이 넘도록 방송될 만큼 인기가 높았으니 못다 한 나머지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왕조 스토리텔링 거의 다 섭렵 더 이상 조선사 종합 판은 나오지 않아 제4화 ‘풍란’은 밑바닥에서 정경부인의 지위까지 오른 ‘정난정’과 함께, 사림의 시대를 열어가며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정암 조광조의 중종시대를 주로 다루면서 중단의 위기까지 맞기도 한다. 당시의 정치상황과 비교되면서 대하실록역사드라마 ‘조선왕조 5백년’은 뜻밖의 암초에 부딪쳐 좌초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제5화 ‘임진왜란’으로 되살아났다.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그러니까 내용뿐만 아니라 외형에 있어서도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제6화 ‘회천문’은 광해군, 제7화 ‘남한산성’은 인조와 병자호란, 제8화는 ‘인현왕후’로 숙종시대의 이야기였다. 제9화 ‘한중록’은 영조시대, 제10화 ‘파문’은 정조시대와 실학, 내친 김에 제11화 ‘대원군’ 까지 다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때가 1990년 12월 23일, 거의 8년 가까운 세월을 ‘조선왕조 5백년’은 달려 온 것이다. 그때까지 그 어떤 역사드라마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셈이다. 조선왕조의 정사(正史)에서 다룰 수 있는 드라마틱한 모든 이야기는 거의 다 꺼내놓았다. 그 후 조선왕조의 스토리텔링은 사실상 이 8년 가까운 세월동안의 ‘조선왕조 5백년’에 나온 역사의 되풀이 또는 각 부분들의 세분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또 그 이후의 텔레비전 사극은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와 고려왕조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한때 이른바 퓨전사극 내지는 터무니없는 판타지라는 장르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자주는 아니었지만 일부 방송사에 의해 끊임없이 정통사극의 맥이 간간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폭발적인 인기 속에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조선왕조의 역사를 훑어가며 정리하는 드라마 기획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신봉승의 사극도 이쯤해서 끝을 맺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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